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영화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단한 근육으로 갖춰진 날렵한 몸매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재빠르고 민첩한 주인공과 화려한 액션 장면은 스파이 영화를 보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을 완전히 깨부순 영화 <스파이>는 예고편부터 나에게 “이 영화는 꼭 봐야 해”를 외치게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뚱뚱한 스파이 수잔 쿠퍼는 원래 현장요원이 아니었다. 수잔 쿠퍼는 현장 요원의 임무수행을 사무실에서 도와주는 CIA의 내근 요원으로 사무실에서 적들의 동선을 알려주고 중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그러던 중 핵무기 밀거래를 하는 스파이에게 CIA 현장요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CIA는 스파이들에게 들키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요원이 필요했고 마침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내근요원 수잔 쿠퍼에게 현장요원으로 활동할 기회를 준다. 특히 핵무기 밀거래 사건으로 최고의 파트너 브래들리 파인을 잃은 수잔 쿠퍼는 이 사건에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이 영화가 처음부터 내세운 것은 뚱뚱한 여자가 스파이 배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뚱뚱한 여자가 악당을 제압하는 장면은 재밌고 웃긴 장면으로 연출된다. 수잔 쿠퍼가 작전마다 가지는 위장 신분은 보통 현장요원들이 가지는 멋진 신분들과는 다르게 ‘고양이를 키우는 아줌마’, ‘수급자 아줌마’ 등이다. 뚱뚱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영화 속에서 보통과 다르고 우스운 것으로 표현된다. 보통 코미디 영화에서도 뚱뚱한 사람이 나오면 그것이 재미요소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뚱뚱한 스파이가 큰 임무를 맡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다는 스토리이다. 보통 뚱뚱한 사람들이 로맨스나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고 아름다운 결말을 이룬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드물다. 하지만 외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제 과체중의 뚱뚱한 사람이어도 그만의 매력으로 주인공으로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아 졌다.
2013년 영국 드라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뚱뚱한 몸매에 정신병까지 앓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아무런 이유 없이 뚱뚱한 여주인공을 좋아해준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의 성공적인 러브스토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에서의 문제는 자존감이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이제는 XL 사이즈 몸매를 가진 모델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일명 ‘뚱뚱이 패션쇼’인 ‘펄프(Pulp) 패션쇼’가 열린다. 모델들은 모두 뚱뚱한 여성들로 속옷에서부터 평상복에 이르기까지 빅 사이즈를 입고 무대에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빅 사이즈 모델이 활동하는 것을 가끔씩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뚱뚱한 몸매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다면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뚱뚱하지만 아름다울 수 있고 빅 사이즈로도 충분히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류회사 아베크롬비 최고경영자 마이클 제프리 삭스는 “뚱뚱한 고객이 들어오면 물을 흐리기 때문에 엑스라지(XL) 이상의 여성 옷은 안 판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러한 경영자의 경영정신으로 아베크롬비는 지난 1892년부터 엑스스몰(XS)부터 라지(L) 사이즈만 판매했다. 하지만 아베크롬비의 외모 차별적 정책은 사람들의 반발을 샀고 불매운동까지 일어났다. 결국 아베크롬비는 사이즈 확장을 하여 XL사이즈까지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날씬한 사람들이 입는 옷”이라는 이미지를 지워내려고 노력 중이다.
뚱뚱하다는 것이 단점인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주인공 수잔 쿠퍼는 영화 속에서 사랑스럽고 당찬 매력을 여한 없이 보여준다. 영화 스파이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모든 등장인물들을 조금씩 모자라게 표현하는 것이 이 영화의 웃음 코드이고 그것들이 그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뚱뚱하다는 것도 그런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뚱뚱하다는 것은 큰 단점이 아닌 단지 조금 다른 부분이고 어쩌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