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길 잃은 神이다-24/고수와 하수

2019-11-22     서창덕
바리나트의
서창덕

“듣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 진리를 말해서는 안 된다”-바가바드 기타

우디바바 캠프에서의 점심시간은 다른 곳처럼 12시다. 그러나 1시간쯤 늦어지는 건 예사다. 그날도 나는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데 두 명의 남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우디바바 캠프까지 올라왔다. 여자는 프랑스 국적이었고 남자는 인도였다. 둘은 처음에는 연인으로 보였는데 아닌 것 같았다. 무슨 관계일까? 여자가 약간 오만해 보였다. 그들은 종이에 쓴 낡은 메뉴판을 한참동안 들여다본 뒤 신중하게 점심메뉴를 골랐다. 주문도 까다로웠다. 유럽 사람들의 특징이다. 나는 그들이 조금 뒤에 겪게 될 상황이 짐작이 되었지만 가끔 짐작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 점심에만 집중했다. 역시나 내가 점심을 다 먹고 덜 익은 청포도 몇 알과 커피 한 잔까지 마시고 난 뒤에도 복잡하게 주문한 그들의 점심은 나오지 않았다. 기다린 지 무려 1시간이 지나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여자는 브래지어를 풀고 엎드려 일광욕 모드로 들어갔고 남자는 내 앞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사실 남자는 30분 전부터 명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점심 먹는 소리에 신경이 쓰일 텐데 눈을 감고 끈질기게 명상을 이어갔다. 미간을 찡그린 채 무엇인가에 계속 집중했다. 그들은 여기까지 걸어서 올라온다고 이미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고 시간도 벌써 점심을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주문한지 1시간 30분이 지나자 한편에선 그들이 불쌍하고 한편에선 억지로 명상에 집중하고 있는 그가 불쌍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그에게 무슨 명상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번쩍 눈을 뜨더니 그가 가진 명상에 대한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처럼 떠들었다. 그가 떠드는 동안 여자는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두 번 듣는 내용이 아니라는 듯. 세상의 모든 스승은 똑같다. 별로 배울 것도 없다. 명상을 하는 데 이론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세상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하나인데 무슨 깨달음이 필요한가. 쿤달리니도 필요 없다. 호흡법이나 요가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세상은 모두 하나의 의식이고 하나의 신이다. 무엇을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이미 완전하다. 내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 있자 그는 더욱 열을 올렸다. 아마 내 표정이 자신의 강의에 감동한 듯 보인 모양이다. 중간에 그의 입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나왔다. 히말라야에 영원히 살고 있는 마하바타르 바바지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왜 바바지를 모르겠는가. 라히리 마하사야에 크리야요가를 전수했고 나는 그가 전수한 크리야요가를 10년 전부터 수행하고 있다. 그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금 리시케시에 가면 바바지의 제자가 머물고 있다. 바로 무지바바다. 그 사람은 꼭 만나 봐야 한다. 나도 리시케시에서 무지바바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사실은 여러 번 들었다. 그는 매년 리시케시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리시케시에 머물 때마다 한국식당‘드림 카페’에 들렀다. 그의 옆에는 항상 서너 명의 예쁘고 젊은 여자들이 붙어 있는데 그의 몸을 마사지하기 위해서다. 그의 몸에는 늘 신성한 기운이 넘치기 때문에 서로 그의 몸을 만지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무지(無知)한' 바바로 알고 있었다. 주문한지 2시간 만에 나온 점심을 5분 만에 허겁지겁 먹어치운 그들은 헐레벌떡 산을 내려갔다. 그들은 무슨 관계일까. 연인과 여행가이드 중간쯤의 관계가 아닐까. 남자는 깨달음을 얻은 척, 스승도 필요 없다고 하더니, 늘 아가씨들에 둘러싸인 무지바바는 위대한 스승이니 꼭 만나보라고 하더니, 늦은 점심으로 화가 풀리지 않은 프랑스 여인을 극진하게 모시고 달래며 좁고 위험한 비탈길을 서둘러 내려갔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예수

문득, 며칠 전에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서 만난 한국인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일본에서 온 요가강사인 줄 알고 친절한 영어로 도쿄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어로 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태도에서 공손함이 사라졌다. 부산이 문제일까. 아니면 한국이 문제일까. 한국의 절에서 간화선을 10년도 넘게 닦았는데 부족해 요가를 배우러 리시케시에 왔단다. 한국의 불교는 한참 잘못 되었으며 답이 없단다. 자신은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명상모임을 이끌고 있는데 모임의 멤버들은 지금 리시케시에 와 있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기다린단다. 리시케시에 와서 요가를 가르치는 아쉬람마다 일주일 정도 돌아가며 요가를 배우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좋은 물건을 고르듯 리시케시에서 요가를 쇼핑한다고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간화선(看話禪)을 뛰어넘을 대책을 여기에서 찾은 것 같다고 했다. 어제는 가만히 앉아서 머릿속 상상만으로 요가를 가르치는 곳에 갔는데 그곳에서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단다. 그래도 열심히 길을 찾고 있다고 해서 나는 내 책(<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을 주며 참고삼아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책을 받아든 그는 이 책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더니 큰 선심을 쓰는 듯 알겠다며 받아갔다. 책값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공짜로 준건데 그렇게 고민을 하다 받으니 괜히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길을 찾고 있는 그가 내 책에서 길을 발견할 수도 있으면 좋은 일이니까. 며칠 뒤. 나를 찾아온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전생(前生)을 믿느냐고 물었다. 믿는 것은 아닌데 전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는 역시 그랬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책을 보니 내가 전생을 믿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에게는 전생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고수(顶尖高手)와 하수(出手)를 구별하는 기준이었다. 내 책의 어떤 부분을 보다가 이게 무슨 내용일까. 진짜인가 가짜인가 고민하다가 전생에 대한 대목에서 가짜구나 하고 확신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는 전생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空)이고 무상(無相)하기 때문에 다음 생(生)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이다. 이곳에서도 여러 곳에 물어보았는데 그들도 자기 의견과 일치하더란다. 어떤 곳은 윤회라는 글자를 다 지우고 가르치는 곳도 있다고 하며 달라이 라마도 그렇게 얘기했단다. 열강을 토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적선을 하는 듯 가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한국에 가면 꼭 큰 스님을 찾아가 물어보란다. 뭘 물어보라는 거죠? 뭔지는 모르지만 내 책을 보니 뭔가 이상하단다. 그러면서 한국에 가면 꼭 큰 스님을 찾아가 물어보란다. 조금 전에 한국불교가 문제가 많고 배울 스님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하더니 나보고는 이름난 큰 스님을 찾아가 보란다. 그가 불쌍한 눈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나는 며칠 전에 준 내 책이 겪게 될 운명에 마음이 아팠다. 역시 그가 망설일 때 주지 말았어야 했다. 며칠 뒤에 내가 떠난다고 하자 그는 내 요가메트를 자기에게 주고 가라고 했다. 나는 이미 요가메트를 포함해 내가 쓰는 많은 물건들을 가난한 인도 수행자에게 주기로 했다고 하자 그래도 요가메트는 자신에게 주고 가란다. 5000원 정도면 근처의 가게에서 요가메트를 쉽게 살 수 있었다. 한국인에겐 적은 돈이지만 인도인들에겐 큰돈이었다. 끝까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하자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정상이 아니라는 듯 혀를 찼다. “제가 히말라야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 속에서 지속적으로 영적 교감을 이루고 싶습니다” 위대한 스승을 만난 지 6개월이나 지났건만 어린 요가난다는 스승의 도력을 몰라보고 더 높은 고수를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스승은 억장이 무너졌지만, '지혜는 무감각한 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에게서 지혜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며 침묵을 지켰다. 침묵을 승낙의 의미로 간주한 요가난다는 몇 년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는 성자(聖子) 람 고팔 무줌다르가 있다는 란바지푸르로 향한다. 요가난다의 스승 스리 유크테스와르는 역대 인도 최고의 도인(道人) 100인에 들 정도로 위대한 스승이었다. 위대한 스승을 만났건만 어린 요가난다는 스승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했다. 늘 강조하지만 하수(着手)는 절대 고수(武林高手)를 알아볼 수 없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수준으로만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한다. 6개월 동안 최고의 고수(大神)와 함께 지냈지만 어린 요가난다는 스승을 몰라봤다. 눈 덮인 히말라야에 훨씬 더 뛰어난 고수(大神)가 있을 것 같아 위대한 스승의 품을 떠난다. 우리는 고수에 대한 나름의 기준들을 갖고 있다. 빛나는 얼굴에 폐부를 찌르는 눈빛, 배꼽까지 내려오는 허연 수염, 유리겔라처럼 스푼 밴딩을 하거나, 공중부양은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과 능력들은 그 사람의 진보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위대한 스승 마하라지가 히말라야에서 수행할 때였다. 어떤 사람이 폭이 수백 미터나 되는 갠지스강을 공중부양으로 건너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자신처럼 공중부양으로 갠지스강을 건너려면 최소 5년 동안 자신의 밑에서 혹독한 호흡수련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하라지는 그의 권유를 거부했다. 5년 뒤에 공중부양을 하더라도 자신의 본질이 그대로라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어린 요가난다는 유명한 사원에 가서도 한낱 돌덩이라며 참배도 하지 않았다. 사원을 나온 요가난다는 먼 길을 한낮의 땡볕아래 걸어서 갔고 또 중간에 지나가는 사람이 길을 잘못 가르쳐주는 바람에 반대 방향으로 가서 결국 엉뚱한 곳에서 하루 밤을 보낸 뒤 다음날 또 하루 종일 태양이 작열하는 길을 헤매다 중간에 람 고팔을 만난다. 람 고팔은 이미 요가난다가 힌두교 사원에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가 도망쳐 나온 스승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가 길을 잘못 들게 된 것도 자만심이 낳은 결과였다. 자만심은 자신의 인생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가 고통을 주고 결국 자멸하게 한다. 요가난다는 깊이 뉘우치고 다시 위대한 스승에게 돌아갔다. 그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 크게 성장했고, 그의 요가는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히말라야의

고수(高手)와 하수(下手)

히말라야에서 수행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해발 3000미터 높이의 바드리나트다. 구체적으로 세어보진 않았기 때문에 확신은 없다. 그러나 조건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해발 고도가 높다. 바드리나트 전체 지역이 해발 3000미터가 넘는다. 높은 곳에서 수련하면 수련이 훨씬 잘 된다. 고도가 높지만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웬만한 한국의 작은 읍 정도의 크기다. 인근에 마을이 있어 식량이 떨어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레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높은 산들이 바드리나트를 빙 둘러싸고 수행자에게 신성한 기운을 준다. 많은 인도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갠지스강의 발원지로 믿는다. 고대에 이곳에 많은 수행자들이 살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명약 소마(Soma)를 만들었고, 그 소마가 지금도 설산에서 녹아내리는 물에 섞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갠지스강물을 마시면 오래 살고 모든 병이 낫고 자신의 악업이 소멸된다고 믿는다. 바드리나트는 인도인에게 신성함의 원천이다. 이곳은 길이 멀고 험한데다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올 수 있는 기간은 한여름 두세 달밖에 되지 않는다. 히말라야 끝자락인 리시케시에서 버스를 타면 꼬박 2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중간에 산사태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눈이 덮였다 녹으면 푸석한 산들은 쉽게 무너져 내리거나 큰 바위들이 예고도 없이 떨어진다. 굳이 목숨을 걸고 이렇게 험한 길을 오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인도인들에게 바드리나트는 평생의 소원이다. 그런 신성한 곳이기에 나는 바드리나트에 가면 많은 고수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인도 최고의 고수들이 바글바글할 테니까. 운이 좋으면 히말라야 최고의 스승 마하바타르 바바지를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주변에 지나치는 많은 수행자들 속에 고수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나는 그 사람이 고수인지 하수인지 판단할 때 주로 눈을 본다. 눈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특히 영혼이 진보한 사람의 눈은 다르다. 굉장히 맑고 고요하고 깊다. 눈이 탁하다는 것은 아직 그 사람의 영혼이 진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산의 통도사 말사인 극락암에 가면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고 크게 쓴 글씨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영축산에서 법문을 하시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고 마하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염화미소라고 한다. 이때 부처님께서 여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마하가섭에게 전한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때의 글귀다. 극락암의 뒷산 이름도 마가다국과 똑같은 영축산으로 지어 불렀다. 정확한 법(正法)은 눈(眼藏)에 감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눈을 이용하지 않는 수련법은 정확한 법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귀는? 눈과 귀는 동일하게 봐야 한다.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다른 가짜를 사이비(似并不是)라고 한다. 물론 기초 단계에서는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수련법이 등장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단계에 가서는 눈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유일무이한 법은 이것뿐이라고 하신 것이다. 눈은 또 다른 말로 빛이라고 한다. 마하바타르 바바지가 전수한 크리야요가가 바로 눈(빛)을 이용하는 요가다. 국선도는? 국선도도 마찬가지다. 단전에서 힘이 모이면 그것이 빛으로 바뀐다. 참선이나 간화선은? 참선이나 간화선도 마찬가지다. 눈을 반개하고 화두를 들고 코끝을 보고 앉아 있으면 앞에 빛이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다. 그날, 나는 바드리나트에서 불로약(青春不老藥) 소마(Soma)를 만들었다는 전설의 바위를 지나 4000미터나 되는 폭포까지 올라간 뒤 다시 같이 간 일행들과 함께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 무척 힘들었다. 햇살은 또 얼마나 강한지 땀이 흐른 얼굴 위에 강한 햇볕이 내리쪼이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힘만 들었지 실망이었다. 설산 아래에도 내가 찾는 고수(高手小说)는 없었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성가시게 졸라대는 아줌마들과 할머니들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어도 그들에게 핸드폰이 없으니 사진을 보내줄 수도 없는데 그들은 한사코 사진을 찍어달라고 졸랐다. 사진을 찍고 찍은 걸 화면으로 보고는 좋다고 한바탕 웃고 그냥 그게 끝이었다. 아, 고수를 찾아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최고의 성지까지 왔건만 이곳에도 나보다 나은 고수가 없구나. 나는 산을 내려가며 맞은편에서 산을 올라오는 인도인들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침 똑같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10여 미터 떨어진 채 올라왔다. 복장으로 보아 수행자였다. 저 사람들은 조금 다를까? 나는 앞선 사람이 내 앞으로 가까이 오자 슬쩍 그 사람의 눈을 봤다. 그 사람도 나를 봤다. 60대 중반쯤의 나이였다. 그 정도면 많이 닦았을 나이인데 눈이 탁했다. 당신도 아직 멀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지나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앞에서 발을 딱 멈췄다. 그리고 합장을 하더니 내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나도 얼떨결에 같이 합장을 해주고는 지나쳤다. 뭐지? 그의 뒤를 이어 비슷한 수행자 복장을 한 한 사람이 또 올라왔다. 그가 내 일행들을 지나쳐 거의 내 앞에까지 왔다. 다시 나는 그의 눈을 들여다봤고 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앞 사람보다 나이가 약간 적어 보였다. 그래도 50대 중후반은 되었을 나이다. 그런데 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눈이 탁했다. 당신도 아직 멀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지나치려고 하는데 그가 또 갑자기 내 앞에서 발걸음을 딱 멈췄다. 그리고 앞 사람처럼 합장을 하고는 내게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또 나는 얼떨결에 같이 합장을 해주고 지나쳤다. 뭐지? 이 사람들이 그래도 고수는 알아보는 구나. 아직은 더 닦아야 하겠지만 고수를 알아보는 눈은 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 앞에 가는 일행들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인도에서 만난 낯선 수행자가 나를 인정했다. 앞서가는 일행들이 이 장면을 봤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같이 온 일행들은 각자가 나름 자기 수련분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오지에서 오로지 40년간 수행만 한 스님이었고, 한 사람은 내공무술의 고수였고, 한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산 사람이었다. 우리는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수행자는 그들 모두를 그냥 지나치고 내 앞에서만 딱 멈춰 경배를 한 것이다. 앞의 일행들이 보지 못했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 나는 오솔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그때였다. 나는 무언가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아뿔싸. 그러나 내게 경배를 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모퉁이를 돌아간 걸까. 그 걸음의 속도라면 아직 벗어날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들은 내가 히말라야에서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고수(髙手)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자만의 눈에 가려 고수(髙手)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하수(出手)는 자신의 낮은 눈과 자신의 낮은 기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절대 고수(髙手)를 알아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은 나를 알아봤다. 나는 내 자만에 취해 좋은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자기 모습에 취해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자신에 대한 만족은 수행자에겐 자살이나 다름없다. 거기서 수련은 멈추고 비참한 결말만 있을 뿐이다. 나는 망연자실 멈춰선 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설산(森林)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들이 다시 이 길로 내려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나처럼 만년설에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내려오는 순례자면 만날 수 있겠지만 폭포 위의 동굴에서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같이 온 일행들도 모퉁이를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설산(森林)의 꼭대기는 더욱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