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6/더 깊은 히말라야 속으로 1(상)
히말라야 폭포 위 텐트촌을 향해 가다
한국식당 ‘꿈의 카페’에서 만났던 한국인이 카톡으로 한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높은 산인데 검은 텐트가 몇 개 쳐져 있었다. 일반적인 캠핑용 텐트보다 더 커보였다. 더 깊은 히말라야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큰 폭포가 나오는데 폭포를 지나 한참 올라간 곳에 텐트촌이 있단다.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깊은 명상을 하기에 리시케시는 너무 시끄럽고 내가 머무는 아쉬람도 취미삼아 몰려드는 뜨내기 명상객들로 늘 북적거렸다. 나는 조금 더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깊은 히말라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갈 수는 없었다. 사진을 보내온 사람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남겼더니 한참 뒤에 답이 왔다.
-글쎄요. 호랑이는 물어보지 못했는데요. 없겠죠. 뭐.
-직접 갔다 온 게 아닌가요?
-네, 저도 한국식당에서 만난 외국인한테 들은 정보예요.
작년에 나는 여기서 불과 10킬로미터 떨어진 아쉬람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분명 호랑이가 출몰했다며 주의가 필요하다는 섬뜩한 경고판을 봤었다. 카톡이 한국을 거쳤다 오는지 계속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기야 물어봤자 본인이 갔다 온 것도 아니니 더 이상의 정보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수련을 한다는 것은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다. 나는 옷장에 넣어둔 배낭을 꺼냈다.
일단 이틀 정도 머물 채비를 했다. 먼저 답사가 필요했다. 상황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장기간 숙박을 할 수는 없었다. 여분의 속옷과 양말을 챙기고 두꺼운 옷 한 벌을 배낭에 밀어 넣었다. 최종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아쉬람의 사무실에 들러 여러 가지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나 그들도 이곳에서 크고 자랐지만 히말라야 깊숙한 곳까지 가보진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했다. 호랑이가 예전에는 있었는데 아마 지금은 없을 것이라는 정도였다. 원숭이는 확실히 있고 코끼리를 봤다는 사람도 있는데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인도에는 호랑이나 표범이 민가까지 내려와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많았다. 까짓것 마주치면 한판 붙어도 크게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쓸데없는 곳에 신경이 쓰이면 명상이 방해될 것이고 그러면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였다. 교통편을 물으니 버스나 릭샤는 폭포까지 가지 않고 오로지 택시만 가능한데 요금은 오백 루피에서 천 루피까지 부를 테니 잘 협상을 해보란다.
어린 시절의 파라마한사 요가난다가 그랬듯이 눈 덮인 히말라야는 수행자에게 늘 유혹과 동경의 대상이다. 어쩐지 진정한 수행자라면 당연히 그곳에 있어야 될 것 같고 그곳에 가면 모든 수행이 완성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도 늘 동경했지만 히말라야가 생각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만만하게 보고 준비 없이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나도 작년에 해발 4천미터 히말라야 바드리나트에 갔다가 미끄러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뻔 했었다.
릭샤 정류장 옆에는 택시회사 간판이 있고 유리로 된 작은 사무실에 기사들이 모여 신문을 보거나 잡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땅히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는 듯 유리벽에 붙여 놓은 포스트와 지도를 보면서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에 앉아 처음부터 나를 지켜보던 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전표를 꺼내며 택시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일단 나는 아니라고 하고는 계속 벽에 붙은 지도를 봤다. 택시 기사들도 내가 택시 탈 손님이 아니라고 하자 다시 이야기를 나누거나 신문을 뒤적거렸다.
그중 한 사람은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나를 지켜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나도 작은 목소리로 폭포까지 간다고 했더니 2천 루피란다. 분명 500루피에서 많아도 천 루피면 된다고 했는데 완전히 도둑놈이다. 내가 대답도 없이 몸을 돌리자 그가 뒤에서 얼마에 가기를 원하는지 묻는다. 내가 500루피라고 하자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더니 그건 편도 요금이란다. 나는 어차피 그곳에서 자야될 거니까 편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자기는 그러면 그 먼 곳에서 빈 차로 와야 된다며 700루피를 달란다. 그러면 나도 됐다는 듯 슬금슬금 나왔더니 지독한 손님을 만났다는 듯 그가 깊이 한숨을 쉬더니 작은 백을 들고 내 뒤를 따라 나왔다.
폭포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나는 택시가 흥정이 되지 않으면 우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 종점에서 내려 폭포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땡볕과 오르막을 감안하면 꼬박 한나절 거리였다. 잘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버스까지 끊기면 꼼짝없이 길에서 밤을 지새울 뻔 했다.
가는 길 중간 중간 바위들이 굴러 떨어져 있어 위험했다. 히말라야는 겨울에 많은 눈이 오고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봄에 땅이 녹으면 산사태가 나거나 바위들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기사는 쾌활했다. 이 친구들은 뒤끝이 없다. 늘 바가지를 씌우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지만 실패해도 그날의 운이러니 생각하고 금방 잊는다. 영어로 된 책이 있어 물었더니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단다. 택시기사라도 나름 인텔리다. 그러나 오히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 고단수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아직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더 남았지만 택시기사는 중간쯤에서 차를 멈추며 여기까지란다. 둘러보니 다른 택시들도 모두 그곳에 정차해 있었다. 아무래도 내려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대기하는 택시들은 모두 왕복비용을 내고 폭포까지 올라간 손님을 기다리는 차들이었다. 모두 예약이 되어 있는 택시였다.
즉, 내가 결국 텐트촌을 발견하지 못해 다시 이곳으로 내려오더라도 내가 타고 갈 택시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되고 버스가 다니는 길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가 되고 결국 나는 길에서 자야 한다. 호랑이는 없더라도 비슷한 산짐승들이나 또는 불손한 사람들을 만나 주머니가 털린다면 곤란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그에게 왕복비용을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선금을 줘야 기다릴 수 있다고 했지만 내가 말도 안 된다며 그러면 그냥 가라고 하자 그는 또 금방 웃으며 그러면 시간 맞춰 잘 다녀오란다. 두 시간밖에 시간이 없었다. 폭포가 멀지 않다고 했으니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