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연의 색상으로 세계 패션 시장에 도전장
안정된 직장 버리고 천연염색 스카프 회사 창립한 '바라미에' 대표 이원경 씨
‘놈 코어 룩,’ ‘클론 패션,’ ‘트윈룩’ 등등. 이들은 요즘 유행을 가리키는 패션 용어다. 최근 사람들의 패션은 개성이 없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따라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예쁜 연예인처럼 예뻐지기 위해 성형하고, 그들이 착용한 옷을 따라 입는다. 패션도 유행에 따라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 중엔 자신만의 물건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물건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스카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스카프는 구매자의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이 변한다. 빛과 바람을 견디며 환경에 따라 다르게 색이 변한다. 이 스카프는 천연염색이 된 스카프이기 때문이다. 천연염색 패션 브랜드 ‘바라미에’ 대표 이원경 씨는 천연염색 스카프를 통해 한국의 색을 세계로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한국의 명품 스카프를 만들려는 꿈을 가졌다.
그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 중앙여자고등학교를 2006년에 졸업한 그녀는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어 미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예술은 취미로 즐기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길 원했다. 당시 딱히 예체능에 관심이 있는 것 외에 장래희망이 없었던 원경 씨는 컴퓨터정보 계열 전공으로 경남정보대학에 진학하여 2008년에 졸업했다. 그녀는 졸업 전인 2007년에 부산에 있는 직원 열 명 정도 규모의 ‘이넥스 해운항공’이라는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무역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입사한 그녀는 서류 전달 업무부터 하나씩 배웠다. 퇴근 후에는 무역실무 관련 책을 독학했고, 틈틈이 무역 관련 세미나도 참석했다. 물류창고도 실제로 가보면서, 그녀는 물류의 유통 흐름을 책이 아닌 실무로 배웠다. 무슨 일이든 성실히 일하던 그녀의 모습은 회사의 인정을 받았고, 그녀가 하는 일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서류 정리에서 시작한 그녀의 업무는 고객을 관리하는 영역으로 확장됐다. 무역회사가 꿈의 직장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내가 누구보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 불안정한 시기에 (무역 실무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만드는 배움의 시작이었고, 매우 열정적으로 했어요”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던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고객관리에 철저하던 그녀의 모습을 눈여겨본 그녀의 관리 업체 중 한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업무가 아니어도 고객의 일이면 앞장서서 도왔다. 월말에 마감 서류를 보낼 때 초콜릿과 간단한 감사의 말을 적은 포스트잇 메모를 함께 고객사로 발송했다. 원경 씨는 “사소한 것들인데 단순 거래처라 생각하지 않고 정성을 다했던 것이 스카우트 제의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저는 믿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낸 회사는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독일계 세계적 기업 ‘바이엘’이었다. 지방 2년제 대학을 나온 그녀를 바이엘은 특채로 스카우트했다. 원경 씨가 스카우트된 2009년 가을, 그녀 나이는 23세였다. 첫 회사에 입사한 지 정확히 2년째였다. 첫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수출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다 익히고 수입 업무에 대한 영역을 배워가려던 시기에 온 기회였다. 고민 끝에 당시 무역회사 사장에게 원경 씨는 “수출업무를 배웠으니 제조사에서 근무하며 전체 물류유통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사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그렇게 원경 씨는 바이엘 머티리얼 사이언스 세일즈마케팅 부서로 이직했다.
원경 씨는 바이엘에서 수급관리, 재고관리, 판매 매출관리 등의 제조사의 주요 업무를 맡았다. 바이엘 입사 4년 차에 바이엘 그룹이 독일 소프트웨어 SAP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녀는 각국의 바이엘 SAP 프로젝트 팀과 함께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고 배우는 기회도 얻었다. SAP 시스템은 자원관리 시스템의 한 종류로 독일에서 나온 상업용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시간이 흘러 28세가 된 그녀의 삶은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주기적으로 오는 직장생활의 슬럼프는 있었지만 그것 또한 5년 간의 직장생활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근무시간 외에 다른 취미생활을 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IWU 착한 티셔츠’라는 회사에서 주관하는 ‘렛츠미’라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그녀는 그 인연이 지속되어 IWU의 운영진으로 지금도 봉사활동을 한다. IWU는 티셔츠 한 장이 팔리면 한 장을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이밖에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7년 간의 직장생활을 마케팅 부서에서 하던 그녀는 취미로 하던 봉사활동으로 알게 된 사람들을 통해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꼈다. 봉사활동 참가자 중에는 학생과 회사원들도 많았지만, 자신의 꿈을 좇는 도전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그녀는 그들로부터 자극을 많이 받았다. 그녀는 그들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7년간의 세일즈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면서 브랜드 기획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템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던 중, 그녀는 2014년 10월 KT올레와 라이크컴퍼니가 주관한 한 팝업 스토어에서 IWU와 합작으로 참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합작했던 제품이 그녀 어머니가 만든 천연염색 스카프였다. 팝업 스토어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두 달만 운영하는 한시적 상점을 지칭한다. 그녀 삶이 바뀐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면서 밤을 새우고 팝업 스토어 준비에 매진했다. 그것이 지금의 ‘바라미에’의 시발점이었다. IWU합작 업체 중 스카프가 가장 큰 매출성과를 냈고, 이에 자신감을 얻어 바라미에라는 자체 스카프 브랜드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원경 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그녀는 바이엘을 다니며 어지간한 대기업 사원의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들의 만류에 흔들렸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영상을 보고 마음을 굳혔다. 나이가 들어 가장 후회되는 것은 “젊은 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보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불안정하고 위험하지만 해보고 싶은 일이니까 해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어요”라고 말했다.
원경 씨는 천연염색을 하던 어머니를 통해 천연염색의 세계에 빠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천연염색을 위해 한국화와 공예염을 배울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란 그녀는 자연스럽게 천연염색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 가족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그녀가 천연염색 패션 브랜드 만들기로 이끌었다.
그녀의 브랜드인 ‘바라미에’는 수많은 고민 끝에 탄생한 이름이다. 대표 제품인 스카프의 의미도 담아보고, 설문조사도 해봤지만, 모두 그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찍은 스카프 사진을 보던 김경두 사진작가가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고 “바람, 바람에, 바라미에”는 어떠냐고 물었고, 그 이름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원경 씨는 “어감도 괜찮고,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연상되어 좋았어요. 또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의 ‘바람’의 의미도 있어서 ‘바라미에’로 상표명을 정하고 곧바로 상표등록 신청을 했다고 한다.
바라미에는 천연염색 패션 브랜드다. 천연염색은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산야초, 광물질, 곤충 등을 염료로 만들어 피부에 친환경적인 섬유에 자연의 색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천연염색에는 수작업의 반복이 필요하다. 자연 색과 사람 노력이 합쳐져 천연 염색이 완성된다. 천연염색의 매력은 따로 있다. 천연염색은 빛에 의해 색이 깊어지고 바래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습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색이 바래는 양과 형상이 달라진다. 오직 자신의 습관만이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색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천연염색을 젊은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웰빙 패션 아이템으로 탄생시키는 것이 바라미에가 하는 일이다.
바라미에는 여러 천연염색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있다. 원경 씨는 브랜드 운영하던 중 젊은 천연 염색작가를 알게 됐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가의 아버지가 하늘물빛 천연염색 연구소 대표인 홍루까 선생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부산대 패션의류학과 장정대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이 인연들이 이어져 두 분은 바라미에의 자문위원이 됐다. 우연찮은 기회에 알게 된 두 자문위원은 원경 씨에게 지금까지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바라미에는 원경 씨가 대표로 있고, 어머니이자 천연염색 지도사인 정윤미 디자이너, ACC라인의 구은혜 디자이너, 그리고 자문위원으로 구성되어있다. 원경 씨가 사무적인 일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작은 회사다. 그녀는 “아직은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점점 수입이 늘고 있고, 인지도도 상승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돼요”라고 말했다.
바라미에는 스타트업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1년간 바라미에는 조금씩 행사를 진행해오며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올해 5월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경기 국제 관광전에 참여했고, 7월부터 8월까지는 광안리 복합 문화 공간 세인트마레와 합작 전시회를 했다. 현재 작업실은 경남 진주에 있으며,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무실 겸 쇼룸(트레비앙 샵인샵)이 있고, 경남 창녕의 ‘동훈 힐마루CC 프로샵’에도 입점했다. 원경 씨는 “다양한 사람들이 바라미에를 찾아줘서 요새 정신이 없어요. 바쁘기도 한데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기분이라 즐겁네요”라고 말했다.
바라미에는 수작업을 하는 브랜드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사람손으로 상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소량 맞춤형 생산이라는 고급화 전략을 사용하는 이유도 있지만, 여기에는 원경 씨의 철학이 담겨있다. 바라미에는 원경 씨의 철학에 따라 상업보다는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회사다. 공정을 줄이고 단가를 낮추어 대량생산을 하면 지원해주겠다는 기업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원경 씨는 “바라미에는 돈을 좇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처럼 좋은 재료로 좋은 제품만 계속 만들래요. 그러다 보면 천천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지겠죠”라고 말했다.
원경 씨는 10년 안에 바라미에의 건물을 가지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물건을 파는 가게와 전시 갤러리, 직접 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하는 세계적인 명소를 만들고 싶어요. 바라미에는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닌 문화교류 공간을 만드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나아가 세계에 알려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브랜드로 바라미에를 성장시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원경 씨는 현재 바라미에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착한 티셔츠 회사인 IWU의 운영진을 맡고 있고, ING STORY라는 진로교육 회사의 강사로 청년 창업가 멘토링 강연도 하고 있다. 그녀는 올해 5월 강릉 관동대학교에서 멘토링 강연을 했을 때 대부분 대학생의 고민이 취업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녀는 “경험을 많이 쌓아보세요.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회사가 일을 배우기에는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첫 직장은 돈을 번다는 마음이 아닌 돈을 받고 일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많이 배우세요. 그 경험들이 자신의 훌륭한 스펙이 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쫓아가는 그녀를 보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말한다. “아직 저도 배워가는 중일 뿐이에요. 좋은 기회를 스쳐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요. 먼저 움직이세요. 경험을 쌓고 준비하세요. 적절한 시기에 선물처럼 내 눈앞에 꿈같은 기회가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