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으로 헌혈 공급은 줄고, 고령화로 헌혈 수요는 늘고...
적십자사, “빈혈 유발, 질병 감염 등 헌혈 우려는 사실과 무관”
당국은 중장년층 헌혈 호소로 헌혈 인구 확대에 홍보 주력
2020-12-08 취재기자 이예진
몇 번의 헌혈 경험이 있는 이 모(20, 충남 천안시) 씨는 최근 들어 대한적십자사 번호로 헌혈 권유 문자를 받고 있다. 그 내용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공급할 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헌혈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이 씨는 평소 헌혈을 생각이 날 때마다 하려고 하지만 바쁜 생활을 보내다보면 자신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헌혈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헌혈 권유 문자를 받고 난 후 김 씨는 “정말 헌혈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아 헌혈에 꼭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맞다. 현재 우리나라는 헌혈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그에 따라 헌혈량도 감소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2018년 혈액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헌혈에 참여한 실제 헌혈자 수는 2017년 145만 3358명에서 약 4%인 5만 8549명이 감소한 139만 4809명에 그쳤다.
헌혈하는 사람들이 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저출산·고령화 로 인한 10대와 20대 헌혈 가능 인구 감소다. 우리나라 헌혈 참여도 중 10대와 20대의 참여도는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대한적십자사 2017년 혈액사업통계에 따르면, 연령별 헌혈 비율은 20-29세가 39.8%로 가장 높고 16-19세가 31.2%로 그 다음을 따른다. 10대와 20대의 헌혈만 계산하면, 전체 헌혈 비율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헌혈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0대와 20대의 헌혈 인구수가 2018년에 들어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18 혈액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18년도 사이 10대와 20대 헌혈 인구수는 6만 6803명이 감소했다. 대한적십자사 부산 혈액원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헌혈은 주로 10, 20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저출산·고령화는 헌혈 인구 감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10대와 20대의 헌혈 참여가 정체되거나 낮아지는 것 외에도 여러 이유로 헌혈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사람도 많다. 그중에는 헌혈 부작용에 대한 고민으로 헌혈을 꺼려했던 사람들이 있다. 헌혈 중 질병 감염, 헌혈 후 혈액 감소로 인한 빈혈 발생 등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소문을 접하고 헌혈을 통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으로 헌혈을 기피하는 것이다. 이런 고민이 많아 헌혈을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이하린(21, 충남 천안시, 가명) 씨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마구잡이로 접하다보니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헌혈 참여를 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사실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헌혈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헌혈과정은 매우 안전하다. 헌혈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바늘, 혈액백 등)는 무균 처리돼 있으며, 한 번 사용 후에는 모두 폐기처분하기 때문에 헌혈 과정에서 다른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전혀 없다. 또한 헌혈을 하면 빈혈이 생기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헌혈은 자기 몸에 여유로 가지고 있는 혈액을 나눠주는 것으로 헌혈 전에 충분한 혈액이 있는지를 판단하려고 적혈구 내의 혈색소(헤모글로빈) 치를 측정하고 헌혈 여부를 판정하기 때문에 헌혈로 빈혈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답하고 있다. 즉, 빈혈이 있는 사람은 사전 검사로 헌혈을 하지 못하게 하며 헌혈해도 건강에 지장이 없는 사람만 헌혈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에는 헌혈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연간 헌혈 가능 횟수도 전혈헌혈(혈액 성분 전체를 채취하는 헌혈의 하나)은 5회로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 부산 혈액원 관계자는 “헌혈에 대해 잘못된 정보들이 많이 떠돌고 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헌혈을 꺼려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과적으로 헌혈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수혈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공급할 혈액이 부족해지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헌혈량이 부족해지면 보유하고 있는 혈액이 부족해지고, 이는 병원에서 요구하는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부산 혈액원 관계자는 “헌혈은 자신의 여유분의 혈액으로,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며 헌혈 참여를 독려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고 헌혈을 동참해왔던 사람이 있다. 김희주(21,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방문한 헌혈버스를 통해 처음 헌혈을 접했다. 그녀는 짧은 순간에 헌혈이란 행위가 직접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수시로 건강도 체크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어 헌혈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9회의 헌혈 경험이 있는 희주 씨는 특히 '레드커넥트'라는 헌혈자를 위한 앱을 통해 자신의 혈액이 필요한 곳에 잘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했을 때,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김희주 씨는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헌혈을 계속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10~20대 사람들도 있지만, 주요 헌혈층인 10~20대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2018 혈액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산으로 주 헌혈층인 10~20대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암, 중증질환 증가 등으로 혈액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안정적인 혈액공급을 위해서는 30대 이상 중장년층 헌혈자 확보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장년층을 늘리기 위한 중장기적 정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에서 2018년에 작성한 ‘중장년층 헌혈자 비율, 전체의 42%로 확대!’라는 보도 자료에 따르면, 중장년층 헌혈자 비율을 2017년 29%에서 2022년 42%로 올리겠다는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사업 목표가 있다. 2018 혈액사업 보고서에는 이런 정책을 통해 중장년층이 헌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높였고 실제로 이 정책들을 시행한 결과, 지난 2014년 21.9%에 불과했던 중장년층 헌혈자 비율이 2018년 32% 수준까지 확대됐다고 한다.
헌혈을 통해 봉사학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헌혈을 참여하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경성대학교 학생 서지민(25, 부산시 남구) 씨는 헌혈을 하면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 주는 봉사학점으로 졸업학점을 채울 수도 있어 헌혈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민 씨가 다니고 있는 경성대학교에는 사회봉사활동 학점인정으로 헌혈이 포함된다. 서지민 씨는 “대학교에 이런 제도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60번 이상의 헌혈경험을 가지고 있는 헌혈왕 박의찬(25, 경기도 고양시) 씨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총 64번의 헌혈을 해왔고, 헌혈을 하고 나면 그날 하루가 뿌듯하다. 박의찬 씨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편찮으셨을 때 수혈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헌혈을 해왔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헌혈증이 필요한 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헌혈증을 모두 기부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지만 박의찬 씨는 “분명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헌혈을 한 후에는 알차고 뜻깊은 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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