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교과서의 추억

2015-11-01     편집인 강성보

모택동(毛澤東)이야말로 격동의 20세기 초반 외세의 침입으로 만신창이가 된 중국을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든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을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알았다. 친구로부터 빌려 본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Red Star in China)>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모택동이 이끄는 홍군(紅軍)이 장개석(蔣介石) 군대의 추격을 피해 중국 남부 귀주(貴州)에서 서북부 연안(延安)까지 무려 1만 2,000km의 험난한 길을 389일동안 걸어서 주파한 이른바 대장정(大長征)의 기록이다.

미국 언론인 스노우는 당시 그 고난의 행군을 홍군과 함께 하며 모택동의 철학과 비전, 인민에 대한 열정을 서방세계에 최초로 알렸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의 냉전적 사고의 틀에 갇혀있던 나에게 이 책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이뤄졌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고 잘못된 것인지 그 때 깨달았다. 이런 류의 책은 당시 불온서적으로 분류되던 시절이라 하숙방 한 구석에서 두려움으로 백열등 촉광을 낮추고 조심조심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나에게 빌려준 친구는 결국 운동권으로 들어가 활약했고 박정희 유신정권 아래서 많은 고초를 겪었다.

얼마전 신문사 후배가 쓴 칼럼을 보고 “아, 그때 그랬었지”하며 무릎을 쳤다. 30여 년 전 그의 국사 선생님은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뒤 그 뒤로는 “각자 읽어봐”라며 책을 덮었다고 한다. 그 후배보다 약 10년 앞서 학교를 다녔던 우리 세대의 국사 시간은 그보다 더했다. 선생님은 조선시대까지만 가르쳤다. 그 이후는 “대학입시에 안 나오니까 공부할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70년대 초반이니까 그 이후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만 짚어봐도 을사늑약, 한일합방, 일제 식민지 시대, 광복, 6.25 전쟁, 이승만 독재,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 등이 있다. 당시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깊은 파문을 남기고 있는, 아니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엄청난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대입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설명을 생략했다.

당시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덮은 국사 교과서에 이들 내용이 어떻게 기술되어 있었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현대사는 대폭 축소되어 있었거나 사건 연대기 정도만 기술되어 있었을 듯싶다. 아마 제대로 기술되어 있었다 해도 이승만 정권의 치적은 미화되고 독재의 어두운 그늘은 축소되어 있었을 것이다. 4.19 이후 윤보선 대통령 치하의 혼란상은 과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군부의 쿠데타가 구국의 결단에 의한 군사혁명으로 묘사되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당시 우리는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 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다.

라디오에선 연일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다,” “미국은 은혜로운 나라이며, 소련과 중공은 악의 화신이다”라는 인식은 어릴 때부터 주입되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 숙제로 제출된 “상기하자 6.25”라는 제목의 포스터는 북한 괴뢰군이 탱크를 앞세워 삼팔선을 뚫고 내려오는 모습과 도깨비 모양의 김일성 그림이 천편일률적으로 그려졌다. 그것이 우리의 동심에 새겨진 세상의 모습이었다. 초등학생 입에서 ‘미국은 나쁜 나라”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요즘 어린이의 동심 세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초등학생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빨치산 유적을 방문하고 그들의 고난의 역사에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를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지금 온 나라를 들쑤시고 있는 국정 교과서 논쟁에 새삼 끼어들 생각은 없다. 양측 진영의 주장과 논리에 일정 부분 경청할 대목도 있고 각각 문제점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교육시장을 장악한 7종의 검정 교과서가 다소 부실하고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정부와 보수진영의 시도는 이해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정’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올바른’이란 가치 독점적인 외피를 씌워 포장한 것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진보진영 역시 교육의 다양성을 주창하는 그들의 대의는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하지만 상대방을 ‘친일, 독재 미화’의 프레임으로 몰아 부쳐 상대방을 더욱 공고한 아집의 틀 속에 가둬버린 전략상의 우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국정 교과서 논쟁에서 지금 회색지대가 없다. 나라가 두 쪽으로 쪼개지는 이 지경에서 양측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목소리는 이제 새어 나오기도 힘들게 됐다. 이제 국정교과서의 급행열차는 되돌아가기 힘든 지점을 통과한 느낌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상, 또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의 정치 일정상 이 열차에 제동을 걸거나 속도를 완화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30% 콘크리트 지지층을 배경으로, 극우 보수진영의 전투력을 앞세워 박근혜 정부는 국정 교과서 정책을 밀어 부쳐 2년 뒤 우리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이른바 ‘올바른’ 교과서를 쥐어주게 된다. 교사들은 이 교과서를 교재로 학생들에게 한국의 근대사를 수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 지적대로라면 교사 열명 중 여덟, 아홉 명이 친북좌파인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곧이 곧 대로 가르치겠느냐는 것이다. “교과서엔 5.16 군사 혁명으로 쓰여 있지만 실제론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인 패거리들이 정권을 탈취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면 학생들이 질문할 것이다. “선생님, 책에는 다르게 쓰여 있는데요?” 여기에 선생님은 아마 이런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엉터리야. 교과서가 아니라 걸레야.”

교과서는 말 그대로 가르침의 교본이다. 학생들에게 무조건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사에 의해 교과서가 부정되는 현상이 빈발한다면 교육의 토대는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교과서 내용과 교사 가르침의 이율배반-. 그런 교육현장에서 자란 학생이 정부를, 국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타도의 대상, 전복의 대상, 모순 덩어리라는 인식이 심어지지 않으리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최소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시각이 자리잡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서 한걸음 더 상상해보면 국가와 국민간의 상호 신뢰체계가 총체적으로 붕괴됨으로써 그 신뢰체계 하에 질서를 유지하는 묵시적 사회계약이 파산지경을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국가해체이며 역사의 종언(終焉)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파국을 막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제정하기에 앞서 교육 현장부터 정화하라고권고하고 싶다. 80~90%에 이른다는 친북좌파 교사들을 갈아치우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국정 교과서의 모험은 단념하는 게 옳은 길이 아닐까 싶다. 진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든 뒤 기존의 ‘편향적’ 교과서와 전 사회적 담론을 통해 경쟁시켜 압도적 채택율을 유도하라는 것이다. 국정이 아니라 현 검정체제 하에서 말이다. 그것이 이른바 뉴라이트들이 늘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자유 시장경제의 정도(正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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