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잘 되는 것 배아파”...유튜브에 '복통형 악플러' 극성
전문가인 체하며 인기 동영상에 과도한 악평, 심지어 욕설 붙이기도
최근 유튜브 영상에서 팝스타 아델(Adele)의 노래 <헬로(Hello)>를 불러 큰 화제를 모은 한국인 여고생이 있다. 이 여고생이 부른 아델 노래 영상은 1개월 만에 1,53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영상의 주인공인 이예진(18) 양은 ‘아델 소녀’로 불리며 미국의 유명 토크쇼 프로그램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해서 국내외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4일 기준으로 1,6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그녀의 영상에 달린 댓글 수는 1만 5,345건이다. 그런데 이 댓글 중 특이한 점은 국외 네티즌들은 대부분 극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내 네티즌은 냉정한 평가를 주로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일부는 감정 표현, 음정, 발성, 호흡법을 지적하며 여고생의 실력을 폄하하고 있다. 그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나열하면서 “누가 저 정도도 못해,” “내가 더 잘 하겠다”는 식으로 평가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치 이들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음악 관련 전문가인 것 같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 온라인 세상에서 악성댓글, 또는 악플이 여전히 사회악이 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너도 나도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면서 상대방을 폄하하는 ‘전문가 행세하기’ 댓글이 새로운 네티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전문가인 듯한 네티즌들은 일반인의 춤, 노래, 악기 연주 동영상 댓글에서 관련 예술 전공자처럼 발성과 호흡 등 전문 지식을 열거하며, 타인의 실력을 평가하고, 자신이 더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고 자랑한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 그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과 정보를 쏟아 내고 있다.
인터넷 댓글에서 전문가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전공자로서 한마디하자면,” “관련 직종 종사자인데...”라며 운을 띄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그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인지 사실 확인은 어렵다. 모르면서 잘난 체하거나, 얕은 지식, 잘못된 정보로 남을 가르치려 드는 자를 최근에는 ‘ㅈ’으로 시작하는 욕으로 빗댄 ‘ㅈ문가’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인터넷 댓글에서 이들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ㅈ문가 납셨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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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여고생 아델 노래 영상에서 전문가처럼 행세하며 노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댓글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자신들은 얼마나 잘 하길래,” “남이 잘 되는 걸 못 보는 사람들 같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 네티즌은 “우연히 댓글들을 읽다 보니, 느낀 점은 대다수 외국인들은 긍정적 평가를 하는 반면, 한국인들은 실력에 대한 냉혹한 평가만 내리는 것 같다. 나이 어린 친구가 커버 영상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텐데,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가 그렇게 힘든가?”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근 무명 가수 김나영이 가수 임창정의 노래 <또 다시 사랑>을 부른 영상이 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됐다. 이 영상 조회수는 4일 기준으로 53만 회였으며, 1만 8,719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이 영상 댓글에도 전문가처럼 말하는 이들이 “애절한 감정이 부족하다,” “담백하게 불러야 할 노래에 애드립이 과하다,” “이 구절에선 음을 많이 낮추고 반 가성으로 불러야 된다,” “알앤비 창법엔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라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가수 김 씨의 감정 표현, 음정, 기교, 창법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전문가 형 댓글도 악플의 범주에 들기는 하지만 단순 악플로 규정하긴 어렵다. 이 댓글로부터 사람들은 나름대로 전문 지식을 공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요리 채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요리 관련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꿀키의 맛있는 테이블>의 영상에 대한 댓글에는 다른 댓글에 들어 있는 질문에 전문가다운 답을 해주는 댓글도 있다. 쿠키를 만드는 영상에 달린 댓글에서 한 네티즌이 머랭을 생크림으로 잘못 적은 것을 보고, 한 댓글은 “생크림이 아니라 머랭이다. 계란 흰자와 설탕을 넣고 오래 휘저어 만든 크림을 머랭이라고 한다. 물이랑 노른자가 들어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댓글로 요리 팁을 공유 받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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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의 뉴스 기사 댓글에서도 ‘전문가 행세하기’가 눈에 띈다.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공감수가 많은 베스트 댓글은 댓글 창 맨 위에 올라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댓글을 베스트 댓글로 만들기 위해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전문가 행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블로거가 네이버 기사 댓글에서 특정 아이디가 게시한 댓글을 모아 보니, 어떤 동일한 한 사람이 택시 기사, 치킨 집 사장, 대기업 임원, 학자, 운전 학원 강사 등 각 직종의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댓글을 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들이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일종의 댓글 놀이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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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댓글에서 ‘전문가 행세하기’는 익명성에 기초한 자기과시적 심리가 반영된 행태라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정일형 교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아는 체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댓글의 정보에 대한 근거만 명확하다면, 올바른 댓글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적인 댓글을 달 때 마구잡이식으로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자제하고 근거와 출처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좀 실력이 낮아 보이는 퍼포먼스 영상이 있더라도 격려의 댓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콘텐츠 제작팀 ‘Unthinkable’은 중고등학교 밴드, 댄스 동아리를 대상으로 무료로 영상을 제작해 주고 있다. 최근 이 팀이 제작한 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춤 영상에 대해 악플이 많은 사실에 대해 Unthinkable 대표 이진홍 씨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 대표는 “뛰어난 음악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동영상을 올려야 된다는 법은 없다. 영상을 올린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칭찬과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조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