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습관은 고치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더 쉽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렇게 말했다. 범죄 중에서도 악질이라고 불리는 성범죄의 재범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바로 화학적 거세다.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의 재범과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약물을 주입하는 제도다. 약물로 치료하기 때문에 성 충동 약물치료라고도 많이 불린다. 약물치료는 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막는 약을 사용한다. 약물치료 집행 요건에는 4가지가 있다. 첫 번째 요건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어야 하며, 두 번째는 성도착증 환자, 세 번째는 성범죄의 재범 위험이 있는 사람, 마지막은 재판 시 19세 이상에 해당해야 한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등의 유럽국가에서는 1940년대부터 부분적으로 시행하다가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우리나라도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장기를 파손시킨 조두순 사건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 성폭력이 잇따르자 입법을 거쳐 2011년부터 시행됐다. 법 시행 후부터 현재까지 약물치료 명령 현황은 42건으로 아주 적다.
약물치료를 명령받은 사람 중 두 명이 지난 3년간 약물치료를 받다가, 7월에 자진해서 연장 신청을 했다. 약물치료는 한 번 받으면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약 복용을 해야 화학적 거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최소 3년에서 최대 15년 간 받을 수 있는데, 법무부는 이 둘의 연장신청에 대해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치료를 중단하라는 의미였다. 치료를 중단하면 성욕이 회복될 위험 가능성이 있고, 더불어 재범의 가능성도 생겨서 그 위험성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이 있음에도 초기 재판 명령(아마 치료 기한이 정해져 있었던 모양이다)을 뒤집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약물 치료 연장 신청을 불허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약물치료 연장 불가엔 또 어떤 이유가 있을지 생각해봤다. 첫 번째로 장기간 약물치료를 하면 그만큼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을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약물 치료를 하면 살도 찌고, 근력도 떨어지며, 심하게는 우울증도 올 수 있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에겐 치매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두 번째로 비용의 문제도 있다. 약물치료는 1인당 연간 500여만 원의 비용이 든다. 약물치료를 원하는 경우, 본인 부담이 원칙이지만, 경제적 여력이 없으면 세금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만약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한 사람이 약 10년간 약물치료를 받길 원한다고 가정했을 때, 국가에선 5000여만 원의 비용을 지원해줘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이기에 약물치료를 명령하는 것과 정해진 기간보다 더 연장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약물치료를 되도록 많은 성범죄자들에게 법으로 강제하길 바란다. 2018년 강간·강제추행 범죄 발생 건수는 총 2만 3478건이다. 이 중 약물치료 집행 요건에 해당하는 비율도 꽤 높을 것이다. 집행 요건에 해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약물치료를 명령할 수 없다면, 이들 중 아동 성폭력범에 한해서라도 강제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약물치료 시행 계기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강력 성폭력이 많아졌기 때문이며, 아동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그 죄질이 더욱더 나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비뇨기과 전문의 말에 의하면, 약물치료는 남성호르몬을 90% 이상 떨어뜨린다고 한다. 남성호르몬이 떨어지면 성욕이 감퇴하고, 공격성이 떨어져서 성범죄를 낮출 수 있다. 또 발기부전을 일으키기 때문에 확실하게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미국 오레건 주의 성폭력 범죄자 재범률은 약물치료를 받은 경우 재범률이 0%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현재 공식적으로 2011년 이후 약물치료를 받은 우리나라 사람 42명 중 재범자는 0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약물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연간 500만 원이란 큰 금액을 본인이 부담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자발적으로 약물치료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약물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 최근 약물치료의 부작용에 개의치 않는 일반인도 약물치료를 원하는 일이 늘었다. 약물치료가 재범뿐 아니라 성범죄를 초기에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또 다른 법으로 전자발찌 제도가 있다. 전자발찌는 위치추적 시스템과 연결돼 있어서 성범죄자의 출소 후에도 24시간 감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전자발찌 제도는 실효성이 있는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전자발찌는 절단이 쉬워 마음만 먹으면 훼손하거나 버려서 위치추적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2016년 오패산 터널 총격 사건의 범인이 부엌칼로 전자발찌를 끊은 후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2014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전자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 중 재범자는 총 292명으로 집계됐다. 100명당 2명꼴로 재범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 수는 절대 적지 않다. 전자발찌 외에도 성범죄자 신상 공개 등이 재범을 막을 다른 방법으로 있지만, 그럼에도 2016년 전국 성범죄 재범률은 7.4%였다.
약물치료는 그 부작용과 비용 문제로 장기적인 재범 방지를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약물치료를 좀 더 발전시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약물치료를 건강보험에 적용한다면 재범 방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가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많아지겠지만, 성폭력 재범을 줄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전자발찌보다 확실한 재범 방지를 야기할 수 있는 약물치료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약물치료는 사회적 안심 기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미국 등의 선진국과 비교해 성범죄자의 형량이 낮기 때문에 약물치료의 쓰임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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