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도 저집도 말소리 하나 없는 ‘적막강산 가정' 많다

부모와 자식 등 가족간 대화단절 세태 심각

2019-05-10     취재기자 김현준
현대

김정희(가명, 45) 씨는 고등학생 아들을 둔 회사원이다. 김 씨는 출근을 빨리하고 퇴근을 늦게 하는 탓에 아들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다. 아들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평일은 물론 주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주말에도 "밥 먹자", ‘"네" 이것이 하루의 대화 전부다. 김 씨는 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은데 상황도 잘 주어지지 않는다며, “아들에게 대화를 걸어도 단답으로만 말하고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해서 너무 속상하네요”라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하지 않는 대화단절 세태가 심각하다. 주변에 들어보면 대부분의 가정이 다 이런 대화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어떤 집은 부모와 자식 간에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하루종일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이른바 ‘적막강산 가정’이다.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대학생 자녀를 둔 집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생 자녀를 둔 박수남(가명, 53) 씨도 딸과의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박 씨가 딸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박 씨의 딸은 아빠가 굳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알 필요가 있냐며 도리어 화를 낸다. 박 씨는 딸과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박 씨는 “딸과 어릴 때부터 대화를 많이 주고받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을 거 같은데 다 제 잘못같아요”라고 말했다.

앞서 나온 경우와는 반대로 자식은 부모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대화를 단절시키는 경우도 있다. 대학생 이도훈(가명, 24) 씨가 그런 경우다. 이 씨는 항상 아버지께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씨의 아버지는 이 씨와 대화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이 씨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많이 하고 싶다며, “아버지와 뭔가 소통, 공감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이 씨와의 생각이 조금 다르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이 때까지 단 한 번도 대화가 적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대화를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버지와 아들로서 해야 할 대화는 했고, 정서적인 공감도 이루어졌다고 느낀다. 이 씨의 아버지는 “저는 아들과의 대화가 적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라며 “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생각이 많아지고, 이런 생각 차이 또한 저와 아들이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 같아서 아들과의 대화를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아들과의 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원활히 잘 되는 경우도 있다. 김혜빈(가명, 22) 씨는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한다. 김 씨는 항상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친구들이 부모와의 대화가 많은 것 같다며 부러워한다. 김 씨는 부모님과의 대화가 없는 집이 이 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며, “저희 집이 부모님과 자식 간의 대화가 많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다른 집들도 부모님과 자식 간의 대화를 많이 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자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