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여성을 좋아한다"...'걸크러쉬' 풍조 번진다

성적 감정과는 달라...'센 언니' 여성 래퍼의 여성팬도 증가, 마케팅 전략이란 주장도

2016-09-22     취재기자 김지원
대학생 박소은(21,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씨의 휴대폰 속 사진 갤러리에는 많은 여성들의 사진이 저장돼 있다. 박 씨는 평소에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부러움을 느낀 나머지 늘씬한 여성 사진을 많이 저장해 둔 것이다. 이런 행동 때문에 박 씨는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박 씨는 “몸매가 좋거나 얼굴이 예쁜 여자들을 보면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레즈비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걸크러쉬(girl crush)’는 박 씨가 느끼는 심리를 이르는 말로, 여성이 동성을 좋아하는 것을 이르는 신조어다. 걸크러쉬는 여성을 뜻하는 ‘girl’ 과 충격을 뜻하는 ‘crush’의 합성어로, 여성이 여성을 보고 충격을 받는 심리적 상태를 뜻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걸크러쉬가 여성이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섹슈얼한 감정이 포함되지 않은 호감이라고 정의한다. 즉, 걸크러쉬는 섹슈얼한 감정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레즈비언과는 다르다. 최근 젊은 여성들은 "누구에게 걸크러쉬를 느꼈다," "걸크러쉬를 당했다"는 등의 표현을 실제 자주 쓰고 있다. 걸크러쉬는 외국의 유명 블로거 겸 유튜브 스타인 제나 마블스(Jenna Marbles)의 유튜브 동영상이 페이스북과 피키캐스트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우리나라 네티즌에게 전파됐다. 제나는 동영상에서 걸크러쉬의 정의와 단계별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걸크러쉬는 친해지고 싶은 단계, 닮고 싶은 단계, 사랑하는 단계로 나뉜다. 제나는 동영상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걸크러쉬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유투브 동영상에는 많은 네티즌들의 댓글이 달려있다. 대부분의 댓글이 걸크러쉬에 공감한다는 여성들의 반응이다. 한 네티즌은 “나도 정말 그렇다. 나는 레즈비언이 아니지만 길을 지나는 여성의 뒤태에 반한 적이 있다. 주변인에게 내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걸크러쉬를 느끼는 심리는 최근 마케팅에도 잘 활용되고 있다. 음악 케이블 TV채널인 엠넷에서 방영된 여성 래퍼의 경쟁을 다룬 <언프리티 랩스타>는 소위 ‘쎈 언니‘라 불리는 여성 래퍼들을 내세워 다수의 여성 시청자들과 팬층을 확보했다. 모 연예기획사 여성 아이돌 그룹들은 여성 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기획사의 마케팅 관계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걸그룹에 남성팬층은 당연히 따라오게 돼있다. 그러나 10대 20대 여성을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당당한 이미지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최대의 란제리 회사인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은 대표적으로 걸크러쉬 마케팅을 사용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가장 큰 마케팅 수단으로 매년 패션쇼를 연다. 이 회사 패션쇼 모델은 전부 당당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근본적으로 패션쇼는 여성 모델을 내세워 여성들의 구매욕을 상승시키는 행사인 것이다. 빅토리아시크릿도 그래서 크러쉬 마케팅을 사용하고 있다. 영산대학교 광고홍보학과 이상훈 교수는 걸크러쉬가 마케팅의 개념은 아니나 기존의 마케팅에서 여성 구매자의 소비욕을 상승시키는 수단이라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기존의 마케팅에 여성을 동경하는 여성 심리를 이용해 여성 제품에 유명 여성 모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