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규정인 ‘도로표지와 교통신호협약’상 빨간 불은 방향과 관계없이 진행금지를 의미한다. 세계에서 적색 신호에 우회전을 허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캐나다가 있다. 교차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다른 차량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적색 신호에 우회전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보행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사고 발생 구역은 예외적으로 빨간불에도 우회전을 금지하며, 우회전 전용 신호등도 설치한다. 그리고 우회전이 가능한 곳도 적색 신호일 시 차량을 일시 정지하는 것이 의무다. 캐나다 또한 적색 신호등일 시 일시 정지 후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적색 신호에 우회전을 허용하면서도 일시 정지 의무가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우회전 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정지하고, 보행자가 없거나 지나간 후엔 통과해도 단속되지 않는다. 위험을 최소화할만한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며칠 전,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우회전하려는 차량 때문에 놀란 적이 있다. 보행자 신호가 녹색인데도 정지선을 넘어와서 자칫하면 사고가 날 뻔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우측 끝 차로에서 차량이 올 때는 오히려 내가 서둘러 건넌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속도를 조절해줘야 하는데, 갑자기 오는 차에 놀라기 때문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 당 교통사고 발생자가 8.4명으로 OECD 국가 35개 중 네 번째로 많다. 이중,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구성비는 39%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게 나타나 평균 2배 수준을 보였다.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신호 교차로에서 발생한 보행사고 중 17%가 우회전 차량에 의해 일어났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2012년 15명에서 2016년엔 22명으로 연평균 10%가 증가했다. 교통 편의를 위해 허용된 우회전 통행 방법이 오히려 사고를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색 신호에 우회전을 허용하는 신호 체계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회전을 허용하더라도 일시 정지 의무화만 해도 안정성이 확보될 텐데, 우리나라는 아직 안전보다 교통 소통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당장에 적색 신호 우회전을 금지시키면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노발대발할 것이다. 우회전 신호 체계에 대한 법도 필요하지만, 자동차라는 편리한 이동 수단이 발달한 만큼 안전한 교통 문화를 위한 운전자들의 정신도 성숙해져야 차량 증가에 미치지 못하는 운전문화를 의미하는 ‘교통의 문화지체현상’도 해결돼 교통안전 선진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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