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예술혼 위협하는 '예술 기계' 등장

‘라떼 아트’도 기계가 대신...전문가, 예술가 창작성은 따라하지 못할 것

2016-12-17     취재기자 최영민
미적(小天鹅)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이는 흔히 알고 있는 예술에 대한 정의다. 예술은 오직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진 인간만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예술 행위를 대체하는 프로그램화된 '예술 기계'들이 속속 개발되어 등장하고 있다. ‘라떼 아트(latte art)’는 바리스타가 우유 거품으로 에스프레소 표면에 여러 디자인을 하는 예술 행위를 말한다. 라떼 아트는 ‘art’라는 뜻처럼 커피를 즐기는 사람에게 미적인 즐거움까지 줄 수 있어 바리스타가 가져야 할 주요 기술이다. 그런데 인간 바리스타보다 훨씬 빠르고 정밀하게 라떼 아트를 구현하는 기계가 출시됐다. 이름은 ‘리플 메이커(Ripple Maker)’다.
26cm x 21cm 크기의 리플 메이커는 커피에 원하는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는 라떼 아트 기계다. 이 기계는 3D 프린팅 기술을 사용하여 보다 정교한 라떼 아트를 구현하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10초도 안 돼 커피잔에 그림을 완성한다. 이 기계는 유튜브를 통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엔 들어오지 않았다.
개인 카페를 운영 중인 바리스타 김강우(32, 경남 김해시 관동동) 씨는 “이런 기계가 출시된 줄 몰랐는데 만약 한국으로 수입되면 바리스타 시장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며 리플 메이커 존재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김 씨는 “라떼 아트는 정밀함도 중요하지만 아트를 하는 바리스타의 스타일과 창의성도 중요하다”며 “리플 메이커가 라떼 아트의 그런 예술성 측면에서는 바리스타를 대체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라떼 아트 세계 챔피언십 대회에서는 정밀함보다는 아티스트 본인이 표현한 정서와 그 자신만의 ‘화풍’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리플 메이커는 사진이나 글자를 그대로 본 떠 커피에 그림을 그리는 3D 프린팅 기술로써 기계가 심도 깊은 예술을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예술가들의 화풍과 창의성마저 따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독일 튀빙겐 대학의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공개된 논문, ‘예술적 스타일의 신경 알고리즘(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에 소개된 이 프로그램은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한다. 인공신경망은 인간이 뇌를 통해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에서 채택하고 있는 통계학적 학습 알고리즘을 말한다. 연구자 중 한 명인 레온 가티스는 이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경망 네트워크에서 기초가 되는 이미지의 내용과 특별한 예술작품의 스타일이 분리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내용(content)은 그대로 유지하고 질감(texture)만 화가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작품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프로그램에 사진이나 그림을 입력시키면, 유명한 화가들의 화풍을 묘사한 작품으로 완성된다.
미술을 구현하는 프로그램은 이 뿐이 아니다. 구글에서 배포한 ‘딥 드림(Deep-Dream)’도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꿈을 꾸는 듯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하여 이름 붙여진 딥 드림은 입력한 사진이나 그림에 대한 정보를 구글에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재구현하는 방식이다. 딥 드림을 자주 이용한다는 대학생 이찬우(25, 부산시 중구 보수동) 씨는 “내 사진들이 딥 드림을 통해 새롭게 구현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예술가가 된 느낌을 받기도 한다”며 “그런데 가끔 너무 기괴하게 표현된 이미지들이 나오면 깜짝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딥 드림은 기괴한 이미지를 생성시킨다 하여 네티즌들 사이에선 ‘혐짤 생성기’라고도 불린다. ‘혐짤’은 혐오스런 사진을 말하는 신조어다.
하지만 모방을 바탕으로 하는 이런 프로그램이 과연 ‘독창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 관련 저명한 학자인 미국 조지아 대학의 마크 리들 교수는 인공지능을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창작은 아직은 독창적인 창작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마크 리들 교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간은 보고, 듣고, 대화하면서 세상의 정보를 축적한다”며 “예술가에 버금가는 창작을 하려면 인간이 누리는 세상을 데이터로 환산해 프로그램에 모두 주입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