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곽경택 편①] 영화도시 부산의 영화사랑은 곽경택 감독의 '친구'가 진원지

‘부산영화’ 대가 곽경택 감독에게 부산영화의 길을 묻다 / 차용범

2020-01-21     차용범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곽경택은 ‘부산영화’의 특출한 상징이다. 부산에서 성장하며 작가적 감성을 한껏 키운 뒤, 제작영화 11편 중 8편을 부산에서 촬영했다. 그는 영화에 정감 있는 부산적 풍광과 함께, 걸쭉한 부산 사투리까지 그대로 담아내는, ‘메이드 인 부산’ 영화의 대가다. 한국영화사에 기념비적 흥행기록을 남긴 <친구>가 대표적. "친구 아이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 같은 대사를 온 국민에게 알리며, 방송에까지 경상도 사투리를 득세시킨 진원이다. 요즘 ‘부산영화’ 붐 속에서 곽경택, 그가 돋보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으로 부산의 영화적 얼굴을 잘 찾아내고, 누구보다 적극적인 의지로 부산의 얼굴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부산시민의 영화열기에 불을 지피고, ‘영화⋅영상도시 부산’의 바탕을 다져온 견인차다. ‘부산영화’로 부산의 얼굴을 널리 알려온 감독, 고향에의 남다른 열정으로 ‘영화도시 부산’을 부추겨온 감독, 그 곽경택은 부산영화, 나아가 영상산업 중심도시 부산의 미래를 어떻게 볼까? 부산이 자랑해야 할 부산영화, 부산이 추구해야 할 그 목표에 넘치고 모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산영화가 걸어야 할 그 큰 길은 정녕 어떠해야 할 것인가?

‘영화적’ 얼굴 간직한 도시 부산

곽경택과 부산영화, 그 끈끈한 인연을 알기 위해 몇 가지 코드를 확인한다. 우선 그가 영화제작지로 부산을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에선 마음 푹 놓고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부산이 갖고 있는 여러 특징, 이건 여러모로 '영화적'이어서 촬영에 굉장히 유리하다. 부산시⋅부산영상위원회 같은 기관의 각별한 지원, 특히 '영화도시 부산'에 대한 부산시민의 열기 역시 독특하다.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부산토박이기에 여러모로 익숙하고, 영화적 밀도를 높이는데 쉽게 상승효과를 얻는 곳, 바로 부산이다.” 그의 부산예찬은 구체적이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 싸여 있고, 번화한 신시가지와 함께 30여 년 전 풍경을 간직한 달동네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영화보다 더 걸쭉한 토종 사투리들이 흘러넘치는 재래시장과 골목골목 남아 있는 진한 향수 역시 대규모 영화 세트장 그대로다. 그래서 그는 부산의 영화적 얼굴을 기막히게 찾아내며, 작품마다 부산의 공간을 넘어, 도시의 문화, 역사, 정서까지 잘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이기에 가능했던 영화 ‘친구’

Q.영화감독 곽경택을 얘기하며 대표작 <친구>를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을 배경으로, 4명의 친구가 성장하며 겪는 사랑과 고통, 배신을 그려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연 영화, 2001년 당시 870만 관객을 동원,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한 영화다. <친구>는 어떻게 구상했으며, ‘부산’을 어떻게 담아냈는가?

A. “이 영화는 나의 경험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상했다. 영화에 나오는 ‘상택’(서태화 분)의 캐릭터에 나의 경험을 많이 담아냈고.... 당대를 경험한 관객과 함께, 젊은 관객도 그 시절의 정서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다." 그는 기억한다, <친구>는 배우보다 도시가 더 많은 얘기를 해 준 영화였으며, 그건 오직 부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범일동 철로변, 산복도로 집 옥상 같은 영화 촬영지도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고. <친구>는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한 걸쭉한 대사도 일품이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 “마이 무웃따 아이가, 고마해라” 같은 명대사들을 떠올려 보라. 당시, 다른 지역의 젊은 사람 모임에선 경상도 사람의 인기가 오르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었다고. 대사의 해석에 더러 애로를 느낀 다른 지역 사람들의 빗발치는 문의(?) 때문이다. 배우 중 공동주연 유오성과 장동건은 서울 출신이라 영화를 위해 곽경택 감독에게 경상도 사투리 과외를 받았다. 실제 영화 상영 때도 이들의 사투리 구사가 좀 어색하다는 부산⋅경남지역 관객의 평도 있었다는 뒷얘기다. "난, 이 사투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아무리 부산을 무대로 한 영화라지만, 배우들이 경상도 사투리만 쓰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름 마음을 졸여야 했다." 결국 DVD판의 경우 한글 대사의 한국영화에 표준어를 한글자막으로 삽입, 대사를 재해석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부산, ‘야구사랑’ 못지않은 ‘영화사랑’

Q. 당대의 걸작 <친구>가 부산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친구>는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한국영화사를 새로 쓴 작품이다. 이 영화로 부산의 매력을 골목 구석구석까지 세상에 알렸다. 부산시는 <친구>에서 영화가 지닌 매력과 위력을 깨닫고 영화촬영을 지원하고 유치하기 시작했다. 부산은 쓰나미 영화 <해운대>를 찍을 때 광안대교를 여섯 시간이나 막아줬다. 서울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부산사람들이 영화에 쏟는 애정이 ‘야구 사랑’ 못지않은 덕분이다." 곽 감독 역시 <친구>를 촬영할 때 부산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옛 조방 국제호텔 앞 버스 노선을 사흘이나 돌려주고...,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부산시는 자갈치 건어물시장, 기장 대변항 방파제, 범일동 국제호텔 앞에 <친구> 촬영을 기념하는 현판을 내걸었다. 범일동 철길 육교에서 삼일극장까지 ‘친구들의 질주’ 600m 길을 ‘친구의 거리’로 명명했다. 결국 '영화영상도시 부산'을 각인시킨 것은 부산시⋅영상위⋅시민의 한결같은 노력의 결실이다.

부산 촬영환경, 무조건 서울보다 낫다

부산예찬론자 곽경택도 <친구> 후속작 <통증>(2011)과 <미운오리새끼>(2012)는 서울에서 촬영했다. ‘영화촬영지’로서, 서울은 부산보다 어떤 비교우위적 강점을 갖고 있을까? "영화촬영지에 관한 한, 서울의 강점은 없다. 서울사람에게 부산처럼 '영화를 만드는데 내가 좀 불편해도 참아주자', 그런 배려가 있나? 없다. 이번에도 촬영지만 있었다면 당연히 부산에서 찍었을 것이다. <통증> 때 서울 지하철 장면, <미운 오리새끼> 때 사용 않는 군부대 장면, 이런 장소를 찾아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촬영했을 뿐이다." 그는 촬영지만 있다면 부산 촬영이 가장 좋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새삼 강조한다. 이번에도 그가 영화 촬영을 시작한다고 할 때 스태프들은 하나 둘 부산행 채비를 차렸단다. 그게 부산과 곽경택의 특수(?)한 관계다.

“흥행 실패한 작품 애정 많이 가더라”

Q. 제작 작품 중 가장 애정이 큰 작품은? 아쉬운 작품은?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나, 다 아프다. 그 중 관객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한 작품에 아무래도 많은 애정이 간다. 내 할머니도 다섯 딸 중 가장 힘들게 사는 딸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주시더라. 나에겐 <닥터K>가 그런 작품이다.”

Q. 부산에서 작업을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내가 그저 부산에서 영화 찍다 보니, 영화 <해운대>도 내가 찍은 것으로 아는 분들이 적잖다.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한창 찍을 때 한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라, "감독님, 드라마 찍으며 <해운대>는 또 언제 만들었느냐?"고. 윤제균 감독이 들으면 참 섭섭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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