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내 모 여고의 슬픔 "가해자는 어딨고, 피해자는 왜 떠나나요"
"비밀로 해달라" 학부모 요청에도 담임교사 피해자 B 양 전학 공개 부산교육청 "사립고교 학폭 처리 깊게 개입할 수 없어" 소극적 태도
부산시내 모 여고 1학년 A 학급 학생 B 양은 전학을 앞두고 있다. B 양에게 학교는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었다. 입학 직후인 3월부터 지금까지 학급 내 물품 훼손 및 도난 사고가 잇따랐지만, 1학기 내도록 가해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피해자 중 한 명인 B 양은 결국 다른 둥지를 찾기로 했다.
지난 3월부터 발생한 A 학급의 물품 훼손 및 도난 사고로 피해자 중 한 명이 전학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려움과 스트레스로 학생은 교실을 떠났지만, 가해자는 특정하지 못한 상태. 이에 학교가 ‘골든타임’을 놓치는 등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급기관인 부산교육청 역시 학교 관리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5일 부산 모 여고 관계자와 학부모 등에 따르면 이달 초 피해 학부모의 요청에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가 소집됐다. 지난 3월부터 발생한 학급 내 물품 훼손 및 도난사고에 따른 것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과서와 노트가 찢어지고, 지갑들이 속속 사라졌다. 보통 단순 도난은 학교 폭력이 아니다. 그러나 A 학급의 경우 피해 학생이 20명이 넘고, 특정 학생의 피해 정도가 상당해 학교와 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학교 폭력으로 봤다.
학폭위를 통해 피해자 중 한 명인 B 양의 전학이 결정됐다. 이는 학부모의 요청에 따랐다. 과거 피해자 보호조치에 피해자 전학이 있었지만, 해당 조항은 삭제된 상태다. 가해자 전학 처분만 가능하다. 물론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가해자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가해자 색출에 앞장섰다면 피해자가 스스로 학교를 떠나지 않아도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A 학급의 담임교사가 학폭위의 ‘비밀 누설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방학식 전날 B 양의 전학 결정을 학급 학생들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B 양의 부모는 개인적으로 담임교사에게 B 양의 거취 문제를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B 양의 심리상태는 물론, 전학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피해 학생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서다.
학교 측은 “담임교사는 전학을 가는 학생과 남은 아이들 모두 서로 인사라도 나누는 것이 교육적인 목적에서 바람직하다고 봤을 것”이라면서 “담임교사도 이번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부산교육청은 사립학교인 학교 측의 관리·감독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나서서 특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교육청은 학교가 폭력사안을 잘 처리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성해주고, 집중상담 기관을 선정해주는 등 방향 설정을 해주는 것이 전부”라고 밝혔다.
불미스러운 사안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학교 문화와 이를 감시 감독해야 할 교육청의 ‘뒷짐’이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A 학급 다른 학부모들은 학교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극 협조하고 있다.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입시에서 학교와 교사의 ‘평가’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녀의 입시가 교사의 펜 끝에 달린 셈이다. 학부모가 학교의 문제에 솔직하게 나서지 못해 제도적 구멍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A 학급의 한 학부모는 “가해자는 그대로 있고 피해자가 오히려 전학가야 하는 현실이 황당하고 억울하긴 하지만 우리 아이를 생각해서 학교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달래고 있다”면서 “학교의 사건 처리에 불만이 있어도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2학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제발 가해자가 잡혔으면...”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