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신(神)이다-16/더 깊은 히말라야 속으로 1(하)

2019-09-27     서창덕
서창덕

성자(聖子)가 마하라지를 부르다

나는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나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나는 깊은 히말라야의 오래된 동굴에서 별과 달을 벗 삼아 우주를 마음껏 날아갈 것이다. 나는 늘 깊은 히말라야의 동굴에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우주와 신과 함께하는 삶을 꿈꿨었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을 창시한 마하라지는 이 부근의 히말라야에서 거의 40년을 보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무렵에 집을 떠났다. 아버지가 더 이상 경전을 못 보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전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마하라지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집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부모와 가정을 포기하고 수행을 택했다. 열다섯 살의 마하라지는 달랑 모포 한 장과 아버지에게서 훔친 600루피를 들고 신을 찾으러 떠났다.

마하라지는 집을 나와 무작정 성지(聖地)가 있다는 방향을 향해 걸었고 그 길에서 특이하게도 자기와 똑같은 나이의 구도자를 만났다. 15살 동갑내기의 두 어린 구도자는 한 동안 숲 속에서 나무 열매만 먹고 지냈다. 몇 년 동안은 아쉬람에서 산스크리트를 배우기도 했다. 이곳저곳 좋다는 곳과 실력 있는 스승을 찾아 옮겨 다녔지만 올바른 스승은 없었다.

그렇게 5년을 보내고 스무 살 쯤 되었을 때, 문득 두 젊은 구도자는 히말라야 안쪽 캐시미르를 향해 걷기로 했다. 캐시미르는 고급 섬유인 캐시미어로 유명한데 캐시미어라는 산양이 주로 이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캐시미어는 섬유의 보석이라 불릴 정도로 최고급 울 소재이다. 그들이 캐시미르를 향해 걸어간 건 한창 추운 2월이었다. 그들은 눈 덮인 히말라야 산길을 무려 300킬로미터나 걸었다.

캐시미르에 도착한지 두 달 만인 4월의 어느 아침에 그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숲 속에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너희들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돌아보니 긴 머리에 하대(음부만 가리는 천) 하나만 걸친 50대 남자였는데 온 몸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성자(聖子)를 알아보고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했고 성자는 진아(眞我)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을 가르쳐 주겠다며 그들을 따라오게 했다.

나는 늘 얘기한다. 제자가 스승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를 찾는 거라고. 왜? 하수(下手)는 고수(高手)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헛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늘 자신이 선택한 스승이 사기꾼이 아닌지 긴장하고 의심해야 한다.

두 명의 구도자가 갑자기 300킬로미터의 눈길을 걸어 캐시미르에 가고 싶다고 한 것부터 성자의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경전을 읽고 있는 그들에게 먼저 다가간 것도 성자이고 자신의 몸을 빛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흥미를 돋게 한 것도 성자다. 고수는 얼마든지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숨길 수 있다.

성자(聖子)는 히말라야 산길을 한참 걸어가 한 동굴로 그들을 안내했고 동굴의 내부를 말끔하게 정리한 뒤 둘을 그곳에서 지내게 하고 자신은 강가에서 지냈다. 성자는 하루에 한 끼만 섭취하게 했는데 쌀과 버터와 소금이 전부였다. 성자는 두 제자들을 위하여 매일 10킬로미터 아래에 있는 마을에 내려가 1킬로그램의 쌀과 200그램의 버터와 소금을 사 왔다. 그것들을 토기 안에 넣고 끓여 나눠 먹었는데 성자는 아주 조금만 먹었다.

그들은 성자로부터 이곳에서 한 달간 특별한 수련을 받게 되는데 가장 빠른 길이라는 성자의 말처럼 그들에겐 7일 간격으로 큰 변화가 왔다. 성자는 6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진언(주문)만 외우게 했고 2번만 발을 바꾸게 했다. 잠은 6시간만 자게 했고 2시간의 식사와 휴식시간 외에는 모두 학습과 수련이었다.

성자는 일주일이 지나면 수련시간을 더 늘렸다. 그렇게 조금씩 수련시간을 늘려 4주차가 되었을 때에는 발을 바꾸지 않은 채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12시간을 앉아 있게 했고 잠은 4시간만 허락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무 살의 젊은 마하라지는 불과 한 달 만에 12시간 동안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첫 삼매를 경험했다. 성자의 말 그대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히말라야

성자, 마하라지에게 ‘가야트리 만트라’를 전하다

이때 성자가 가르친 수련법이 바로 진언(만트라) 수련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문수련으로 이해해도 큰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만트라(주문)는 ‘옴마니반메훔’이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수련한 만트라는 ‘하레 크리슈나’다. 그는 이 만트라로 노래로 만들었다.

성자가 두 명의 젊은이에게 준 만트라는 바로 가야트리 만트라다. 궁금한 사람은 유튜브에서 가야트리 만트라(Gayatri Mantra)를 검색하면 되는데 ‘옴마니반메훔’보다 더 많이 쓰이고 알려진 만트라다.

만트라의 세계를 모르면 불교와 힌두교 등 인도 태생의 종교와 수행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도를 방문한 법정스님은 밤마다 사원에서 들려오는 앵앵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불평하셨지만 인도인들은 만트라 수행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많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아재 아재 바라아재 바라승아재 모지 사바하’ 천수경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 등 불교에도 이러한 만트라(진언)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너무나 당연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뿌리가 힌두교 요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야트리 만트라도 그렇고 옴마니반메훔도 그렇고 신묘장구대다라니도 그렇고 아무리 외워도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가끔 만트라를 통해 기적을 체험했거나 소원을 이뤘다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만트라를 통하여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유는 만트라를 하는 내 몸과 내 마음이 탁하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는 매우 정묘한 물질이다. 일반적인 물질보다 훨씬 정묘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묘한 소리로 구성된 만트라를 탁한 마음과 몸으로 아무리 외워본들 큰 효험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정화된 수행자가 만트라에 집중하면 엄청난 파워가 발휘되며 마하라지처럼 단 한 달 만에 12시간의 삼매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12시간 삼매에 들 정도의 단계가 되려면 일반적인 수행자들은 평생 해도 불가능한 경지다.

이 수행법에서 만트라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그것은 바로 먹는 것이다. 만트라를 가르친 성자는 쌀과 버터와 소금만 들어간 식사를 하루 한 끼만 먹게 했다. 자기가 선택한 스승이 술과 고기와 섹스를 즐기고 돈까지 탐한다면 절대 도가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저 우매한 중생들을 속이는 나쁜 사람일 뿐이다. 나쁜 사람도 거짓말을 반복하다보면 자신이 정말 고수인 줄 착각한다.

음식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못하면 수련은 진보하기 어렵다. 특히 수행자가 과식과 육식을 반복한다면 차라리 수행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수련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몸이 더 많이 상하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정말 스승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야생의 짐승들이 어미를 따라다니며 독초를 가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새끼는 모든 풀들을 모두 먹어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단하기 전에 아마 죽을 가능성이 많지 않겠는가.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

선택의 기로에서 평화와 자유를 누리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보니 드디어 큰 폭포가 나왔다. 높이가 대략 50미터쯤 되는 폭포에서 많은 양의 물이 떨어지고 있고 몇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폭포 근처에 텐트촌이 있다고 했는데 주위가 가파른 산이라 그런 게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나는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폭포를 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 위로 올라가는데 꼬마 아이가 머리에 가득 짐을 지고 내려왔다. 초등학교 1학년 쯤 된 아이 같은데 아마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대단하다며 엄지를 들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치자 이상한 사람이란 듯 힐끔거리며 가파른 길을 능숙하게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가파른 길의 끝쯤에 노란색으로 칠한 작은 신전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겨우 신전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 안을 들여다보니 시바를 모신 사원이었다. 배낭을 뒤져 사탕과 비스켓 두 개를 사원에 바치고 잠깐 정신을 집중했더니 좋은 기운이 쏟아졌다. 햇살도 부드러웠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맺힌 땀을 씻었다.

크든 작든 사원이 만들어져 있는 곳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특히 인도의 집들과 사원들은 대부분 땅의 기운이 강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그게 꼭 풍수적으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좌청룡 우백호와 안산이 갖춰져 있지 않아도 사원이 있는 곳은 어디나 기운이 좋다. 그래서 그 사원에 참배하고 잠깐만 집중해도 기운이 보충되고 정신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들의 원칙은 딱 하나다. 절대 계곡에 집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라도 돌출된 능선에다 집을 짓는다. 히말라야이기 때문이다.

밑에서 볼 땐 작은 신전이 산의 마지막 꼭대기인줄 알았는데 신전에 올라서니 오르막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멀리 평원의 끝에 두어 개의 집들이 보였다. 아쉬람인지 민가인지 멀리서는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텐트촌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아쉽고 계속 가기에도 먼 거리다. 반들반들한 작은 돌 위에 호랑이는 아니지만 제법 큰 짐승의 똥이 여기서 자면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인생은 늘 선택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투명한 햇살이 산에 사는 작은 정령들처럼 내 주위를 맴돈다. 평화롭다. 지금까지 내가 포기한 것이 무엇이고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건 간에 지금 나는 고요하고 평화롭다. 마음은 무한정 자유롭다. 아쉬운 것, 하고 싶은 것, 부족한 것도 없다. 세상의 틈에서 고요하지 못하면 인생의 평화는 요원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나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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