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 현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부자간 갈등 그려내다

2019-12-10     부산시 남구 강유석
영화

아버지 영조가 만든 옷은 찢어발기고, 아들 정조가 만들어준 옷은 울며 입었다. 영화 <사도>의 실제 인물 사도세자의 일화이다. 사도세자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해 쌀을 보관하는 뒤주에 갇혀 죽은 인물로 유명하다. 사도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역사적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는 조선의 21대 국왕이다. 영조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의 후궁이다. 때문에 영조가 왕위에 오를 때부터 정통성에 관해 늘 시달렸다. 불안한 왕권에 자식마저 없어 애만 타던 43살, 영조의 후궁이었던 영빈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인 이선이 태어나게 된다.

자신이 그러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인지, 태어나자마자 이선을 세자로 책봉하고 젖먹이부터 왕실의 교육을 받게 한다. 이선은 총명하여 영조의 총애를 듬뿍 받으나 예술과 무예에 뛰어난 두각을 보이며 점차 공부를 멀리하게 된다. 영조는 자신과는 달리 완벽한 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들에게 매우 엄격한 훈육방식을 보였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이선을 죽게 만든다. 사도의 간략한 배경은 이렇다. 영화 <사도>에서는 부자(父子)간의 갈등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데 영조 역의 송강호, 사도세자 역의 유아인의 연기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영화의 흐름부터 말하자면 시간 배열이 매우 독특하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여드레 동안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진행된다. 뒤죽박죽의 시간을 배열했기 때문에, 공간의 이동도 자유로워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몰입도 있게 만든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굉장히 기괴하다. 관에서 눈을 뜨는 사도세자는 비가 억수같이 오는 밤, 어느 무덤에서 나와 부하들을 이끌고 칼을 쥔 채 경희궁으로 향한다. 경희궁 앞에 선 사도세자는 궐로 들어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있다. 그 얼굴 위로 어린 시절의 사도세자가 오버랩 된다. 어린 시절, 사도세자는 굉장히 영특했다. 3살 때, 사치라는 글자를 두고 비단과 무명에 빗대어 설명할 정도로 천재였다. 아버지인 영조의 총애를 듬뿍 받던 사도세자는 오히려 예술과 무예에 뛰어난 실력을 나타낸다. 그 후, 공부는 멀리하고 그림과 무술에만 빠진 사도세자를 보면서 영조는 꾸짖는다. 영조는 그런 아들을 하루 빨리 보위에 앉히고자 대리청정을 제안한다. 그리고 시작된 대리청정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를 더욱 악화되게 만든다. 대신들과 회의하는 시간은 사도세자에게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결정을 계속해서 반박하고 나무라며 대신들 앞에서 무안을 준다. 사도세자는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영조를 두려워한다. 가뭄인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영조의 어머니인 인원왕후가 죽은 것도 모두 사도세자의 탓이라고 하는 영조. 그런 영조의 태도로 사도세자는 점점 미쳐간다. 영조에게 존재자체를 부정 당하자, 스스로 무덤을 파고 관을 짜 그 속에서 지낸다. 죽은 사람인 것처럼.

서로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중, 사도세자는 후궁이었던 자신의 어머니, 영빈의 환갑을 4년이 지나서야 챙긴다. 사도세자는 어머니에게 절을 하나, 왕과 왕비에게만 해야 하는 4배(拜)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정조와 부인, 휘하 식솔에게까지 4배를 강요한다. 이 일이 있고나서 영화는 다시 첫 장면을 보여준다. 관에서 일어난 사도세자가 칼을 들고 경희궁에 있는 영조에게 간다. 경희궁 안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인 정조에게 영조는 묻는다. “어찌 왕에게만 해야 하는 4배를 후궁인 영빈에게 하였느냐.” 그러자 정조가 답한다.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이 있고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공자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말단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고. 저는 그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 답을 들은 사도세자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선다. 이 후, 뒤주에 갇히게 되고 아사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정조의 즉위까지 보여주며 끝이 난다. 무거운 주제를 송강호의 익살스러운 연기, 유아인의 광기에 사로잡힌 연기가 더해져 굉장히 진했다. 흔히 알고 있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보단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다 아는 이야기를 풀어낸 <사도>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325년 전, 왕실의 부자지간에서 온 세상의 아버지와 아들이 보였다. 완벽한 왕으로 만들고 싶은 영조와 그런 아버지를 멀리하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현대의 어느 부자에게 보일법하다. 극 중 유아인은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라고 한다.

사도세자는 임금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아버지가 주는 사랑을 바랐다. 그 마음을 알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듯,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볼을 어루만지며 영조는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단 말이냐.”라고 한다.

사실 마음속으론 아들을 끔찍이 아끼던 아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죽는 날이 되어서야 서로를 잠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도, 생각할 ‘사’자와 슬퍼할 ‘도’자이다.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며 신분을 상승시키고 내린 시호이다. 영

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에 “내가 13일의 일이 어찌 좋아서 했겠느냐? 너는 무슨 마음으로 일흔 살 먹은 아비를 이런 일을 당하게 하느냐”라고 적는다. 어떤 아비가 자식의 죽음을 덤덤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죽어서야 해소되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은 역사보단 가슴 절절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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