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거위에겐 '죽음의 계절'...구스다운 롱패딩 한 벌에 20마리 산 채로 털 뽑혀
동물보호단체 항의로 일부 업체들, 친환경 '착한 재료' 패딩 출시...'RDS' 마크 있어야 인조 소재 제품 / 백창훈 기자
“눈 떠보니 저는 철창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제 또래 수백 명의 친구가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저희 엄마를 끌고 오고 있습니다. 엄마는 기절한 채 옷이 다 벗겨져 있고 가슴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몇 분 뒤 낯선 사람이 저에게 오더니 갑자기 목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제 옷을 벗기고는 피부를 뜯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가슴에는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름 아닌 거위 이야기다. 추운 겨울철이 돌아오면 우리는 오리, 거위 털이 함유된 패딩을 찾기 시작한다. 작년 겨울 ‘평창 롱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올해 겨울도 롱패딩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의상학과 재학생 조영준(25, 부산시 연제구) 씨는 “올 겨울도 주위에 롱패딩을 입은 친구들이 많다. 특히 패딩을 사면 ‘구스다운’인지 제일 먼저 물어본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9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노비스’, ‘파라점퍼스’, ‘무스너클’, ‘맥케이지’ 등 총 10개 브랜드에서 제작한 100만 원 이상의 초고가 구스 다운 프리미엄 패딩은 전년 동기대비 무려 300%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구스다운 롱패딩 한 벌에 거위 20마리가 희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지금처럼 편히 입을 수 있을까?
패딩(padding)은 ‘채워 넣기’, ‘속을 넣음’이라는 뜻으로, 솜 등의 충전재, 또는 그것을 제품에 넣는 행위를 가리킨다. 현재의 패딩은 그 범위를 넓혀 가벼운 충전재를 넣은 의복을 모두 패딩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패딩의 충전재료는 거위나 오리, 백조 털 등의 천연소재를 이용한 다운(down)과 웰론(wellon), 신슐레이트(thinsulate), 폴리에스테르(PET) 등의 인조 충전재가 대표적이다. 인조 충전재로 제작한 패딩을 비건(vegan)패딩이라고 부른다. 다운 소재는 새의 깃털 중 가장 바깥쪽인 페더(feather)와 새의 보온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솜털로 구분한다. 특히 오리나 거위 가슴에 있는 솜털은 공기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체온유지에 용이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운이 75% 이상 함유된 충전재만 구스다운 패딩으로 분류한다. 다운은 가벼운 무게, 부드러운 감촉, 따뜻한 느낌이 최대 장점이다.
죽은 오리나 거위의 털을 채취한다면 윤리적인 문제는 피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죽은 오리털은 채취에 한계가 있고, 모피 품질이 훼손되며, 사후의 털은 굳어져 뽑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대부분 거위는 산 채로 털이 뽑힌다.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 따르면, 거위는 태어난 지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거위의 일생으로 보자면 적게는 5회 많게는 15회까지 산 채로 털이 뽑힌다. 거위 한 마리는 1회에 평균 140g의 솜털이 채취되기 때문에, 롱패딩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20마리의 거위 털이 필요하고, 1년이면 약 200만 마리의 거위와 오리가 패딩을 위해 희생되는 셈이다.
미국 다운페더연합에 따르면, 거위 털은 전 세계의 80%가 중국에서 생산되며, 그 과정은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생산과정을 거친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이 이형주 대표는 “거위 털을 뽑은 부분에 피가 나도 치료해 주지 않는다. 상처가 심한 거위는 죽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소비를 선택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선택할 기회조차 없다. 최근 천연소재만큼 뛰어난 인조 소재가 많이 개발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인도적인 소비를 지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천연소재에 버금가는 보온성을 가진 인조 소재가 많이 개발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천연소재를 지양하는 추세다. 2015년 친환경 브랜드인 ‘스텔라 멕카트니’를 선두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구찌’ 브랜드도 동물의 가죽 사용을 줄이겠다는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유럽연합(EU)은 살아있는 거위나 오리에게서 채취된 다운 생산, 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며, 미국은 ‘노스페이스’와 비영리단체 ‘텍스타일 익스체인지’가 공동개발한 ‘책임다운 기준인증(Responsible Down Standard, RDS)’을 도입했다. RDS는 살아있는 동물의 깃털을 채취, 강제 급식 등 동물 학대와 관련된 행위를 하지 않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다운을 채취한 제품에 한해 발행되는 인증마크다.
국내에서는 다운 제조업체인 태평양물산이 ‘프라우덴’ 브랜드를 통해 RDS를 최초로 도입하면서 컬럼비아, 밀레, H&M 등의 브랜드들도 인증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모든 브랜드가 의무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없고 인증을 받은 제품 회사의 직원조차 RDS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패션업계 종사자인 장현주(23) 씨는 “RDS를 도입한 브랜드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다운 소재는 타 업체를 통해 들여오기 때문에 오리나 거위의 털을 윤리적으로 채취했는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다운을 대체하기 위한 인조 충전재는 3M사에서 개발한 신슐레이트와 웰론 소재가 가장 많이 쓰인다. 신슐레이트와 웰론은 세탁에 취약한 구스다운과는 달리 물세탁과 드라이클리닝이 모두 가능하다. 무게 또한 다운처럼 매우 가벼우며 필파워(Fill Power)도 다운만큼 뛰어나다. 필파워란 다운 1온스(28g)를 24시간 압축 후 압축을 풀었을 때 부풀어 오르는 복원력을 말한다. 필파워 수치가 높을수록 공기함유량과 보온력이 높다.
미국 해병대가 주로 사용하는 프리마로프트 인조 충전재도 있다. 프리마로프트는 폴리에스테르 형태의 극세사 섬유다. 쓰고 난 뒤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재활용도 가능하다. 다운의 경우 물에 젖으면 급속도로 단열능력을 잃는 반면에 프로마로프트는 물에서도 강하기에 때문에 다운의 습기에 대한 취약성을 보완하는 대체재로 개발됐다.
북극곰 털을 모방한 인조 충전재 ‘노바볼(NOVA BALL)’도 개발됐다. 이 충전재는 오리나 거위의 마이크로화 섬유와 달리 섬유 내부에 구멍을 내 공기를 함유하여 보온능력을 극대화했다. 그 밖에도 가운데가 비어있는 중공섬유를 이용해 외부의 차가운 공기는 차단하고 따뜻한 공기를 주입한 듀퐁 사의 ‘써모라이트(thermolite)’, 충전식 발열제, 마이크로타입의 4중공채널 ‘노바다운’, 특수가공 발수다운인 ‘온에어’ 등 오리와 거위를 살릴 수 있는 인공 충전재는 무궁무진하다. 패션디자인학과 졸업생 백민정(24, 부산시 수영구) 씨는 “구스다운만큼 뛰어난 성능의 인공 충전재가 많은데, 그저 비싼 패딩이 좋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인공 충전재 제품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사회 추세에 발맞춰 리사이클 다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리사이클 다운은 버려진 패딩이나 사용하지 않는 베개, 이불 등에서 오리나 거위 털을 채취해 세척과 소독과정을 거친 후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선 블랙야크가 라이프 웨어인 ‘나우(nau)’를 처음 출시했고, 친환경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 역시 뛰어난 방수 및 투습 기능을 가진 리사이클 다움 제품 ‘시티 스톰 파카(City Storm Parka)’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의류업체 드림워커가 업사이클 다운 패딩인 베리구스(Verygoose) 제품을 출시했다. 베리구스는 ‘매우 좋은’의 뜻을 가진 베리와 ‘오리’의 구스를 합친 말로, ‘거위들이 고마워 한다’는 뜻을 가졌다. 드림워커 서정은 대표는 우연히 거위털 생산과정을 영상으로 접한 뒤 충격을 받고 리사이클 다운 패딩 제작에 착수했다고 한다. 헌 옷에서 오리 털을 재취하는 일부터 제품 출시까지 제작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출시에 성공했다. 베리구스 서강은 팀장은 “오리털을 재사용해서 보온력이 떨어질 거라고 소비자들이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패딩보다 오리털을 더 많이 넣었고 필파워도 400~500 유지된다. 오리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서 어려운 과정을 겪었다. 이 취지를 소비자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성대 패션디자인학과 채희주 교수는 인간의 따뜻함을 위해 동물들에게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강제로 뽑는 것을 의미하는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하는 행위는 생산과 경제성만을 생각한 인간의 잔혹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채 교수는 비건 패딩 활성화를 위해서는 의류업계가 이미 생산된 천연소재에 대한 업사이클링의 지속적 개발을 시도, 생명윤리를 강조한 인식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에게 착한 소비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인공 충전재가 많이 업그레이드됐다. 의류업계는 소비자의 기호와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착한 패딩을 지속적으로 선보임으로써 현재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