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담배광고 여전히 휘황... 정부 약속 어디로
청소년들까지 유혹..."1년 안에 소매점 광고 금지시킨다 해놓고선"
지난해 1월, 정부는 담뱃값을 80% 인상하면서 금연 종합대책을 함께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편의점 등 담배 소매점에서 담배광고를 금지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연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세부 규정을 마련하지 못해 현재 각 편의점에는 여전히 휘황찬란한 담배광고가 애연가는 물론, 비흡연자까지 유혹하고 있다.
본지가 부산 시내 편의점 30여 곳을 돌아본 결과 27곳에 담배광고가 부착돼 있었다. 그 광고는 크기와 색상, 문구 등도 다양했다. 화려한 LED 불빛이 깜박거리기도 하고 물결처럼 퍼지는 움직이는 광고도 있었다. 이들은 "부드러운," "한정판," "상쾌하게" 등 애연가들을 혹하게 만드는 문구들이었다.
이들 문구는 특히 청소년들에게도 유혹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학교 앞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고등학생 이윤호(18, 부산시 동래구) 군은 “계산대 옆에 ‘참을 수 없는 부드러움’이라고 적힌 담배광고를 봤다. 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편의점에 자극적인 문구로 담배를 광고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김모(19) 군은 실제로 편의점 담배광고에 유혹을 당한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담배를 접한 김 군은 최근 어렵게 담배를 끊었다. 그는 “얼마 전 편의점에서 본 담배 신제품 광고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담배광고를 볼 때마다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4 및 담배사업법 시행령 제9조에 따라, 편의점에 진열된 담배와 담배광고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도 불법이다. 이를 위반할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그러나 편의점 외관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어 편의점 내 담배와 담배광고가 외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편의점 내 담배광고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담배회사와 편의점 사이의 구조적인 공생관계 때문이다. 담배회사들은 방송광고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TV에서 담배광고를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담배회사들은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에 자신들의 제품 광고에 주력하고 있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43) 씨는 매달 담배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편의점에 담배를 광고하고 있다. 박 씨는 “담배회사로부터 (매달) 50만 원 정도 광고비를 받는다. 편의점 대부분은 담배회사와 서로 이익을 보는 공생관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편의점 점주 윤모(38, 부산시 남구) 씨는 담뱃값이 인상된 뒤 오히려 편의점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편의점산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담배는 편의점 매출의 39%를 차지했다. 그는 “담배 매출과 함께 담배광고 지원비로 편의점을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담배광고에 관한 단속이 이뤄진 적이 없어서 별 눈치 보지 않고 담배 광고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편의점 내 담배광고 규제를 제도화할 경우 편의점 업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흡연 감소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편의점 광고 규제는 시급히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나아가 정부의 이같은 담배광고 규제가 세수 감소를 우려한 것이 아니냐는 억측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통해 담배 판매량이 낮아질 거라 보았다. 그러나 2016년 1월 7일자 <서울신문>의 ‘담뱃값 인상, 금연 효과보다 세수 효과 컸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예상과 달리 담배 판매량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담배 세수는 10조 5,340억 원으로 전년도 6조 9,732억 원보다 3조 5,608억 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담배없는세상'의 이경용 금연 전문가는 정부의 금연법은 비가격적인 정책이 함께 이루어져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영국과 호주 같은 선진국은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이미 편의점 내 담배광고는 물론 담배를 진열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정부의 행동 없는 금연종합대책은 그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는 내년부터 담뱃갑에 흡연경고 그림을 게재토록 의무화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담배 소매점에서 화려한 광고가 내걸려 있는 한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흡연자는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고 외치면서도 또 한쪽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라고 유혹하는 상황에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 정부의 늑장행정, 눈치행정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