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핸드볼 선수의 '알토란' 일본 대학 유학기
처음엔 언어로 고생...언어 뚫리니 일본 만화∙영화가 '술술'
"꼭 일본에서 취직해서 진취적 삶 살 것"
"유학생활로 인맥 넓히고 우물안 벗어나서 넓은 세계 맞보길"
2020-03-31 취재기자 김해영
일본 중부 지역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도야마 시에는 도야마 국제대학교가 있다. 여기서 환경디자인을 전공하고 졸업반이 된 한국 유학생이 있다. 인천이 고향인 홍은혜(23) 씨가 그 주인공. 그녀가 일본으로 유학을 온 해는 2017년, 올 들어 4년째 유학 생활을 넘기고 있는 은혜 씨는 이제 졸업 후 직장을 걱정하는 4학년 졸업반, 취준생이 됐다. 그녀가 유학을 오게된 동기부터 들어 보자.
은혜 씨가 일본에 유학을 온 계기는 바로 운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핸드볼 선수가 되어 두각을 나타낸 운동선수였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 때 한국 중학생 대표팀에 뽑혀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친선 핸드볼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은혜 씨는 “그때 처음 본 외국, 일본이 내 마음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게 됐고, 그때부터 일본 유학 꿈을 꾸게 되면서 일본어 공부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인천 비즈니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은혜 씨는 막연한 일본 유학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차와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그때 은혜 씨에게 일본 유학의 길을 자세히 안내해준 분이 바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은혜 씨는 핸드볼 운동을 그만 두고 일본 대학에서 새롭게 진로를 개척하고 싶었다, 그래서 3학년 초에 선생님께 상담하면서 “운동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운동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뭐가 하고 싶냐?”고 반문해서, 은혜 씨는 불현듯 "일본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일본에서 운동 특기생으로 진학해서 운동과 공부를 같이 하는 방법을 찾으면 어떠냐”고 하면서 일본 특기생 유학 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이렇게 해서 은혜 씨는 고3부터 본격적으로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 준비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언어가 가장 중요했다. 그럭저럭 준비한 끝에 이곳 도야마 국제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이 학교에 체육학과가 없기 때문에 환경디자인학과를 차선책으로 택했다. 입학 후에는 정말 원하던 대로 운동을 그만 두게 됐고, 환경디자인 공부만 하게 됐다. 아무튼 은혜 씨는 “일본어 공부도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담임 선생님 도움으로 짐만 싸들고 일본으로 왔다”고 말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을까? 은혜 씨가 처음으로 일본으로 유학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부모님은 의외로 흔쾌히 찬성했다. 부모님은 은혜 씨가 “저, 일본 유학 가고 싶어요”라고 가까스로 말을 꺼내자, “그래? 가라” 하면서 너무 쉽게 허락했단다. 은혜 씨는 “당시 부모님보다 내가 더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2017년 새내기 한인 유학생은 일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인 유학생 셋이서 같이 자취를 했다. 그런데 서로 성격이 안 맞았고, 이런저런 각자의 사정이 생겨서 서로 흩어지게 됐다. 은혜 씨는 지금은 혼자서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다.
그는 일본 유학 비용만 생각하면 힘부터 든다. 은혜 씨는 원래 운동 특기생 조건으로 입학해서 등록금은 다른 학생들보다 적게 냈지만,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의 용돈은 부담이 안될 수 없었다. 은혜 씨는 “등록금 일부와 자취 비용 등은 부모 지원을 받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고 말했다.
유학 초기부터 은혜 씨를 괴롭힌 것은 일본어였다. 물론 고등학교 때부터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생활 일본어와 수업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는 천지 차이였다. 대학 수업 진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은혜 씨는 “처음 쳤던 중간고사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은혜 씨가 일본 대학교에서 처음 중간고사 칠 때 정말 답을 쓸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백지를 냈다. 은혜 씨는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 적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걸 본 한 교수님이 ‘백지를 내지 말고 아는 데까지는 단 한자라도 써내야 점수를 줄 것 아닌가”라고 혼도 내고 격려도 해주셨다. 교수님 말에 용기를 얻은 은혜 씨는 수업을 따라 가느라 수많은 밤을 새워야 했다.
이제 은혜 씨는 일본 유학 생활에서 가장 큰 도약은 일본어 실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은혜 씨는 “당연하겠지만,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어가 정말 많이 늘었다. 이제 웬만한 일본어는 다 알아듣게 됐고, 읽고 쓰는 것도 문제없다. 요새는 1학년 때랑 다르게 시험지도 꽉꽉 채워서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어가 뚫리니 일본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에 관심이 쏠렸다. 은혜 씨는 그토록 좋아했던 일본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를 아무 언어 장벽 없이 즐긴다. 은혜 씨는 “이제 그냥 자막 없이도 일본 문화를 접하게 된 게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고 말했다.
언어가 트인 지금, 은혜 씨는 졸업을 앞두고 다른 종류의 문제와 부닥치고 있다. 바로 취업 문제다. 은혜 씨는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황색 인종이어서 딱히 인종 차별 같은 건 없었지만, 여기저기 구직활동을 해보니 외국인을 안 받는 곳이 많아서 불편하다. 아르바이트 역시 그렇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도 겨우 붙은 거라서 정말 힘들어도 꾹 참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직장을 구하느라고 힘들게 뛰고 있지만, 은혜 씨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외에서 교환학생이나 유학생 생활을 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그 이유를 은혜 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딱 내가 일본으로 유학 생활하기 전의 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만, 또는 나처럼 일본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꼭 교환학생이나 유학 생활을 해볼 것을 권한다. 정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은혜 씨는 유학생활의 또 다른 장점으로 인맥의 확장을 꼽는다. 그녀는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여러 일본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또 이곳에서 생활하는 다른 한국유학생들을 만난 것이 제일 좋다. 은혜 씨는 “내 일본 친구들과 다양한 것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은혜 씨는 당분간 일본에서 더 살아 볼 생각이다. 일본에 온 이유 자체가 일본에서 취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당장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녀는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가 정말 한국이 그리워지면 그때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요즘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아직 이곳 도야마 시 사람들은 코로나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은혜 씨는 “주변에 확진자가 아직 없어서 그런지 여기 사람들은 마스크도 안 끼고 다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요즘 은혜 씨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바로 코로나19다. 한국에 가고 싶어도 출입국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은혜 씨는 이번 2월에 한국으로 잠시 들어가서 친구랑 가족들을 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종식되고 다시 사회가 활기를 찾게 되면, 은혜 씨는 일본에서 직장을 잡고 새 생활을 펼칠 꿈에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