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자리는 나이 순인가요?”...청년세대, 노인들의 무례함에 뿔나다
2019-11-08 취재기자 김지은
“나 때는 말이야···”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가르치려 할 때 쓰는 말을 풍자적으로 따라 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된다. 최근 청년들을 중심으로 무례한 행동을 보이는 노인들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온라인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에 발표한 ‘노인인권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청장년층(18세 이상 65세 미만)의 87.6%가 노인을‘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 보고 있다. 또‘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80.4%로 나타났다.
청년과 노인간 갈등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되는 장소는 버스와 지하철이다. 특히, 노인자리 양보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한국은 유교권의 영향으로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국민일보와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2019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연장자에게 자리 양보가 당연한가’라는 질문에 21.7%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노인자리 양보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로 발전하고 있다.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강요하는 일부 노인들로 인해 20대들 사이에서‘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 ‘연금충(연금이나 축내는 노인)’, ‘할매미(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등의 신조어 사용과 함께 혐로(노인혐오)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일부 노인들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버스나 지하철의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유형은 크게 3가지다.
대놓고 강요하는 막무가내 형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있는 청년들을 향해 대놓고 욕을 퍼붓거나 심지어 구타까지 하는 노인도 있다. 최근 이러한 노인들의 과격한 행동이 많은 이슈가 됐다. 대학생 이 모(22,경북 포항시) 씨는 최근 다리를 다쳐 어쩔 수 없이 버스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내 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다가와 예의가 없다며 이 씨를 나무랐다. 이 씨는“다리를 다쳐 앉아있었지만 버스 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며“자리양보는 의무가 아닌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은근슬쩍 들이밀기 형
은근슬쩍 눈치를 계속 주면서 자리를 양보하게끔 유도하는 노인도 있다. 대학생 권 모(21, 부산시 남구) 씨는 버스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을 때 황당한 일을 당했다. 자신의 옆에 서있던 할머니가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안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권 씨는“할머니가 안쪽으로 자꾸 몸을 들이미셔서 불편했다”며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꼭 그렇게까지 자리를 양보 받아야 되는지 의문이 들면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훈장님 형
버스나 지하철 자리를 양보 받기 위해 앉아있는 청년들에게 훈계를 하는 노인도 있다. 자신의 나이를 앞세우며 대우받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남에게 피해 주는 사실은 외면한다. 대학생 이모(21, 부산시 남구) 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을 겪었다. 옆에 할머니가 서 계신지 모르고 깜박 잠이 든 이 씨는 할머니의 말소리에 잠에서 깼다. 할머니는 “요즘 젊은 애들은 문제다. 노인 공경할 줄도 모르고 커서 뭐가 될지...”라며 마치 이 씨 보고 들으라는 듯 말했다. 이 씨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냥 바로 자리를 비켜드리고 다음 역에서 내렸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중교통에서의 노인자리 양보 문제는 세계적인 사회적 이슈다. 특히,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에서 노인자리 양보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018년 3월, 중국에서 한 노인이 자리에 앉아있던 초등학생에게 자리 양보를 요구했고 초등학생이 이를 거부하자 가방을 소년의 얼굴에 집어던지며 폭언과 함께 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작년 3월 중국에서 자전거를 끌고 열차에 탑승한 노인이 자리에 앉아있던 여성에게 자리 양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여성은 이를 거부했고 이에 노인은 여성의 뺨을 때려 사람들의 공분을 산 사건이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노년 인구의 증가로 아무런 노력 없이 혜택을 받는 노인들이 늘어나자 청년들의 마음속에 생긴 불편함이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했다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에 발표한 ‘노인인권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청·장년층의 55.4%가 노인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는 문항에 동의했으며, 또 노인복지가 확대되면 청년층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청·장년층의 77.8%가 동의했다.
한편, 노인들의 강제적 자리 양보 요구 문제가 계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는 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임승차제도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16년 서울시 지하철 운행 적자는 3850억 원이다. 이중 노인의 무임승차가 차지하는 손실액은 약 2750억 원에 달한다. 무료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 정해진 목적지 없어도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증가하는 노인의 인구수에 발맞춰 노인의 기준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기준 연령은 만 65세 이상으로 1964년에 책정됐다. 대학생 박 모(27, 부산시 중구) 씨는“버스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노인을 보면 충분히 일어서서 갈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라며“고령화 시대에 맞게 노인 연령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중국과는 달리 노인과 청년 사이에 대중교통 자리 양보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국가가 있다. 국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일본은 같은 유교권 문화이지만 청년들이 노인에게 자리 양보를 잘 하지 않는다. 노인들도 자리를 양보 받아도 한사코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신상목 전 주일 한국대사관 서기관은 조선일보 칼럼에서“일본인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지만 몸이 불편한 노인을 보면 너도나도 자리를 양보하려고 한다”며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지 아닌지가 청년들의 자리 양보의 기준이며 노인들도 자신들이 자립의지와 능력이 있는 개인으로 대우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대중교통에서 벌어지는 청년과 노인의 자리 전쟁에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청년들은 청년과 노인, 각자가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고 자발적으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생 조모(22, 부산시 남구) 씨는“단순히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여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