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도 축구도 1등...“대학 축구 무대는 나에게 좁다!”
대입 실패, 상무 탈락, 부상 등 악재 딛고 스타가 된 호남대 허준호 선수 이야기
2016-01-05 취재기자 류효훈
작년 10월 24일 축구 미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KBS 2TV의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이 종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부상 등 각자의 사정으로 축구 선수라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선수들 24명을 KBS가 공개 테스트를 거쳐 뽑은 다음, 2002년 월드컵 스타였던 안정환과 이을용의 지도 아래 6개월의 훈련을 거친 후, K리그 진출자로 만들자는 일종의 ‘축구 미생 신화 만들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이들은 프로그램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고된 훈련, 피나는 연습, 진땀나는 실전 경기로 6개월의 대장정을 거치며 몸을 다듬고 실력을 키웠다. 축구 미생들은 프로그램 속에서 오로지 K리그 입성이라는 희망을 위해 뛰었으나, 프로그램이 종영된 이후 단 한 명도 그 목표를 이룬 선수는 없었다. 그만큼 축구 완생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전국적으로 K리그 입성이란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고등학교, 대학교, 혹은 실업 축구팀에서 그라운드를 뒹구는 선수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도 그런 축구 미생 중 한 명이다. 그는 대학팀들 간의 리그인 U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호남대 축구팀 간판 스트라이커 허준호(22) 선수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시작이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대신, 그는 다른 선수들이 잠자는 새벽부터 나와 꾸준히 기본기 연습을 하며 축구실력을 갈고 닦았다. 땀의 결실은 고등학교에 와서 빛을 발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의 모교인 축구 명문 수원공고에 입학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는 수원공고 2학년 시절 ‘2011년 금석배 축구대회’에서 팀이 4강에 진입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제44회 대통령 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는 수원공고가 우승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제35회 전국 대한축구협회장배 축구대회’에서 7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화려한 고등학교 성적을 바탕으로, 그는 고교 졸업 후 축구명가로 유명한 청주대에 체육장학생으로 입학이 결정됐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일이 꼬여버렸다. 등록금 고지서를 확인하지 못하고 기일 내에 입학금을 내지 못해, 입학이 취소된 것이다. 그는 입학도 하기 전에 이미 청주대 축구팀의 동계 훈련에 합류했다. 당사자인 그는 매일 다른 팀과 경기가 있어서 바빴고, 부모님도 가게 때문에 바빠서 등록금 내는 기일을 아무도 챙기지 못했다. 미등록자는 바로 다음 순번의 수험생에게 합격이 승계됐다. 그는 “그렇게 청주대 입학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미 다른 대학의 축구팀들도 입학이 종료되고 선수 확보도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고교 졸업 후 무적(無籍) 축구 선수 신세로 전략했다. 그러나 그는 안일하게도 이게 자신에게 기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군에 입대해서 상무팀 선수가 되면, 프로팀에 바로 진출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국군체육부대 상주 상무의 문을 두드렸지만,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상무에는 프로 몇 년차 선수들이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애송이 허준호에게는 벅찬 벽이었던 것이다.
다시 자기를 받아 줄 팀을 찾아 방황하던 중, 그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K리그의 4부 리그에 해당하는 K3리그의 광주 광산FC(현 평창FC)에 입단하게 됐다. 그는 테스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그는 “무적 신세 이후, 계속해서 팀을 못 찾으니 ‘큰일 났구나, 어떡해야지?’라는 불안감이 생겼다. 다행히 광주 광산FC에 들어가서 걱정을 덜었다”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인생사는 새옹지마였다. 입단한 지 3경기 만에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경기 도중 발목이 꺾이면서 왼쪽 발목 내측 인대가 파열되어, 그는 1년 동안 축구를 쉬어야 했다. 그는 “이대로 축구를 포기할까 하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상의 여파로 좌절했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악착같이 치료와 재활 운동에 집중했다. 재활운동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부상에서 회복할 때까지 멍 하니 무위도식하고 싶지는 않아서 무작정 영어를 공부했다. 그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 입학한 대학생도 아니어서 뭐라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어라곤 ‘Hi’밖에 몰랐던 그는 무작정 외국인에게 말을 걸거나 외국인 교회에 나가 영어 실력을 키웠다. 그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영어를 못하는데도 외국인들에게 그냥 말을 걸었다. 먼저 다가가니, 외국인들이 친절하게 도와줬다. 그것을 계기로 외국인 친구와 메신저를 주고받기도 했고, 주말마다 밥을 먹거나 같이 놀러 다녔다. 어느 순간부터 외국인 친구들의 말이 들렸고, 그 자신 또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특별한 영어 공부 방법은 없었다. 영어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 그리고 무식함이 오히려 영어를 잘 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말했다.
재활운동과 영어공부로 2013년 1년을 보낸 그는 2014년부터 호남대 축구학과 학생으로 입학해서 대학생이 됐다. 광주 광산FC의 구단주가 호남대였기 때문에 입학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호남대 입학 후 그는 영어실력을 테스트 해볼 겸 교내 영어 프레젠테이션 대회에 나갔다.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축구선수인 허준호가 40명 참가자 가운데 2등으로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이때 공부든, 운동이든, 무엇이든지 간절함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부상에서 완쾌된 그는 호남대 학생 신분이었지만 여전히 축구선수의 적은 광산FC였다. 그래서 그는 2014시즌이 끝날 때까지 광산FC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며 7골을 넣었고, 큰 부상 없이 시즌 전 경기를 소화했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015시즌에는 호남대 축구팀으로 적을 바꿔 출전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하루빨리 U리그 경기에서 뛰고 싶었고 설랬다”며 “주전 경쟁에도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넘쳤던 그는 호남대 축구팀으로 올라오자마자 각종 대학 축구 대회에 출전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지난 해 8월 한국 대학 축구연맹이 주최하는 ‘KBS N 제12회 2015 전국추계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배재대, 울산대 등 전국 32개 대학을 꺾고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또, 지난 해 11월 대학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2015 카페베네 U리그 왕중왕전’에서는 팀을 8강까지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팀 내 선수들 중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그가 부상에서 살아나 2014년과 2015년에 보여준 활약상의 뒷면에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선수들보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부족함을 이기기 위해 기량이 뛰어난 다른 선수들보다 무조건 더 많이 연습하고 노력했다. 허준호 선수는 “경기장에 들어서면, 다른 선수들보다 항상 한 발 더 뛰어다녔다. 무엇보다 간절함 덕분에 좋은 결과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허준호 선수의 꿈은 대한민국 수많은 축구 미생들처럼 K리그 진출이다. 그의 축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모든 난관을 노력으로 극복했다. 부상을 치유하면서 영어를 배워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상도 탔다. 그는 대단한 노력파다. 허준호 선수는 이제 목표에 한걸음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갈 수만 있다면 최대한 빨리 프로팀에 진출하고 가슴에 태극마크도 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