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먹구름이 도로 위 덮는다"...10년간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163% 급증
정부, 올해부터 75세 적성검사는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부산시, 전국 최초 고령자 면허 반납제 효과 '톡톡' / 류효훈 기자
2020-02-13 취재기자 류효훈
최근, 노인이 운전하던 차에 행인이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3일 무등일보에 따르면, 최근 두 건의 노인 운전 사고가 전남 지역에서 발생했다. 8일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서 A(75) 씨가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하려다 브레이크를 잘못 밟아 맞은편 식당으로 돌진해 2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1일 구례 용방면 편도 1차선에서는 B(74) 씨가 몰던 경차가 가로수를 들이 받고 전복돼 마을 사람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등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또, 12일 다수의 언론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호텔 주차장 앞에서 C(96) 씨는 차를 후진하던 중 지나가던 행인을 치고 말았다. 행인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노인들은 표지판, 신호등을 판단하는 시력, 기억력, 주의력, 판단력, 인지능력, 각종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현저히 떨어진다. 최근,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해마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최근 10년간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무려 163%나 급증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14년 2만 275건, 2015년 2만 3063건, 2016년 2만 4429건, 2017년 2만 6713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고령운전자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자와 부상자수도 2008년 각각 559명, 1만 5035명에서, 2017년 848명, 3만 8627명으로 51.7%와 156.9%씩 늘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유형을 연령대별로 분석해 보면 75세 이상 고령층은 65~74세보다 중앙선침범, 신호위반, 교통로 통행방법 위반사고 비중이 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갈수록 증가하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로 인해 정부가 대비책을 내놨다. 올해부터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들은 적성검사를 5년에서 3년마다 받아야 하며, 2시간의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근본적으로 고령운전자들이 면허증을 반납을 유도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8세의 고령으로 운전대를 잡았던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은 지난 달 17일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낸 끝에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스스로 반납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이미 1998년부터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다발에 대한 대책으로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고령자에게 교통 승차권 지급과 상업시설 이용 할인혜택을 주는 제도를 시행해서 교통사고를 줄이는 효과를 올린 바 있다.
부산시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지난해 8월부터 전국 최초로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우대제도’를 시행했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운전면허증을 자진반납하면 병원, 식당, 의류점, 안경원 등 상업시설 이용 시 5~50%의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어르신 교통사랑 카드’를 받을 수 있다.
시행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 해 9월말 기준으로 부산의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35%나 감소했던 것. 교통 전문가들은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줄어든 것은 부산시가 고령운전자에 대한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사회 전체에서 고령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줄일 수 있는 여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진구 도로교통공단 홍보처장은 “고령사회의 먹구름이 이미 도로 위를 덮쳤다. 그 위세는 앞으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우리 사회 전체에서 고령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횡단보도 근처의 고령 보행자도 위험하고, 고령 운전자도 스스로 안전 운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