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 전 서강대 총장, “하느님 나라로 가다”
9일 새벽 현대아산병원에서 당뇨 합병증으로 투병 중 선종 총장 시절 “학원 내 주사파 침투” “자살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 존재” 등 발언 파문 한때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탄압 받기도 학생들과 맞담배, 신군부 수사관 구타 등 소탈하고 강직한 성격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9일 오전 4시 40분경 서울 현대아산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78세. 발인은 11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지 내 예수회 묘역이다.
박 전 총장은 1941년 경북 경주에서 6남 4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가톨릭대와 대건신학대를 거쳐 196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세례명은 루카(누가)다.
197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1979년 이탈리아 그레고리안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8년간 서강대 제7∼8대 총장을 지냈고, 2003부터 2008년까지 서강대 재단이사장을 맡았다. 2003년 정부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박 전 총장은 2017년부터 신장 투석을 해 왔으며, 몸 상태가 악화해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가 당뇨 합병증 판정을 받아 장기 치료를 해 온 상태였다.
종교학자이기도 한 박 전 총장은 총장 재직 시절에도 학부 강의를 진행했고,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을 매기도록 했을 정도로 격의가 없었고 소탈했다.
스스로 “신부에게 지급되는 생활비와 교수 월급을 모두 반납하는데, 헤비 스모커(고흡연자)라서 담뱃값은 남겨 둔다”고 했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담배를 피우며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학생들이 수업 중에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더러는 “한창때 주먹질을 잘 했다”고 자랑하며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술잔을 기울였을 정도로 낭만적인 성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해 있는 예수회 소속 신부인 그는 총장 재직 중 간간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쏟아내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일례로, 박 전 총장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14개 대학 총장 오찬에서 “주사파가 (학원 내에)깊숙이 침투해 있다. 주사파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북한의 사로청,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남한 학생운동 세력의 궁극적 배후로 지목했다. 그의 이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파문이 확산하자 그는 “운동권 학생의 고해성사를 통해 알았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이 초래됐다. 일부 신자들은 고해성사 누설 혐의로 박 전 총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박 전 총장은 1991년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분신자살하는 등 분신 사건이 잇따르자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박 전 총장은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대지는 않았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에 호의적이었다. 1970년대에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하자 서강대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미사를 집전하다 경찰에 끌려가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학생 선동과 폭동 모의 혐의로 연행돼 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 지학순 주교도 함께 연행됐는데, 그는 “수사관들이 지 주교님과 함께 쪼그려뛰기를 하라고 하기에 벌떡 일어나 수사관의 면상을 후려갈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이른바 ‘전향’을 한 것은 학생운동권 안에 주사파가 침투해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천주교 예수회 한국관구는 이날 부고를 통해 “박홍 신부님을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며, 오늘 선종하신 박홍 신부님께서 주님 안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기를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청합니다”라고 추모했다.
이어 “2017년 7월 입원해 오늘까지 오랜 기간 무한한 인내로 박홍 신부님께 최선의 의료를 베풀어주신 현대아산병원 정몽준 회장님과 의료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