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별로, 나중엔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신기한 뇌이징 현상의 세계
아이폰11Pro, 에어팟도 서서히 뒤늦은 인기 이어져 영화, 음악, 드라마 등에서도 처음보다는 뒤늦게 뜨는 경우 많아 전문가, “뇌이징은 일종의 ‘단순노출효과’와 유사”지적
지난 달 25일, 애플의 신형 아이폰 11 시리즈가 정식 출시됐다. 아이폰 11은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못했다. 아이폰 11의 후면카메라 디자인이 이상해 사람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줬다. 하지만 아이폰 11의 실물 사진이 공개되고 출시되자,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뇌이징’이라고 한다. ‘뇌이징’이란 ‘뇌’와 ‘에이징’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에이징의 뜻은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 같은 음향 기기들을 처음에 작은 소리로 특정 소리나 음악을 장시간 재생하면서 길들이기 하는 걸 의미한다. 이처럼 뇌이징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디자인이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디자인을 계속 보며 머릿속에 각인시켜 디자인이 괜찮은 것처럼 뇌에서 인지한다는 뜻이다.
직장인 이진수(28, 부산시 중구) 씨는 최근 아이폰 11 PRO 모델을 구매했다. 이 씨는 처음에 아이폰 11 PRO 모델사진을 보고 매우 실망했다. 후면 카메라 디자인이 잠자리 눈이랑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보고 실망한 이 씨는 아이폰 11 PRO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각종 SNS에 아이폰 11 PRO를 구매한 사람들이 올린 사진을 보고 ‘생각보다 실물은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이 씨는 처음 가진 생각이 바뀌어 아이폰 11 PRO를 구매했다. 이 씨는 “사실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보니까 디자인이 괜찮은 거 같아요. 후회 없어요”라고 말했다.
아이폰 기종에 대한 뇌이징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학생 김민준(24, 부산시 동구) 씨는 아이폰 X가 처음 출시됐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폰 X는 기존 아이폰이 가지고 있던 홈버튼을 없애고, 상단부분에 노치 디자인을 새롭게 선보였다. 김 씨는 노치 디자인을 탈모 같다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이 아이폰 X로 바꾼 것을 보고 계속 그 디자인을 보다 보니 디자인이 썩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김 씨는 아이폰 X를 구매했다. 김 씨는 “사람들이 계속 괜찮다 괜찮다고 얘기하니까 저도 덩달아 괜찮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폰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관심을 받은 애플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 또한 뇌이징 현상이 일어난 제품이다. 에어팟을 사용하고 있는 한상빈(24, 부산시 동래구) 씨는 처음에 에어팟 디자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에어팟을 올챙이나 콩나물 같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주위의 친구들과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에어팟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해서 에어팟을 구매했다. 한 씨는 “처음에는 정말 별로였는데 보다 보니까 디자인이 예쁜 것 같았어요. 지금은 정말 제가 다른 사람한테 추천할 만큼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했다.
뇌이징 현상은 전자기기의 디자인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창민(22, 부산시 서구) 씨는 최근 많은 관객을 동원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알라딘>을 여자친구와 함께 보러 갔다. 이 씨는 영화가 끝난 후 매우 실망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했는데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씨의 여자친구는 너무 재밌었다며, 다음에 또 보러 오자고 했다. 이 씨는 영화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여자친구가 재밌어하니 영화관에서 <알라딘>을 두 번 봤다. 이 씨는 “처음에는 정말 재미없었는데 여자친구도 재밌다고 계속하니까 두 번째 볼 때는 여자친구보다 제가 더 재밌게 봤어요”라고 말했다.
평소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다은(23, 부산시 동구) 씨는 웬만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나오면 다 들어본다. 이 씨는 이번 해 6월에 발매된 걸그룹 레드벨벳의 노래 <짐살라빔>을 듣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레드벨벳의 <짐살라빔>이 그전에 보여줬던 노래와는 전혀 다른 콘셉트의 곡이었고, 많은 사람의 호불호가 갈릴 만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와 <짐살라빔> 이야기를 했다. 이 씨 친구는 계속 듣다 보면 노래가 중독성 있고 따라 부르게 된다며 이 씨에게 반복해서 들어볼 것을 권유했다. 이 씨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계속 듣다 보니 처음에 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노래의 후렴구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이 씨는 “처음 들었을 때는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반복해서 듣다 보니까 중독되고 계속 듣게 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상준(24, 부산광역시 동구) 씨는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다. 최근 이 씨의 단짝 친구들이 2009년에 방영했던 <꽃보다 남자>를 즐겨본다. 이 씨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10년이 지난 드라마를 왜 저렇게 재밌게 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드라마를 같이 봤다. 이 씨는 처음에는 이런 이상한 장르를 왜 보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편, 두 편을 보자 이 씨는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씨는 “처음에 봤을 때는 너무 유치하고 그랬는데 회차가 지나면서 너무 궁금하고 재밌어서 계속 보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경성대학교 심리학과 박천식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반복적으로 어떤 대상에 노출되면 그 대상에 대해 친숙해지고 매력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노출효과’라고 하는데, 단순히 여러 번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 매력이 증가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뇌이징 현상을 심리학적으로는 일종의 단순노출효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