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고려인 4세 크리스티나의 뿌리 찾아 온 한국 유학기

고려인 풍습대로 돌잔치에서 가위 잡은 게 인연?...한국에서 패션 디자인 공부 중 낯선 나라 한국 이질감 걱정했지만, 고려인답게 한국 문화에 잘 적응 중 졸업 작품 패션쇼 준비하며 한국 취업에 기대감

2019-12-03     취재기자 카밀라

얼마 전, 법무부는 재외 동포에 대한 체류허가 범위를 늘리기 위한 입법을 예고했다. 기존의 ‘F4 비자(러시아나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등 재외동포의 영구 체류 비자)’나 ‘H2 비자(재외동포의 3년 체류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재외동포의 범위는 고려인 2세와 3세까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재외동포 3세의 자녀들인 재외 동포 4세까지도 F4나 H2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혜택 범위를 늘리기로 했다. 이 법은 검토를 거쳐 2020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입법 예고 뉴스가 나오자, 한국에 체류 중인 재외동포 4세들이 기뻐했으며, 비자 변경 준비를 하고 있다.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 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카자흐스탄 출신 김 크리스티나(22) 씨도 증조할아버지가 한국 출신인 고려인 4세로서 현재 가지고 있는 학생비자를 F4비자로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1998년 카자흐스탄 제2도시 알마티에서 태어났다. 크리스티나 가족은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순수 고려인들이다. 그래서 크리스티나는 어렸을 때부터 고려인 전통을 접하면서 자랐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은 한국과 매우 비슷한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려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기념일은 돌잔치, 결혼식, 그리고 환갑잔치여서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

크리스티나가

고려인들은 돌잔치를 ‘Asyandi(아샨디)’라고 부른다. Asyandi의 ‘A(아)’는 한국말 아이와 비슷하게 어린아이란 뜻이고, Xyandi(샨디)는 고려인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생일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샨디는 아이생일이란 의미다.

고려인들은 아이의 돌잔치를 크게 치른다. 이 날, 아기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 아기 앞에 다양한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아이에게 세 가지 물건을 고르라고 한다. 이 점은 한국 돌 풍습과 거의 같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물건을 올려놓는데, 각 물건들은 아이의 미래 직업과 연관된다. 예를 들어, Chartagi(챠르타기, 빵)를 집으면 성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의미고, 콩을 집으면, 농업과 관련된 작업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이며, 쌀을 집으면, 부자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책을 집으면, 지식 욕심이 많고 과학자 같은 직업을 갖는다고 하며, 펜을 집으면 예술가 등 창조적인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가위를 집으면, 예술적인 육체노동을 해서 돈을 벌 것이며, 실을 잡으면, 오래 산다고 한다. 또 여자 아이가 바늘을 집으면, 여성 지도자가 된다는 의미이고, 남자아이가 단검을 집으면, 군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하며, 돈을 집으면,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예측한다. 크리스티나는 “돌잔치 때, 내가 가위랑 실을 선택했다고 어머니가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지금 내가 패션학과에 다니고 있고, 나중에 예술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났나보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고려인들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날은 결혼식이다. 고려인들 사이의 결혼식은 두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고려인들은 결혼식에 앞서서 ‘혼세 마르’ 또는 ‘해록’이라고 하는 약혼식 또는 미니 웨딩을 갖는다. 혼세 마르나 해록이란 말은 카자흐스탄 언어가 아니다. 그래서 이 말도 옛날 고려인들이 사용하던 한국말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결혼의 전 단계인 혼세 마르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약혼하기 위해 신랑, 신랑 아버지, 그리고 신랑 친척들 여러 명이 신부 집으로 간다. 그때 신랑 가족 일행은 꼭 홀수여야 한다고 한다. 이들 신랑 가족 일행을 ‘우시쿤드리’라고 부른다. 이 말 역시 카자흐스탄 말이 아니어서 옛 한국어라고 추측된다. 우시쿤드리는 가정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만 골라서 가기 때문에 고려인들은 우시쿤드리가 되는 것을 명예로 여긴다. 이때 신랑 가족은 신부 부모에게는 작은 선물과 다과를 가져가서 준다. 선물을 준 다음, 신랑 가족들인 우시쿤드리는 신부와 신부 가족들을 데리고 신랑 집으로 온다. 이게 결혼식의 전 단계인 혼세 마르다.

양가 부모들이 신랑 집에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모든 결혼식 하객들이 모이는 결혼식장으로 가서 본격적인 결혼식을 치른다. 그런데 결혼식부터는 고려인 식이 아니라 카자흐스탄 방식으로 진행된다. 크리스티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도 카자흐스탄에서 많이 살아서 이제 고려인 결혼식이 카자흐스탄 방식과 비슷해졌다. 결혼식이 끝나면, 레스토랑으로 옮겨서 하객들은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결혼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로 고려인들이 유지하고 있는 한국 풍습은 회갑이다. 고려인들은 60회 생일을 아주 크게 치른다. 회갑은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크게 축하한다. 회갑 잔치는 육십갑자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적인 공통의 풍습인 듯하다. 최근 한국은 회갑잔치를 간단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인이나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아직도 회갑 잔치를 성대히 치른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평균수명이 아직은 한국처럼 길지 않기 때문이다.

회갑 잔치에는 모든 친척이 다 참석한다. 회갑연에서는 60세가 된 주인공의 지난 이력을 축하객들 앞에서 크게 낭독한다고 한다. 크리스티나는 “회갑 잔치를 무시하고 참석하지 않으면 회갑을 맞은 주인공을 무시하는 거라서 필히 친지들은 참석해야 한다. 회갑잔치에 빠지면 심지어 모욕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2005년에 크리스티나의 아버지가 인접 국가인 타지키스탄의 두샨베라는 도시에서 일하게 돼서, 크리스티나 가족은 두샨베에서 3년 동안 살았다. 크리스티나가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은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타지키스탄이라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았던 기억은 어린 크리스티나에게는 큰 고난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따라서 타지키스탄으로 갔다. 당시에 나와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답했다.

타지키스탄의 힘든 생활을 마치고, 크리스티나 가족은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왔다. 그후 크리스티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은 독일로 가서 공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스타나에 있는 경성대 유학원에서 한국 유학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본 다음, 크리스티나에게 한국 유학을 권했다. 크리스티나는 “사실 내 언니가 교회 봉사활동으로 한국에 갔다 와서, 나는 언니로부터 한국 얘기를 많이 들었고, 언니도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언니 영향도 있고, 할아버지 권유도 있고 해서, 나는 독일 대신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다”고 말했다.

2015년에 크리스티나는 경성대학교 어학당으로 입학했다. 또 다시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됐고, 자신이 고려인이지만,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살아서 한국 문화와 한국인들로부터 이질감을 느낄 것이라는 크리스티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이 크리스티나랑 잘 맞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역시 크리스티나에게도 한국인 피가 흘렀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학당을 잘 마무리하고 경성대학교 패션디자인 학과로 입학했다. 제일 힘들 시절은 1학년과 2학년이었다. 크리스티나는 “대학 공부 처음에는 한국어 실력이 좋지 않아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노력을 많이 해서 지금 4학년까지 올라왔다.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티나가
크리스티나가

지금은 크리스티나가 졸업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옷을 디자인해서 12월에는 졸업작품 패션쇼를 가질 예정이다. 크리스티나는 “패션쇼까지 얼마 안 남아서 걱정이 많이 되고 기대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나는 졸업하고 한국에서 꼭 취업하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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