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과 ‘정강이 털’
옛날 중국의 북산에 우공(愚公)이란 아흔 살 노인이 살았다. 그곳은 둘레가 700리에 달하는 태형산과 왕옥산에 가로 막혀서 다른 곳으로 나고 들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우공은 산을 깎아서 통행의 불편을 없애기로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는데, 산의 흙을 삼태기에 퍼 담아서 발해만에 한번 옮겨 버리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를 보고 한 친구가 어리석다며 그만두기를 권하자, 우공은 "산이 저절로 불어나 더 커질 일은 없으니, 내가 죽고서도 내 자손들이 대대로 흙을 옮긴다면 언젠가는 산이 평평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사자성어가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일컬을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노력들일지라도 오랜 시간 꾸준히 하면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우공이산 이외에도 많다.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 어떤 책이든 백 번 읽으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는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 등이 모두 꾸준한 작은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신화는 우리를 자극하여 노력하는 삶을 살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작심삼일형 인간들에게 열패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작심삼일의 경험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게으른 인간인지를 스스로에게 반복적으로 각인시켜 자존감을 낮추고, 최악의 경우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직업도 없고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즉 구직을 포기한, 니트(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Training)족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이들 중 대다수도 여러 차례 작심하고 나름 노력도 했을 것이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말이 쥐들에게 공허한 것만큼이나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공허한 말이기도 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가 문제이듯이, 우공이산의 문제도 꾸준히 노력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정답을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린다면 상황을 잘못 파악한 것이고 따라서 그 해결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에는 개인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사회적 환경이나 시스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니트족을 줄여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는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일이므로 그 일은 결국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근데 현재의 집권당은 약자나 소수자보다는 권력자나 재벌 등 강자를 위한 정치에 더 골몰하는 것 같고 지금의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할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사회 시스템을 바꾸려면 정치권력을 바꿔야하는데 그것은 또 수많은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야 가능한 일이라 이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스템을 바꾸고 싶으면 정치를 바꾸면 된다’는 정답은 나와 있지만 이것 또한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된다’는 정답처럼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공이산의 문제가 개인적 노력을 지속하는 것의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라면,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작은 노력을 한 번에 모아내는 것의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다.
청년들의 투표율과 관련한 얘기를 해보자. 지난 대통령선거와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듯이 5, 60대와 달리 2, 30대 청년들은 대체로 현재의 집권여당보다는 야당을 지지한다. 그래서 청년들의 투표율이 5, 60대의 투표율에 버금가는 투표율을 보인다면 야당이 집권하리라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측한다. 티끌모아 태산이 되듯 청년들이 투표하기만 하면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정답은 나와 있지만, 그것이 실제 현실로 실현되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만큼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는 사상 유래 없이 많은 청년들이 티끌(투표율 약 70%)을 모았는데도 5, 60대가 모은 것(약 81%)에 미치지 못해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의학의 발달로 노인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앞으로는 더 많은 티끌을 모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바라는 청년들 입장에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노력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소처럼 묵묵히 그런 노력을 한다. 여기 소개할 아름다운 한 인간처럼 말이다. 그의 이름은 다시랏 만지다. 1960년 그는 부상당한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도중 그만 아내를 잃고 말았다. 마을에서 병원까지의 직선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산에 가로막혀 55km의 산길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으로 가던 도중 아내를 잃은 그는 그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망치와 정만으로 산을 깎아 길을 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2년 후 그는 결국 산을 깎아 폭 8m 길이 110m의 길을 뚫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마을과 병원의 거리는 15km로 줄어들었다.
한 인간이 초인적 노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이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것이 감동적인 것은 만지처럼 지속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만지처럼 초인적인 노력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만지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도 아주 작은 노력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민주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지만, 그것은 바로 선거가 있는 날 투표하러 가는 것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 한 표 한 표가 모여 정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 작은 노력들을 모으기가 참 어렵다. 옛날 중국의 철학자 양주는 "내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천하가 이롭다 하더라도 내 털을 뽑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개인의 극단적 이기심을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사실 양주가 강조한 것은 이기적으로 살라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사회의 허약함을 경계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현재의 시스템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투표해봐야 뭐하냐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 생각을 좀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데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 뽑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투표는 미래의 운명에 대해 결정하는 행위다. 미래는 노년보다는 청년들에게 훨씬 중요한 것이기에 청년들이 더 절실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티끌을 모으면 태산이 된다. 정답은 정해졌으니 앞으로 선거 때마다 다들 정강이의 털 한 올씩 뽑아주면 된다. 그리고 이왕이면 아는 친구 모두에게 연락해서 모두 다 함께 정강이 털 한 올씩 뽑도록 했으면 좋겠다. 청년 모두가 그 정도의 수고만 해준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