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지옥'에 비유하는 자국비하 풍조 '심상찮다'

김모(29,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 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했다. 김 씨는 최근 최경환 부총리의 인턴을 지낸 사람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석연치 않게 취업했다는 기사를 보고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자주 들어가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맛에 헬조센에 산다. 노오오력해서 빨리 탈조센해라”는 게시물을 보고 왠지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2015년 인터넷 속에서 대한민국이 ‘지옥’이 되고 있다. 어느 날부터 인터넷에서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이른바 자국비하 풍조가 점점 심해지면서,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헬조센,’ ‘불지옥반도’ 등 새로운 용어로 부르는 일까지 등장하고 있다.

2013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헬조센이라는 단어는 ‘디시 인사이드(대규모 커뮤니티의 일종으로 그 안에 연예인 갤러리, 역사 갤러리 등 소모임 갤러리로 나뉘어 있다)’의 ‘역사 갤러리’에서나 일부 사용되던 단어였다.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과거 조선이 살기 힘들다는 것을 조롱하기 위한 단어였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사건 이후 유가족을 방문한 정홍원 전 총리에게 물병을 던진 것을 두고 정몽준 의원의 아들이 SNS에 ‘국민이 미개하다’라는 글을 게시한 이후 이 글에 대한 논란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을 나쁘게 표현하는 단어들이 여러 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3년 이전까지 ‘헬조센’이라는 키워드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약 3만 3,000건이 조회된다. 그러나 201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구글에서 같은 단어를 키워드 검색할 경우, 약 25만 8,000건이 나타난다. ‘불지옥반도’라는 단어도 2013년 이전까지는 구글에서 876건이 검색된 반면, 201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6,060건이 검색된다. ‘미개한민국’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2013년 이전에는 5,140건, 2014년 이후에는 9,270건이 검색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동의대학교 교양학부 김도경 교수는 “(헬조선 풍조는) 과거부터 중첩된 청년들의 우리나라에 대한 절망적인 분노가 일종의 자기비하인 미개라는 단어가 도화선이 되어 폭발한 것”이라며 “이는 단순히 유머가 아니라 젊은 층의 비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절망하는 글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디시인사이드에서 ‘김찍찍’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정말로 (한국이) 지옥 같으니까 (그런 용어를) 사용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같은 사이트에 닉네임 'Modric'은 “우리나라 상류층을 보면, 의무는 다 피하고 권리만 챙겨먹는 걸 보면, 억울하고 내 자신이 불쌍해서 나라에 애국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헬조센 신드롬 속에서 등장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헬조센닷컴()의 운영취지에는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또는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우리나라의 노예 이데올로기와 기득권의 모든 의무를 회피하고 국부 유출을 일삼는 기득권이 득실대는 우리나라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헬조센닷컴을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비하 현상은 연관검색어를 조사해도 드러난다. 네이버에서 헬조선의 연관검색어를 살펴보면, 자살자, 노오오력, 죽창, 지옥불반도 등의 단어들이 보인다. 여기사 나타난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는 인기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등장하는 지역으로 땅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악마들이 사는 지옥의 땅을 가리킨다. 자국비하하는 네티즌들은 한반도를 이게임에 대입하여 지옥불반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노오오력’이란 단어는 실패를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사회를 조롱하는 단어다. 그리고 ‘죽창’이란 말은 어느 네티즌이 “죽창 앞에서는 너도 나도 평등하게 한방”이라고 단 댓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죽창 앞에서 평등하다는 이 댓글은 내용을 뜯어보면 섬뜩하다. 총이 없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던 무기인 죽창으로 찌르면 모두 평등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자국비하에 네티즌 모두가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서 ‘식충식물’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자국비하는 너무 극단적이고 공격적이라 취지는 알겠지만 공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같은 사이트의 ‘응나’는 “헬조센은 결국 자해행위와 자포자기에 불과하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절망하면서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것이라고 자국비하 현상을 분석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우리나라의 삼포세대와 비슷하게, 일본에도 현실에 안주하는 도전 정신 없는 세대를 비꼬는 말로 깨달음이나 득도(得道)를 뜻하는 사토리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사토리 세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해결책은 결국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인 만큼 사회가 청년들의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