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사랑과 보시(布施), 그리고 자비와 휴머니즘
/ 김민남
2020-02-24 김민남
나는 10 여 년 전 티베트의 한 고승(和尚)이 지은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서 한 번은 가게 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세계 최고의 천재요 부자였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있다. "때가 되면 누구나 인생이란 무대의 막이 내리는 날을 맞게 돼 있다. 부(富)에 의해 조성된 환상과는 달리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성(情绪化)이란 것을 모두의 마음 속에 넣어 주셨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내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點綴)된 추억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이다. 그건 우리를 따라 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티베트 고승의 말이나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익히 잘 아는 얘기들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이하느냐는 개개인의 가치, 삶의 행태, 세상에 머문 시간이나 경험, 더러는 수행(修练)과 명상(暝想, meditation)의 정도와 깊이 등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득도(成仙), 즉 도를 통달하기 위해 한 생(生)을 거는 스님이나 중생, 사제(司祭)나 신도의 차이가 바로 그럴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 Kant)에 얽힌 일화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는 임종(臨終)을 지켜보는 제자들 앞에서 "Das ist gut(It is good)"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이 생(生)의 마지막이 좋다'쯤으로 이해되겠다. 즉, 살아온 삶이 후회 없다, 또는 돌아보니 잘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천수(天壽)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그 천수를 다 누린 셈이다.
여기에 비하면 스티브 잡스의 삶은 너무도 허망했다. 그는 천재(天才)에다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富)를 쌓았다. 하늘이 준 재주를 다 쏟아붓지도 못했고 자신이 모은 부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스스로 말한 것처럼 한 푼도 가져갈 도리가 없었다. 어디 스티브 잡스 뿐이겠는가. 어느 누구도 세상을 떠나는 길에는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인생의 답(答)은 결국 베풂, 즉 보시(布施)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진 것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마음과 몸으로 베풀 수 있다. 이것이 곧 사랑이다. 사랑은 하늘보다 넓고 우주보다 크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람만이 가진 감성(感性)이요 덕성(德性)이다.
부처님과 예수님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랑과 자비(慈悲心)를 가졌고. 그 사랑과 자비를 널리, 그리고 무한하게 베푸신 분이다. 부처님은 2600여 년 전에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진 왕자의 자리와 찬란한 영화(榮華)를 버리고 궁궐을 뛰쳐나와 스스로 고행(苦行)의 길을 걸으셨다. 예수님은 2000여 년 전 온갖 핍박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시밭길과 부활의 길을 택하셨다. 두 분 성인(聖人)은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인류에게 보이신 분들이다. 부와 권력을 더 많이 더 먼저 가지려고 싸우고 몸부림치는 우리 범인(凡人)들에게 주신 지엄한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지난 수천 년에 걸쳐 크고 작은 전쟁을 수없이 해왔고, 헤아릴 수 없는 귀한 생명을 잃었다. 20세기 들어서만 강대국들이 일으킨 제1-2차 대전과 바로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1950년 6.25 한국전쟁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거기다 2차 대전 막바지에 치명적인 핵분열 무기까지 개발했다. 세계는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1968년 핵무기 금지조약(NPT)도 체결했지만, 북한과 같이 탈조약 국가들이 생기면서 도루묵이 돼버렸다. 인간의 어리석음 탓인지 끝없는 탐욕 때문인지 아직 그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참 답답하다.
치열한 국내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4-5차 산업혁명이나 유튜브 혁명(YouTube Revolution) 등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앞서 인류가 지향해온 '인간존중-휴머니즘'(humanism)의 오랜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철인(圣人)은 꼭 위대한 사람에게서만 탄생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