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옹기’ 같은 사람인가?
2015-07-27 편집위원 박시현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에는 웰빙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최근에도 소위 ‘쿡방,’ ‘먹방,’ 요리하는 남자, 셰프 등으로 TV, 신문, SNS에서 웰빙 음식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위가 안 좋은 나는 방송에서 위에는 양배추가 좋다는 말을 듣고 날마다 하루 세 컵씩 양배추 즙을 마시고 있다. 나름, 이 웰빙 음식은 효과가 있는 듯하다.
어느 날 문득 양배추 즙을 마시면서 결국 자연에 가까운 음식일수록 사람 몸에 좋은 웰빙 음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사진작가인 지인으로부터 옹기 얘기를 들었다. 그 지인은 자연에 가까운 발효 음식이 좋은 음식이지만, 발효 식품은 옹기라는 자연과 가까운 그릇이 있기에 자연스런 음식이 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 그 자체인 옹기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했다.
옹기는 자연의 구성요소인 흙과 물과 불을 가져다 장인의 손길로 빚어낸 그릇이다. 옹기의 겉모습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자연처럼 소박하다. 인공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이 옹기에는 있다.
옹기가 모여 있는 곳이 집안의 장독대다. 요즘에는 사찰이나 매실마을이나 시골 종갓집을 가야 장독대가 보이지만, 수십 년 전에는 주택 마당 한 곁에 장독대가 있었다. 나의 어릴 적 집 마당 한 귀퉁이에도 장독대가 있었다. 된장, 간장, 고추장이 담겨 있는 장독 뚜껑을 열면, 특이한 냄새가 났다. 언뜻 고약하기도 하고 구수하기도 한 그 냄새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자연을 가장 닮은 음식 냄새였다.
옹기와 발효음식과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은 옹기의 표면에 선조들의 과학적 식견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옹기에는 공기는 통하게 하고 물은 통과시키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이다. 그 구멍이 옹기 속에 담겨진 음식을 잘 숙성시키는 것은 물론 오랫동안 맛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대부분 아는 얘기지만, 옹기는 찰흙으로 만들어 가마 안에서 뜨거운 온도로 구운 질그릇이다. 이 찰흙은 옹기장이의 수없는 치댐과 늘림의 반복 작업, 잿물 입히기, 그리고 1,200도가 넘는 가마에서 열흘 넘게 굽는 과정을 통해 옹기로 탄생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라고 읊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처럼 옹기 속에는 옹기장이의 땀 몇 바가지, 정성 몇 섬, 그리고 집념 몇 더미가 숨겨져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에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옹기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피신한 천주교 신자들이 옹기나 숯을 만들어 내다 팔기도 했는데, 당시 그들은 옹기 뚜껑 안쪽에 십자가 문양을 몰래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옹기를 내다 팔면서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동시에 신앙인으로서 그들의 존재 가치를 옹기에 부여하고 있었다. 추기경은 이 책에서 옹기의 다양한 활용도를 언급했는데, 옹기는 음식도 담았지만 오물도 함께 담았다고 했다. 그렇고 보니, 옹기는 아주 옛날 우리의 변기통이나 소의 여물통이기도 했다. 옹기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적 삶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었다. 추기경은 여기서 우리 자신도 옹기처럼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그릇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과연 우리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일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 내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마저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 그런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일까? 우리는 우리 이웃, 가족, 지인들의 성냄과 찡그림을 너그럽게 안을 수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그들의 잘못마저도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자신이 없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기꺼이 품에 안고 보듬어 주고 싶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안을 수 있는 옹기 같은 사람이 되자고 되뇌어 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보고 또 해보려고 한다. 이 세상에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