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딸을 살해한 놈들을 15년 후에 죽여주세요! 그 약속만 해주면 전 재산을 드릴게요.” 우연히 보게 된 추리소설 홍보영상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구였다. 이는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나마저도 어떤 내용이 이 소설에 담겨있을지 궁금하게 만드는 상당히 매력적인 문구였다.
소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주인공 ‘무카이 사토시’의 시점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무카이 사토시는 얼굴의 절반 이상이 멍으로 뒤덮인 채 태어나 괴물이라는 별명과 함께 보육시설에서 자란다. 그는 외모 때문에 폭력적이고 암울한 삶을 살았고, 결국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 그는 지하철 선로 위에 놓인 구름다리에서 ‘사카모토 노부코’라는 노파를 만난다. 노파는 전 재산을 줄 테니 자신의 딸을 살해한 자들이 교도소에서 출소하면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무카이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받아버리고 만다. 그는 노파에게 받은 돈으로 성형을 하고 새로운 호적을 사서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산다. 15년 후 어느 날, 무카이는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이 편지를 기점으로 무카이는 끝난 줄로 알았던 삶의 위기를 다시 겪는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2017년에 발간됐고, 당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이 책의 저자는 야쿠마루 가쿠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다. 일본에서는 이미 자리매김한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야쿠마루 가쿠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소설에 푹 빠져 읽게 된 이유는 작가의 문체였다.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을 더 본 순간, 심장을 예리한 것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불길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끼며, 나는 자물쇠를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문장들과 같이, 이 소설의 작가는 간결하고 심플한 문장으로 독자로 하여금 책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게 하면서도 주인공 내면의 심리나 사건 상황들을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표현했다. 작품의 탄탄한 배경 설정과 긴박한 스토리도 좋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간결하고 자세한 문체가 한국에서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에서 추리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한 점과 독자가 주인공에 빙의해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몰입도 있는 구성은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줄곧 추리소설이 아닌 액션 스릴러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아쉬웠다. 폭력을 일삼았던 주인공의 과거와 범인을 찾으면서 이곳저곳을 누비는 스토리가 액션 스릴러 소설로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범인을 추리하기에 등장인물의 수가 너무 적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정된 인물 안에서 범인을 찾으려니,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전 재산을 주면서 암울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준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족의 목숨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잘 표현한 이 책을 나와 같이 이제 막 사회에 나온 20대 초반의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현실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지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또 자신이 선택한 길이 어떤 길이든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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