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4/비틀즈와 양귀비꽃

루씨는 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난다

2019-07-12     서창덕
서창덕

“LSD는 중요한 일에 대한 나의 감각을 강화시켰으며, 동전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스티브 잡스

이게 무슨 꽃일까? 빗방울에도 찢어질 것 같이 꽃잎이 너무나 가냘픈데 색깔은 너무 짙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을 둘러보던 나는 화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빨간 꽃의 정체가 궁금해 사진 찍기를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가끔 노랗고 하얀 꽃도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 빨간 꽃이었다. 처음엔 예뻤는데 오래 볼수록 어쩐지 기품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들이나 산에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더 아름답게 보이고 보는 사람을 순수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런데 이 꽃은 농익은 여인처럼 고혹적인데 어쩐지 선천적으로 불행을 타고난 슬픔 같은 게 느껴졌다. 그때 내 머리에서 갑자기 꽃 이름이 떠올랐다.

양귀비꽃(사진:

양귀비꽃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 마약의 주원료다. 뭐지 이곳은? 나는 지난번 아쉬람에서 소를 키우는 대형 축사를 본 것보다 더한 충격을 받고 주위를 다시 둘러봤다. 설마, 내가 영화처럼 아쉬람으로 위장한 마약의 소굴에 온 것은 아닐까?

다행히 인터넷을 뒤져보니 내가 본 양귀비는 관상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관상용이라도 다른 예쁜 꽃들도 많은데 하필 마약을 연상하게 하는 양귀비꽃을 화단마다 지천으로 심은 이유가 무엇일까?

리시케시에 있는 다른 아쉬람에도 양귀비꽃을 키우는 데가 많았다. 그렇다면 혹시 마약과 깨달음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한국에서 파견된 극한직업 강력수사관처럼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조사 과정이었지만, 수사의 결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할 만큼 놀라웠다.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이었지만, 리시케시는 신들의 천국도 아니고 소들의 천국도 아니었다. 사실은, 마약의 천국이었다. 좀 더럽고 불편하긴 하지만 차라리 소들의 천국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훨씬 좋았다.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리시케시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심지어 벌건 대낮에 식당에서도 대마초를 피워댔다. 나는 아쉬람에서 삼시 세끼 제공하는 인도카레가 지겨워 모처럼 갠지스 강가 전망 좋은 식당에 앉아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잔과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야채들을 잔뜩 시켜놓고 인도카레에 지친 위장을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 테이블에 기타를 메고 딱 붙는 요가 레깅스를 입은 스무 살 남짓한 서양 커플이 자리를 잡더니 이상한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여자는 영화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하얀 들꽃으로 만든 화관까지 쓰고 있었다.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이번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조용한 노래로 시작하더니 갈수록 약기운이 동하는지 술 취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나가버렸다. 아, 모처럼 마음먹고 시킨 나의 아메리카노는 이미 식었고 대마초 향기와 시끄러운 노래에 내 신선한 야채들도 생기를 잃었다.

“Please, be quiet!(조용히 좀 해!)”

동아시인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한 백인남자는 기타를 옆에 세워 놓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한동안 씩씩거렸다. 조용히 칠 바에는 아예 안 치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기타를 치지 않는다고 슬퍼할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겠는가. 기대하던 앙코르가 없자 5분쯤 씩씩거리던 젊은 마약커플은 기타를 들고 나가버렸다.

내가 묵는 아쉬람에도 수시로 마약을 팔러 오는 사람이 들락거렸다. 그 친구는 상당히 선량하게 생긴 젊은 남자였는데 올 때마다 개가 먹을 사료를 한 부대씩 갖고 왔다. 그가 오면 아쉬람을 지키는 사나운 개들도 좋아하고 일하는 인부들도 좋아했다. 아쉬람에 핀 양귀비꽃들은 혹시 저 잘 생긴 마약상이 몰래 선전용으로 심어놓은 것은 아닐까? 견물생심이라지 않는가. 그나저나 왜 리시케시는 마약의 천국이 되었을까? 나는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전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리시케시가 유명해진 건 순전히 비틀즈 때문이다. 비틀즈가 오기 전까지 리시케시는 히말라야 수행자들이 머물던 조용한 작은 읍이었다. 그런데 1968년 초. 세계적인 록그룹 비틀즈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전혀 뜻밖의 장소인 리시케시에서 발견되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요즘 사람들은 잘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요즘 시대의 비틀즈로 비견되는 BTS(방탄소년단)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자동차로 가기도 힘든 네팔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비틀즈 멤버들 전원이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몇 달간 리시케시에서 히말라야 수행자처럼 살았다. 그들의 수발을 드는 사람들만 170명이 넘었다고 하니 몰려드는 기자들과 팬들까지, 그 작은 도시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하루아침에 무명의 리시케시는 비틀즈만큼 유명한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비틀즈를 리시케시로 이끈 건 놀랍게도 LSD라는 마약이었다. LSD는 코카인이나 필로폰의 300배 이상의 환각 효과가 있는데 비틀즈의 첫 경험은 1965년이었다. 조지 해리슨과 존 레넌이 치과의사와 부부동반으로 저녁을 먹는데 치과의사가 커피에 몰래 LSD를 탔다. 약기운이 돌자 존 레논은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려 자꾸만 숨으려 했지만, 조지 해리슨은 운명적으로 신(神)과 조우하게 된다. 이후 조지 해리슨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자리에 없었던 폴 메카트니도 마약을 통해 신을 만나게 되는데, 이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 비틀즈는 LSD에 몰입했고 유독 많이 애용했던 존 레넌은 1967년에 루씨가 하늘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며,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만들었다.

존 레넌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앨범의 영상과 가사를 보면 환각상태를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나중에 폴 메카트니는 그 곡이 LSD와 관련된 게 맞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 앨범을 발표한 1967년에 정신적 지주이자 동료였던 매니저 폴 앱스타인이 32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어버렸다.

비틀즈는 젊은 나이의 매니저가 죽자 마약을 하면 자신들도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린다. 마침 열심히 만들었던 영화도 참패했다. 승승장구하던 비틀즈는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이때 초월명상을 개발한 인도의 수행자 마하리시 마헤시를 만나게 되는데 런던의 강연회에 흰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난 마하리시는 LSD에 의존하지 않고도 명상을 통하여 더 강한 황홀감과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며 비틀즈를 설득했고, 6개월 후 비틀즈는 리시케시의 마헤시 아쉬람에 수염을 기른 수행자가 되어 기자들에게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비틀즈는 리시케시에 가서 완전히 마약을 끊었을까? 아니다. 그들을 이끈 초월명상의 창시자 마하리시 마헤시는 여자와 돈만 밝히는 가짜였다. 그리고 리시케시는 세계적인 록스타가 머물기에는 너무나 무료했다. 불과 열흘 만에 가장 화려한 악기를 치는 링고스타가 떠났고 처음부터 명상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던 폴 메카트니는 한 달 만에 떠났다. 가장 적극적이었던 조지 해리슨과 존 레넌도 석 달 만에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떠났지만 존경하는 비틀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히피들은 떠나지 않았다.

히피들에게 리시케시는 너무나 완벽한 조건이었다. 양귀비꽃은 어디에나 피어 있어 양질의 마약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고 마약에 대한 반감도 없었다. 반전(反戰)과 평화를 외치는 그들에게 요가와 마약을 겸비한 리시케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신들의 도시 리시케시는 히피와 마약의 도시로 추락해 갔다.

비틀즈가 리시케시에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그들은 무려 48곡에 달하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 곡들이 세계에 퍼지며 또 세계의 히피들을 리시케시로 불러들였다. 리시케시의 아쉬람마다 요가를 하는 히피족들로 넘쳐났다. 그들 속에는 비틀즈와 히피문화에 열광하는 젊고 가난한 스티브 잡스도 있었다. 잡스는 1974년부터 약 2년간 인도에 머물렀는데 리시케시를 비롯해 주로 인도의 북쪽이었다. 그는 인도에서 수행자처럼 롱기를 입고 맨발로 다녔는데 미국에 돌아온 뒤에도 맨발로 다녔다. 그는 자서전에서 LSD는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경험이었으며, 그것은 동전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일에 대한 감각을 강화시켰다고 고백한다.

비틀즈(사진:

“나는 그거 평생 하고 싶다. 난 천재되고 싶어서 하는 거다.” - 아이콘, 비 아이

옛날에 인도에는 소마라고 하는 신비한 영약이 있었는데 신들이 마시는 술이었다고 한다. 이 약을 인간이 먹으면 단번에 깨달음을 얻고 신을 만나고 신의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LSD와 비슷한 효과다. 소마를 만드는 방법이 비밀리에 전수되어 오다가 지금은 끊겼는데 이유는 이 약이 인근 마을에 많은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마 심각한 부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도의 라제쉬교수는 신비의 영약 소마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작년에 나는 그를 따라 실제 소마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해발 4천m 높이에 있는 히말라야의 바드리나트에 갔었다. 내가 머무는 리시케시에서 차를 타고 장장 스무 시간이나 위험한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중간 중간 산사태로 무너진 곳도 많았고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져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버스를 보기도 했다. 눈 때문에 최고의 성지(聖地) 바드리나트에 갈 수 있는 기간은 고작 두세 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에 많은 차와 오토바이들이 몰려 매우 위험했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간 곳에서 라제쉬교수는 웅장한 절벽을 가리키며 바로 저곳이 소마를 만들던 곳이라고 했다. 내 눈엔 아무리 봐도 그냥 시커먼 절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저 절벽 어느 곳에 입구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나는 입구를 찾을 수 없었고 소마도 구할 수 없었다. 나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소마가 지금의 LSD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LSD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스위스의 호프만 박사다. 그는 맥각균을 연구하다가 이 물질을 발견했는데 스스로 복용을 한 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처음으로 환각을 경험했다. 히피들은 이날을 ‘자전거의 날(Bicycle day’이라 부르며 지금도 중요한 날로 기념한다.

LSD의 특징은 환각이다. 인체의 세로토닌 성분은 주로 이성을 관장하는 뇌의 전두엽에 작용해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을 높여주는데 이것이 억제되면 뇌의 현실인지가 마비되어 처음 듣는 음악이나 처음 보는 이상한 그림 등의 환각이 나타난다.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처럼 늘 새롭고 독특한 작품을 갈구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구세주인 셈이다.

히말라야(사진:

“LSD는 마음을 여는 경험이었다.” - 캐리 멀리스(1993년 노벨화학상 수상)

LSD가 소마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LSD의 효과가 명상의 효과와 아주 흡사하기 때문이다. LSD를 한 사람처럼 수행자도 깊은 상태에 도달하면 소리가 보이고 글자도 소리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또 자아가 상실되면서 정신이 고양되고 초월적 사고력이 생기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실제 명상을 하면 LSD를 한 것처럼 세로토닌의 분비가 억제된다는 것이다.

명상을 비롯한 모든 수행의 목표는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육체라는 물질 속에 갇혀 있는 유한한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깨닫기가 무척 어렵다. 명상을 하는 사람도 어려운데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경전을 읽고 배웠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험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고대에 소마라는 약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일반적인 마약이 고통을 주관하는 신경계를 마비시켜 쾌락을 유도하는 것에 비해 LSD는 전두엽으로 가는 세로토닌을 차단시켜 뇌의 현실 인지 능력을 마비시킨다. 현실을 인지하는 능력이 좋은 기능도 있지만 현실만 전부인 것으로 한계를 짓는 반대의 기능도 있다.

그런데 세로토닌에 의해 현실에서 분리되면 마음은 제약이 없어지게 되고 경계가 풀린 다른 세상이 열린다. 내가 육체라는 물질 속에 갇혀 있는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는 환각을 경험한다. 색과 소리들이 내 육체를 통과해 버리고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잡스는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동전의 다른 면이라면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깨달은 성인들이 현실은 그저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분들의 주장이라도 빤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환상이라고 무시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마음은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지 못하면 절대 열리지 않는다.

인도의 석학 라즈니쉬에 의하면, 예전에 인도의 아쉬람에는 일부러 정신병자를 기거시켰다고 한다. 깨달은 사람이 신의 감로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 정신이 나간 바보의 행동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수행자는 바보를 보며 현실과 이성이 전부일 거라는 고정된 마음의 문을 열라는 것이다. 아마 지금보다 더 과학이 진보한다면 부작용 없이 약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아직 신은 인간에게 LSD를 허락하지 않았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 가득 핀 양귀비꽃들이 이제야 안심을 했다는 듯 바람에 하늘거리며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웃어? 양귀비가 정말 웃었다는 것이야? 아직도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다. 이제,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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