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이바구길 조성 목적이 주민 복지인가, 관광지 개발인가?
2011년부터 시작된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내가 사는 동구 산복도로도 많이 변했다. 산복도로 위 산책로와 이바구길(이야기의 사투리) 조성 등 제2의 감천문화마을을 꿈꾸며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9년이 흐른 지금, 동구 주민인 내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별로 없다. 이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이 단발성 관광 상품 개발에만 치중한 채 주민들과의 상생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부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중구, 동구, 서구 등 부산의 원도심 지역 산복 도로 주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주민 참여형 도시 재생 사업이다. 그중 동구는 이바구길 조성 사업이 진행됐는데, 부산역 부근 골목길부터 산복도로까지 이어지는 테마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원래 사업 목적은 동구 산복 도로의 역사와 의미, 그 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공간까지 고려한 새로운 도시 재생 산업이었다. 하지만 사업이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 주민들을 위한 시설은 부족하고 대부분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 상품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동구 산복도로에 있는 산복도로 갤러리가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철거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한다. 산복도로 갤러리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인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하지만 수년간 방치되면서 오히려 주변 경관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자 주민들이 철거요청을 한 것이다. 또한 이바구길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가게와 편의 시설도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동구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모든 사업의 초점이 관광객에게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광객 유치에만 신경 쓰다 보니 마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색깔은 잊은 채 다른 관광지의 색깔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다. 실제로 동구 산복도로 르네상스 일환으로 진행된 이바구길 조성은 제2의 감천문화마을을 꿈꾸며 진행됐다. 그러나 내가 둘러본 이바구길의 벽화는 감천문화마을과 비교해 어딘가 부족하고 엉성한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이바구길은 감천문화마을과 달리 작은 골목길이 듬성듬성 있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벽화라든지 아기자기한 조형물 같은 것들을 설치하는 게 쉽지 않은 지형이다. 또한 이바구길에 있는 가게 대부분을 마을 노인들이 운영하다 보니 새로운 변화에 취약하며 역동성이 떨어져 보인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우려를 지우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이바구길은 동구 출신 유명인(장기려, 김민부, 유치환 등)을 내세우며 명맥만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관광객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원주민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선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할 주민들의 대표를 동별로 선정하고 이들을 통해 현재 마을에 필요한 시설이 무엇인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이 도시재생 전문가와 마을 주민들의 협력이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이나 제안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바꿔줄 전문가가 있다면 더욱 더 성공적인 도시재생이 될 것이다.
현재 내가 살고 동구에 도시재생 제안을 하자면 동구의 이야기를 담은 인문학 책방을 조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인디고서원은 청소년이 중심이 되어 책방을 이끌어 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책 선별부터 각종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면서 많은 화제가 되었다. 최근에는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이 다녀가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공 예시가 가까운 곳에 있는 만큼 인디고서원 성공 모델을 기반으로 한 동구만의 차별화된 청소년 책방을 만드는 것이다.
동구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서점과 대형 서점의 발달로 동네 서점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젊은 층이 중심이 되어 동구의 이야기를 충실히 이어가면서 동구의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문학 책방을 만드는 일은 지역민과 관광객 둘 다 상생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책방 장소 마련 및 초기 자본만 동구청이 지원하고 인디고서원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책방을 발전시켜 나간다면 부산의 대표 청소년 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개발로 마을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도시재생 역시 마을의 외관이나 새로운 건물 건설에 예산을 쏟아붓기보다는 마을 내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럴싸한 건물은 몇 개월이면 만들어낼 수 있지만, 마을 구성원들의 역량과 마을 고유의 색을 제대로 살리는 일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보여주기 실적보다는 주민들의 관점으로 마을도 살고 원주민도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도시재생사업이 부산에서 하루빨리 진행되길 바란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