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 범인 윤씨 “당시 수사관들도 최면 조사 받아야” 억울함 호소
윤 씨, 4차 참고인 신분 경찰 출석···법최면 조사 받아 자필 진술서, “경찰이 불러줘서 쓴 것 같다” 대필 제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윤 모(52) 씨가 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출석했다. 윤 씨 측은 “현재 언론에 공개된 진술서가 경찰의 가혹 행위 이후 받은 것”이라며 "과거 경찰관들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면 최면 조사 등을 받아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윤 씨는 이날 오전 10시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법최면 조사를 받았다.
법최면은 최면을 통해 잠재의식 상태의 기억을 이끌어내 단서를 찾아내는 수사 기법이다. 경찰은 이번 조사를 통해 윤 씨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한다. 이번 조사는 윤 씨 측이 경찰에 요청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윤 씨 측은 사실 확인을 위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함께 요청했지만, 조사의 필요성 등을 검토한 결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윤 씨의 재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자신의 SNS 글을 통해 “저희가 적극적으로 원한 조사다. 경찰이 윤 씨 진술을 의심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술증거의 의미가 큰 상황에서 관련자로서 최대한 협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사에 앞서 윤 씨는 “당시 경찰은 신뢰하지 않지만, 지금 경찰은 100% 신뢰한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당시 나를 조사한 수사관들도 최면 조사를 받으면 좋겠다”고 자신을 조사한 경찰관들을 향해 진실규명에 협조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도 “당시 수사관들은 ‘그때 윤 씨가 범인으로 검거돼 자백한 상황 등에 대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들도 (최면 조사를) 받으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설명했다.
과거 수사 당시 작성된 자필 진술서에 대해서는 “제 글씨는 맞는데 그 당시 제가 썼는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찰이 불러 줘서 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수사관이 대신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대필 자술서'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는 "(대필 자술서가)작성된 과정에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윤 씨가 용의자가 아니었을 때 일이다. 제3자에 대한 탐문수사를 하면서 윤 씨로 하여금 그 인물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묻는 과정에 작성된 것 같다. 윤 씨가 글을 잘 몰라 대신 써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대필 자술서가 가진 의미는, 자필 진술서를 경찰이 불러주거나 뭔가를 보여줘서 만든 자술서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정황이라는 것"이라며 "전에는 진술서를 경찰이 대신 써줬는데 용의자로 검거된 후에는 본인이 자신의 혐의와 관련한 자술서 3개를 이틀에 걸쳐 아무런 개입 없이 스스로 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4차 참고인 조사에 앞선 1~3차 조사에서 화성 8차 사건 당시 허위자백을 했는지, 구타와 고문 등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 모(당시 13세) 양이 성폭행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체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방사성동위원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윤 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이듬해 7월 그를 검거했다.
재판에 넘겨진 윤 씨는 같은 해 10월 수원지법에서 강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그러나 최근 화성사건 피의자 이 모(56) 씨가 8차 사건을 포함한 화성사건 10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을 자백하고, 윤 씨가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진범 논란’이 불거졌다.
한편, 윤 씨와 박 변호사는 이달 중순 쯤 수원지법에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