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거지", "이백충"… 초등생들 사이에 빈부따른 '계급문화'
부모 소득 정도, 주거지 두고 친구를 놀림감 삼아 월세 살면 '월거지', 월 200만원 소득이면 '200충'
초등학생 이주빈 양(11, 남포동)은 학교에 가기가 싫다. 친구들이 ‘빌거지’라고 놀리기 때문이다. ‘빌거지’는 ‘빌라에 사는 거지‘ 표현의 줄임말이다. 이 양은 처음엔 화를 내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이미 안 좋은 시선으로 꽂혀 함께 어울리지를 못했다. 이 양은 “잘 사는 곳이 친구들 사이에서 중요하다. 좋은 곳에서 살면 좋은 대우도 해주고, 내가 그 무리에서 짱이 될 수 있다”며“요새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좀 보태는 편이다.”고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주거 차별’을 의미하는 혐오성 언어들이 등장해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월세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월거지’라고 불리는 가하면 전세에 사는 아이들은 ‘전거지’로 불린다. 이와 같이 사는 곳을 거지에 빗대어 비하하는 용어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부모님의 월급을 숫자로 나타내 ‘200충, 300충’ 과 같이 벌레를 표현하는 ‘-충’을 붙여 쓰기도 한다. 어른들의 물질만능주의가 어린아이의 동심까지 파괴한 셈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주부 강 씨(53)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월세에 산다’고 했더니 ‘월거지’라며 놀림 받았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며 충격을 받았다. “요즘 아이들은 거주형태나 거주 아파트 브랜드로 별명을 부르고 따돌림도 시킨다. 항의하는 전화도 걸었지만 변함이 없다”며 “이대로 있다간 아들이 상처를 받고 방황을 할까봐 이사까지 고려해봤다.”고 말했다.
임대 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와 ‘엘에이치’ 경우도 휴거(휴먼시아+거지)와 엘거(엘에이치+거지)라는 신조어를 이용해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차별해 논란이 된 바도 있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김 씨(35)는 “분양동 주민들은 집값을 위해서 놀이터와 출입구 이용을저희가 못하게 장애물로 막아두기도 하고, 유치원 통학 차량이나 초등학교 학급을 따로 편성해달라는 요구도 한다.”며 “이와 같은 어른들의 행동 탓에 휴거나 임거(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 월거지와 같은 차별적인 말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아이들이 차별적인 표현을 쓰는 게 잦아 그 뒤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상담을 권해온 적도 있다. 그런 표현을 쓰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부모 등 가족 구성원의 차별의식까지 바꾸긴 힘들다”며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양극화되고 가정의 형태는 다양해지는데 차별과 혐오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거 차별로 상처받은 아이들은 가정환경 설문지에서 일부러 거짓으로 적거나 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초등학생 김소영(12)양은 “친구들이 보고 놀릴까 봐 잘 사는 친구들의 정보를 따라 적는다. 그래야 비교를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부는 2013년부터 가정환경 조사와 진로 상담 조사 등에서 학부모의 직업이나 학력, 재산을 적는 칸을 없애도록 했다. 부모와 다른 가족들의 학력과 직업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고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부 교육 기관에서는 직업, 주거 형태, 종교, 자동차의 유무 까지 여전히 물어보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나 올해 2월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반 배정표의 신입생 수십명 이름 옆에 아파트 명을 병기해 학부모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