<건투를 빈다>를 읽고

2016-06-12     부산광역시 남구 홍성혁
 2011년 가을, 공익복무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 입시학원을 다녔다. 늦은 나이에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겨서 였다. 원서를 썼던 학교에 떨어지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역사에 있던 서점에 들렀다. <건투를 빈다>라는 이름의 이 상담집은 당시 ‘나는 꼼수다’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김어준의 또 다른 저서 <닥치고 정치>와 나란히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여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비로 무엇을 살까 고민을 하던 나는 <건투를 빈다>를 골랐다. 아마도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겨레 ‘이에스시’(esc) 섹션에 연재됐던 상담 사연을 묶은 이 책 속 사연의 주인공들도 책을 고른 나의 심정과 비슷한 마음으로 사연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정도 투정이 섞여 있는 상담 사연들에 대해 김어준은 공통적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살면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김어준은 “사람들이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택으로 말미암은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다.”라고 말한다. 더도 덜도 말고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는 것, 선택한 만큼의 사람이 나인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망설임이나 후회, 자기연민이나 자기비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자존감의 훈련이며 이 훈련의 출발점이 자기객관화라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은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아이는 엄마를 만족시켜주려고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뭔가를 원한다는 게 엄마가 원하니까 원하는 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원해서 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가게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계속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김어준은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라고 말한다. 자기객관화란 이러한 욕망의 분리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고 자신이 자기욕망의 주인이 되는 것. 조금씩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김어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이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늦은 나이에 입시 생활을 했다. 간절했지만 성실하지 못했다. 그래서 떨어졌다. 성실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대한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포기였다. 욕망을 버리는 건 어렵다. 하지만 버리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여전히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다. 좀 더 좋은 학점을 받고 싶고, 과제를 하더라도 이왕이면 칭찬이 듣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김어준의 말처럼 삶 전체를 타인의 욕망을 이루는 데 다 허비하면 남는 것은 텅텅 비어버린 결핍된 나 자신이다. 홀가분해진 마음의 빈자리를 하나씩 하나씩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며 채워나갔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