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타인의 눈치 보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법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참 멋있다. 이들은 말과 행동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주관은 저절로 확립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타인이 스치듯 말한 평가 한마디에 여전히 마음이 널뛰기 뛰듯 좋았다, 나빴다 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가 보다.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내가 그간 봐왔던 어떤 인물보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 마이크로 해비타트(Microhabitat)는 미소(微小)서식지라는 뜻이다. 작은 동·식물들이 연명할 수 있는 미미한 환경을 뜻하는 영어 제목처럼 <소공녀>의 미소는 서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그리고 하루 끝에 즐기는 담배와 위스키 한잔이면 더는 바랄 게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순간에 담뱃값이 오르고, 설상가상으로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받겠다고 선언한다. 집과 기호품을 놓고 고민하던 미소는 자신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후자를 택하고 방을 뺀다. 짐가방을 꾸린 미소는 달걀 한 판을 사 들고, 대학 시절 밴드공연을 같이 했던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가 가사노동과 숙식을 교환한다.
가사노동과 숙식을 교환하는 형태는 미소 본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찾아온 미소를 맞이하는 대부분의 친구들 반응은 미소를 한심하게 여기거나 안타깝게 여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바람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염치없다”고 대놓고 직설적인 말들을 날리기도 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람객 반응도 집 대신 담배와 위스키를 택한 그녀를 마찬가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재밌는 점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표준의 삶’에는 근처도 못 가는 미소가 영화 내내 가진 것과는 별개로 품위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미소는 공중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손 건조기로 머리카락을 말릴 때도, 당장 잘 집이 없어 24시간 하는 카페에서 밤을 지새울 때도 단 한 번도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고 매사 당당하니 미소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킨다. 등록금이 비싸 대학교를 중퇴했다는 말에 친구 남편이 “힘들었겠다”며 딱하게 보자 미소는 “별로 안 힘들었어요”라며 별것 아닌 듯 대꾸하고, “달리 갈 데 없으니 나랑 결혼이나 하자, 부모님께 결혼한 모습 얼른 보여 드리고 싶어”라고 말하는 남자 선배의 말에도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이 없어도 나도 생각과 취향이라는 게 있어”라며 딱 잘라 말한다.
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미소를 두고 “미소는 가진 것은 없지만 멘털은 귀족이라고 생각한다”며 “미소는 내가 생각하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나 또한, 미소를 보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타인의 기준에 본인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새삼 느꼈다. 졸업을 1년여 앞둔 이 시점, 가만있다가도 막연한 불안감이 불쑥 찾아오는 이 시기에 영화 <소공녀>를 보면서 ‘남 시선 의식하지 말고 내 길을 만들어 나가자’는 용기를 듬뿍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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