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0/꿈의 카페
락슈만 줄라
‘꿈의 카페’로 연결된 아수라의 다리
한국식당 ‘꿈의 카페’는 갠지스강 상류의 '락슈만' 다리 동쪽에 있다. 내가 있는 아쉬람은 갠지스강 하류의 ‘람’ 다리 서쪽에 있다. 두 다리의 거리는 직선으로 약 2킬로미터 쯤 된다. ‘꿈의 카페’는 내게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반가운 휴게소 같은 곳이다.
인디언 카레로 피로해진 몸을 칼칼한 김치찌개로 씻어 내릴 수 있고, 모처럼 한국어로 정확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틈에서 안도할 수 있다.
내가 있는 아쉬람에서 꿈의 카페에 가려면 ‘람’ 다리를 건너 40분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무슨 가파른 산길도 아닌데 고작 2킬로미터 가는데 40분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우선 릭샤 정류장을 통과해야 한다. 정류장은 옛날 부산의 구포장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릭샤를 타러 온 사람,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을 겨우 빠져나오면 운전수들이 릭샤를 타라고 막아선다.
안 탄다며 손사래를 치는 틈으로 오토바이가 빵빵거리며 길을 비키라고 난리다. 그 사람들 신경 쓰느라 방심하면 금방 싼 따끈한 소똥을 밟을 수 있다. 또는 밤새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지쳐 잠이 든 개의 꼬리를 밟아 자지러지는 비명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거나 날카로운 이빨에 발목을 물릴 수도 있다.
그들을 무사히 빠져나오면 겨우 람 다리 입구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았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쭉 늘어선 걸인들을 외면하고 지나가야 한다. 눈 한쪽이 없거나 두 팔이 없거나 무릎 아래가 없거나 자세히 보면 불편하고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최고의 강적은 그들의 눈이다. 분명히 배우처럼 과장된 눈빛인데 늘 가슴 깊숙한 곳을 후벼 판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몇 번 지나가다 보니 이제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지 내게 크게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지는 않는다. 하루에 수천 명이 지나가는데 그 틈에서 어쩌다 한번씩 지나가는 나를 알아본다는 것은 대단한 눈치다. 확실히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면이 있다. 그들은 비가 많이 올지 아니면 잠깐 흩뿌리다 그칠지 정확하게 감지한다. 이곳은 히말라야의 끝자락이라 가끔 멀쩡하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갑자기 비를 뿌릴 때도 있다.
걸인들의 애처로운 눈을 피해 다리에 올라섰다고 하여 끝난 것이 아니다. 다리를 건너가기는 더 어렵다. 람 다리의 폭은 1.5미터, 길이는 아마 300미터 쯤 될 것이다. 그 좁은 폭을 사람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지나간다. 그래도 좌측통행을 하면 그렇게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 숫자만큼이나 많은 오토바이들이 지나간다. 그것도 양쪽으로. 그 상황에 사람들은 중간 중간 기념사진들을 찍는다. 가끔은 큰 짐을 실은 수레도 지나가고 심심해진 소도 지나간다. 이 모든 게 1.5미터의 폭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리를 건너면 또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에 떼로 몰려다니는 소와 소똥과 오토바이와 빵빵거리는 차들을 피해서 가야 한다. 악취와 먼지와 긴장 탓에 꿈의 카페에 도착하면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꼭 가야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카페에 가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에 한번은 꼭 가야 할 일이 생긴다.
‘릭샤’의 요금을 보며 선과 악을 생각하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내게 릭샤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저것을 타고 가면 되겠구나. 늘 복잡한 곳에서 길을 막아서던 호객행위가 귀찮기만 했는데 갑자기 릭샤가 구세주로 다가왔다.
인도의 릭샤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옛날 한국에 있었던 삼륜차를 생각하면 된다. 엔진은 경운기 엔진이다. 그러니까 바퀴는 세 개에 경운기 엔진을 달았고 앞에만 창문이 있고 출입문도 없다. 앞좌석에 운전수를 포함해 두 사람이 타고 뒤에 마주보고 여섯 명이 탄다. 그러니까 총 8명이 정원인데 인도는 보통 정원의 두 배까지 타니까 16명까지도 가능하다. 그래서 릭샤는 자주 펑크가 난다.
마침 빈 릭샤 한 대가 서 있었다. 운전수가 젊다. 락슈만 줄라! ‘줄라’는 인도말로 ‘다리’ 라는 뜻이다. Get in!(타!) 그는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생긴 듯 경쾌한 목소리로 타란다. 아까부터 아줌마가 그에게 계속 뭐라고 사정을 했지만 상대도 안 하며 나보고만 타란다. 아마 아줌마가 무임승차를 시도한 것 같다. 나는 선뜻 타지 않고 가격부터 물었다. 인도에서는 항상 바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How much?(얼마야?)”
“괜찮아, 그냥 타!”
“No! How much?(글쎄, 얼마냐고?)”
그는 내 눈치를 보더니 바가지를 포기했다는 듯 피프티! 한다. 50루피. 50루피면 한국 돈으로 800원이니까 뭐 그 정도면 바가지는 아닌 것 같다. 짜식. 내가 이래봬도 인도에 세 번째 왔는데 어디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나는 비로소 안심하며 릭샤를 타고 락슈만 줄라로 향했다. 중간에 두 어 사람이 더 탔다.
람 줄라에서 락슈만 줄라로 가는 길은 상당한 오르막길이라 릭샤의 엔진을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 기름 값이 많이 들겠는데, 팁을 좀 줘야 하지 않을까,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힘들어하는 릭샤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운전수는 기분이 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젊은 친구가 상당히 낙천적이다.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 좋은 일이 있든, 없든, ‘호갱(호구 고객)’을 만나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고 기름 값이 많이 들어 별로 남는 게 없더라도 저렇게 늘 밝게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오는 것이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했고 햇살도 좋았다.
내가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전에 릭샤가 정차했다. 다리 앞까지 가는 줄 알았는데 모두 내리는 바람에 나도 따라 내렸다. 100루피를 주니 50루피를 거슬러 준다. 팁을 줄까도 생각했지만 특별히 받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잔돈을 받고 락슈만 줄라를 향해 걸었다.
100미터쯤 갔을 때였다. 오토바이와 차와 소똥을 피해 분주하게 걷고 있는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낮은 음성의 남자 목소리였다. 설마 나에게 하는 소리는 아닐 테고. 전화 통화하는 소리겠지 생각하며 계속 내 길을 갔다. 그런데 그 남자는 뒤에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를 졸졸 따라왔다. 락슈만 줄라가 어떻고 람 줄라가 어떻고 10루피가 어떻고 20루피가 어떻다는 대충 뭐 그런 내용이었다. 뭔 소리지? 치매에 걸렸나? 그래도 나하곤 상관없으니까, 나는 크게 주의를 두지 않았다.
멀리 락슈만 줄라가 보였다. 나는 길을 건너기 위해 오가는 차들과 오토바이의 틈을 노렸다. 여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절대 사람에게 양보하는 법이 없다. 알아서 피해가야 하고 알아서 건너가야 한다. 잠시 틈을 노리는 사이 뒤에서 중얼거리던 남자가 나를 지나쳐갔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걸어갔다.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다부져 보였고 정면만 응시한 채 무표정했다. 치매 걸릴 나이는 아닌데. 정신병자인가. 정신병자 표정도 아닌데.
나는 길을 건너고 나서야 나를 따라왔던 그 남자의 영어가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람 줄라에서 락슈만 줄라까지 오는 길은 10루피만 주면 되고, 락슈만 줄라에서 람 줄라까지는 20루피다. 그랬다. 그 남자는 아둔한 한국인을 이해시키려고 혹시 주위의 릭샤 운전수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무표정하게 앞만 보며 100여 미터를 졸졸 내 뒤를 따라오며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아, 그렇게 조심을 했건만 결국 나는 바가지를 쓴 것이다. 그제야 운전하는 내내 행복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운전수가 이해가 되었다. 혹시 아직 그 릭샤가 있을까 싶어 내가 내렸던 정류장을 뒤돌아보니 릭샤는 벌써 사라지고 먼지만 풀풀 날린다.
아, 이놈의 인도. 왜 이들은 기를 쓰고 악(惡)을 행할까. 절대 양보란 없고 아주 작은 틈이라도 보이면 사기를 치려고 달려든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고 업이라며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한다. 어떻게 이런 아수라장에서 석가모니 같은 높은 영혼들이 배출되는 걸까.
나는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발길을 돌렸다. ‘꿈의 카페’에서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면 40루피 정도의 바가지쯤이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람 줄라에서 락슈만 줄라는 힘든 오르막길이고, 락슈만 줄라에서 람 줄라까지는 편한 내리막길이라 기름도 별로 들지 않는데 왜 가격이 배나 비싼 거지?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그날은 모처럼 먹은 김치찌개도 맛이 없었다. 한국인 여사장이 요가를 배우러 가서 아직 오지 않았고 인도 주방장이 해준 김치찌개는 매콤하고 시큼한 그냥 인도 카레였다. 리시케시에서는 식당에서도 요리에 고기를 쓸 수 없기 때문에 김치찌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바가지 쓴 40루피가 목구멍에서 다시 올라왔다.
일주일 뒤, 나는 ‘꿈의 카페’에 가기 위해 다시 아쉬람을 나섰다. 오늘은 몇 명의 한국인이 리시케시를 떠나는 날이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두 사람은 바라나시로, 한 사람은 달라이 라마가 있는 히말라야 라다크로, 나머지 한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간다. 방향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방향에 대한 나름의 이유는 모두 타당하다. 과연 누가 정답의 길을 가는 걸까? 정답이 없는 걸까? 분명한 것은 모두 각자의 정답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나는 릭샤에 올랐다. 이번에는 흥정을 하지 않고 익숙한 인도 사람처럼 무덤덤하게 릭샤를 탔다. 덧붙여 약간의 위압적인 분위기 연출을 위해 선글라스까지 꼈다. 자주 타는 릭샤라 아무 것에도 관심 없다는 듯 앉아 있자 운전수도 승객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내는지 선글라스 너머로 집중했다. 정확히 10루피였다. 다시 흥겹게 노래를 부르던 일주일 전의 운전수가 떠올랐다. 가끔 나를 힐끔거리며 웃더니 속으로 이 바보야, 넌 바가지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팁까지 줄 생각을 했다니.
종교를 빼면 사실 인도는 위험하고 거의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성지 중의 성지라고 하는 바라나시는 특히 위험하다. 바라나시를 가겠다는 한국인들, 특히 여성들에게 나는 항상 절대 밤에 혼자 다니지 말라고 몇 번씩 주의를 준다. 신성한 곳일수록 악은 더 넘치고 더 더럽고 더 정신이 없다. 이 극과 극의 연결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이러한 아수라장에서 최고의 성인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혹자는 진흙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그 모든 악의 유혹을 모두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일까?
혹시 높은 히말라야 때문은 아닐까. 사시사철 하얀 만년설이 덮여 있는 히말라야는 늘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 신성한 기운들이 세계 최고의 성인들을 배출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왜 더 악한 것일까? 그들도 밤낮없이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기운을 받고 살지 않는가.
떠나는 한국인들과 꿈의 카페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언제 다시 만날까.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각자의 길에서 리시케시에서 만났지만 가는 방향은 모두 달랐다. 라다크로 떠나는 A는 리시케시에 요가를 배우러 왔다가 실망하고 히말라야 라다크에 있는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면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B와 C는 바라나시에 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다며 그곳에서 요가와 시타르를 배우며 몇 달쯤 있으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것 같다고 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이제 충분히 경험했으니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확신만 있을 뿐이다. 몇 달 뒤에, 낯선 길 위에서 아, 이 길이 아닌가봐, 하며 다시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지금의 확신으로 자신이 선택한 방향으로 가는 것. 그것이 불안하게 떠도는 우리의 인생이다.
내 길은 어디일까. 나는 지금 어떤 확신으로 어떤 오류의 길 위에 서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마음에도 허공에서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드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과 작별하고 내가 머무는 아쉬람으로 돌아오다가 다시 나는 릭샤를 타기 위해 락슈만 줄라로 향했다. 아직 거꾸로는 한번도 릭샤를 타보지 않았는데 내 뒤를 따라왔던 그 남자의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그 남자의 말에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리막길이니까.
릭샤가 길을 따라 한 줄로 쭉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이 먼저 호객행위를 했다. 어디가요? 람 줄라! 얼마야? 오십 루피! 나는 어둠 속에서 혹시 2시간 전에 내게 바가지를 씌운 놈이 아닌가 싶어 한 번 더 봤지만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 더 걸어갔다. 또 다른 놈이 붙었다. 람 줄라! 얼마야? 오십 루피! 한 번 더 봤지만 그 친구도 아니었다. 내 얼굴에 50루피라고 쓰여 있는 걸까. 나는 또 앞으로 갔다. 람 줄라! 30루피! 이것도 아닌데.
그럼, 얼마에 갈려고?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텐! 나는 집게손가락 하나를 펴서 하늘을 찔렀다. 10루피! 맞잖아. 순간 그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내 기에 질려버린 표정이었다. 나는 그냥 인도 사람처럼 제일 앞에 있는 릭샤에 탔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얼마를 내는지 유심히 봤다. 아, 그런데 그들은 정말 20루피를 내는 것이었다. 나를 따라온 그 남자 말이 맞았다. 내리막이지만 락슈만 줄라에서 람 줄라까지는 20루피였다.
일주일 뒤, 다시 나는 ‘꿈의 카페’로 향했다. 이번에도 남아 있는 몇 명의 한국인이 리시케시를 떠나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마저 떠나면 한국인은 나만 남는다. A는 델리에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하고 B는 네팔에서 트레킹하며 히말라야의 기운을 조금 더 받아야겠다고 한다.
C는 태국에서 위파사나를 배우겠다고 한다. 위파사나는 우리 아쉬람에 잘 하는 친구가 있는데. 내가 소개를 해줄 수도 있어. 굳이 태국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꼭 가야된단다.
이들의 여행은 어디쯤에서 끝날까. 정답은 없어도 지금 그들은 확신하고 있다. 자신이 내린 결정을. 그러나 우리가 믿고 있는 삶의 진실들은 얼마나 가벼운가. 어떠한 근거와 과정에 의해 확신을 하든, 꿈에서 완전하게 깨어나기 전에는 모두 의심해야 한다.
아, 그런데 나는 그날 저녁 네팔로 떠나는 B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자기는 리시케시에 머무는 6개월 동안 락슈만 줄라에서 람 줄라까지, 심지어 람 줄라를 한참 지나 마을에 있는 시장까지 가는데도 늘 10루피만 주고 다녔단다. 뭐라고? 분명히 락슈만 줄라에서 람줄라까지는 20루피인데. 내가 분명히 봤는데. 아, 도무지 알 수 없는 나라. 그러므로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 어떠한 근거와 과정에 의했던, 아무것도,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