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발급받을 때 ‘국제교류기금’ 내는 이유 뭔가"

시민들 "개인여행일 뿐인데"...정부, “대법원 판결로 징수는 적법”

2015-10-15     취재기자 김영백
지난 6월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기 위해 여권을 만들려고 부산 북구청을 방문한 직장인 김기현(26, 부산시 북구 만덕동) 씨는 단수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리고 수수료 2만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자 카드 결제 내역 문자 2건이 수신됐다. 하나는 여권발급 수수료 1만 5000원이고, 하나는 ‘국제교류기여금’ 5000원이었다. 김 씨는 수수료 이외에 국제교류기여금이란 것이 청구되자, 담당 직원에게 설명을 요구했고, 직원은 한국교류재단에 이용되는 재원을 위해 정부가 여권 발급 시 국민들에게 부과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김 씨는 “국민 개개인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국하는 것인데 왜 국제교류기여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여권 발급 시 수수료 이외에 모든 여권 발급자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국제교류기여금 명목으로 일괄적으로 부과되고 있어 지속적인 불만이 생겨나고 있다. 국제교류기여금은 한국국제교류재단법 제16조와 재단법 시행형 제5조에 근거하여 1992년부터 징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련된 재원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이용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한국에 대한 외국의 인식을 재고하고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1991년 12월 30일 설립됐다. 재단은 여권 발급자들로부터 국제교류기금 명목으로 2014년 410억 원, 올해 390억 원 등 최근 5년 동안 평균 388억 원을 거둬들였다. 국제교류재단이 설립되던 제13대 국회외무통일위원회 및 법제사법위원회 법안 심사 과정의 기록을 보면, 국제교류기여금은 우리나라의 국제교류를 위해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은 해외 여행자들에게 일종의 기부금을 받는다는 취지로 시행된 제도였다. 그러나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현재 사실상의 세금이 되고 있어 불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으로, 2010년 한 시민이 국제교류기여금에 반발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소송은 여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고 여권 발급자들이 모두 국제교류를 위해 출국하는 것이 아닌데도 국제교류기여금을 지불하는 것과 이것을 지불하지 않으면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송은 2011년 대법원에서 정부가 이기고 시민이 패소하는 확정판결이 났다. 대법원은 국제교류재단법에 국제교류기여금을 징수할 수 있는 근거조항이 있고 여권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판단이 났음에도 국제교류기여금의 존재를 알게 된 시민들은 대개 기분이 상한다.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북구청을 방문한 대학생 남경민(24, 부산 사상구 모라동) 씨는 국제교류기여금에 대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권을 발급하는데 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기구에 돈을 내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북구청을 방문한 대학생 권재현(25, 부산 북구 덕천동) 씨도 “국제교류기여금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면서 “한국교류재단의 기능은 인정하지만 (지금 상황은) 여권과는 관련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반응에도 추가적인 법적다툼이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판결의 기판력’이 있으므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의 기판력이란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에 대해서는 다른 법원에 제소하더라도 이전 판단과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효력을 말한다. 변호사들은 여전히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사법심사가 아닌 관련 법률을 아예 개정해서 국제교류기금 자체의 법적 근거를 없애는 것이 국민 불만을 해결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여전히 국제교류기금은 법적 근거도 있고 국제교류를 위해 지속적으로 징수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담당자는 “국제교류기여금은 법률로 명시된 수수료”라며 “한국국제교류재단은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공익사업을 하는 만큼 국민 여러분이 협조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