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여대생이 걸어온 험난한 인생길...“인생은 끝없는 성장의 시간인 듯”
한남대 아동복지과 이슬비 씨, 휴학하고 위독한 어머니 병구환해 새삶 찾아드려 고등학교 때 연쇄 스토커에 시달리고, 범인 검거 차 경찰 출석하기도 진상 손님에 시달려도, 알바는 한시도 안 놓고 집안 경제 돕는 똑순이 생활
‘대2병’이란 말은 대학생이 2학년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고민을 갖게 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잡코리아&알바몬의 통계에 따르면, 대2병을 앓고 있는 대학생이 전체의 64.6%라고 한다. 이렇게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같은 또래 대학생들에 비해 사연 많은 인생을 살고 있는 21세 대학생이 있다. 20대 초반인 그녀의 인생은 범상치 않은 굴곡으로, 그것도 연이어서 일어난 사건으로 고비에 고비가 밀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녀에게 일어난 것일까?
대전 소재 한남대학교 아동복지과에 재학 중인 이슬비(21) 씨는 올해 8월 30일 휴학을 시작했다. 보통 대학생의 휴학 사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대2병으로 심신을 쉬자는 의도도 있고, 또는 휴학기간 동안 각종 활동을 통해 스펙을 쌓겠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휴학은 조금 갑작스럽고 절박한 것이었다.
그녀 자신도 학기 중에 과제나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진심 반 농담 반으로 휴학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휴학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그렇게 2학년 2학기 수강신청까지 마친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평소에 갑상선질환을 앓고 있던 어머니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휴학을 하고 학교가 있는 대전에서 가족들이 있는 충남 서산시로 돌아왔다.
슬비 씨의 어머니는 평소에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녀 어머니는 갑상선에 필요한 영양제를 정기적으로 맞았는데, 이 날도 그 영양제를 맞기 위해 읍내에 있는 가정병원을 찾았다. 갑상선 환자가 영양제를 맞기 위해서는 혈액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날 검사 결과, 어머니 혈액에 적혈구(헤모글로빈) 농도가 낮아 빈혈이란 진당을 받았다.
의사는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에 가기를 권했고, 슬비 씨와 어머니는 서산에서 제법 크다는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 병원에서는 다시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고, 슬비 씨는 그제서야 어머니 상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머니 상태가 위중해 대학병원까지 가는 도중에 의식을 잃을 위험성도 있었다. 결국 서산에 있는 중앙병원에 입원해 어머니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그녀 가족은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중학생인 남동생, 그리고 편찮으신 어머니뿐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스케줄 조정이 가능한 자신이 휴학해서 가족을 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슬비 씨는 버스로 편도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시골집과 병원 거리를 왕복하며 간병했다.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학교 보내고 나서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그런데 어머니의 빈혈 원인을 알기 위해 실시한 초음파검사 결과,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자궁에 혹이 있는 자궁근종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슬비 씨 어머니는 단지 살이 쪄서 배가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혹이었다니 모두들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된 후, 어머니의 입원장소를 천안의 단국대학교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수술을 받기 위해 혈액이 필요했고, 대학에서 헌혈하고 받은 헌혈증서로 수혈비용을 마련한 슬비 씨는 “평소에 헌혈을 해 둔게 도움이 됐어요”라며 웃어보였다.
슬비 씨 어머니의 수술시간은 5시간 정도 소요됐다. 슬비 씨는 “어머니께서 수술 받는 동안 외가 식구와 함께 기다리면서 얼마나 맘 졸였는지 몰라요. 어머니께서 마취가 늦게 풀려서 수술실에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는데, 그 때 어머니께 평소에 살갑게 대하고 잘할 걸 하는 후회를 엄청 했어요”라고 말했다.
슬비 씨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에게 힘든 내색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힘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숨겼고, 우는 모습도 보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날, 외할머니께서 하신 “고생 많았다”는 말에 슬비 씨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수술 후 어머니 회복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안일을 돕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안경제를 돕고 있다.
슬비 씨는 학기 중이나 방학은 물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녀는 “정말 제가 일복은 많은데 사람 복이 없어요. 전생에 큰 죄라도 지었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능시험을 치르고 난 후부터 바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대학 다닐 때는 물론 지금까지 여러 아르바이트들을 해왔다. PC방 아르바이트부터 음식점까지 아주 다양했고, 다양한 만큼 별난 사람들을 상대해왔다. 이런 일들이 더 그녀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다. 담배 연기를 얼굴에다 뿜는 진상 손님, 일을 떠넘기는 교대 알바 등등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기억에 스쳐지나갔다.
지난 일을 곰곰이 생각하던 슬비 씨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유독 많이 꼬이기 시작한 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라고 입을 열었다. 슬비 씨는 고등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집은 단독주택이었고 집 앞이 어둡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 한적한 곳이었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완전히 어두운 밤길을 혼자서 걸어야 했다.
그러던 중, 2학년 여름,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가던 슬비 씨는 평소에 혼자 걷던 길에 누군가 따라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슬비 씨는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걸음속도에 맞춰서 따라오고 있는 걸 느꼈다. 집에 가까이 이르자, 슬비 씨의 공포는 극에 달했고 달려서 집에 도망치듯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 일이 우연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날, 슬비 씨는 야간자율학습 후 귀갓길에 어제의 그 사람이 또 길에 있는 걸 알아차렸다. 심지어 지난번에 비해 더 가까이 접근해서 그 사람은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걸었다. 슬비 씨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사이, 쫒아 걷던 남자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방 무겁지? 들어 줄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방을 거의 뺏어들 듯이 힘을 줬고, 슬비 씨는 극구 괜찮다고 가던 길이나 마저 가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가방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던 찰나, 슬비 씨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힘껏 낚아채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혼내고 즉시 파출소로 가서 그 정체불명의 스토커를 신고했다. 이 신고는 서산경찰서에 접수되어 범인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알고 보니 이 스토커에게 당한 피해자는 슬비 씨 말고도 다른 학생들이 두 명 더 있었다. 같은 동네의 여학생들을 노린 스토킹 범죄였던 것이다. 슬비 씨는 “그 때 신고하지 않고 머뭇거렸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슬비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경찰서로 가서 TV나 영화로만 봐왔던 ‘안에서는 밖이 안보이고 밖에서는 안이 보이는 반사유리 구조’를 통해 가해자를 지목했다. 슬비 씨는 밤이라 길이 어두웠고 상황이 그래서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난감했는데, 결국 가해자가 자수해서 지금은 복역 중이라고 한다.
슬비 씨는 그때 부모님이나 경찰관들이 재판이 어떻게 됐고 몇 년 형을 받았는지 알려주지 않아서 어떻게 됐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일은 그냥 기억에서도 세상에서도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뿐이고, 그녀에게는 아직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녀는 “이런 범죄나 사건사고들이 화제가 될 때마다 정부에서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특별법을 만들지 않고 왜 기존 법을 개정하진 않는 거에요?”라며 비판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슬비 씨는 스토킹 피해경험과 가정사, 그리고 알바 등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떠안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데에 막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슬비 씨가 즐겁고 행복할 때 웃으면, 그녀가 당한 일이 너무 경미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해버리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도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아무래도 무거운 이야기다 보니 대화를 피하거나 대화주제를 바꾸고,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며 말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조심스러워한다.
슬비 씨는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최근에 너무 힘들어서 사주팔자라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에서 다 말하고 나니까 한결 후련하네요!”라고 느낀 점을 말했다.
그녀는 이 외에도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최근 그녀의 일상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며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드라마를 보며 푸는 것이다. 슬비 씨는 가끔 휴학하는 동안 자신이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이런 힘든 일을 이겨낸 그녀라면 그런 시련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계획을 짜고 있다.
슬비 씨 어머니는 현재 건강이 많이 호전되어 퇴원 후 집에서 쉬고 있다. 슬비 씨는 어머니가 완전히 건강해지고 가정이 안정될 쯤, 적어도 내년 9월에 복학할 예정이다. 그녀는 자신 말고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사회복지사를 꿈꿨기 때문에 아동복지학과를 선택했고, 현재까지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빨리 취직해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슬비 씨는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슬비 씨는 “어려움을 겪고 나면 그 과정에서 사람은 한 단계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인생이란 끝없는 성장의 시간인 것 같아요”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