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창덕궁, 창경궁, 경복궁, 그리고 세종대왕 공원을 거닐며 선조의 지혜와 사색당파의 아픔을 생각하다

창덕궁 소나무를 보며 사도세자의 비극을 애통해하다 경회루의 화려한 풍광 속에 선조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고 새종대왕의 지혜를 오늘의 지도자들이 배웠으면 희망하다

2020-05-09     장원호
 장원호 박사는 1937년 충북 음성 출신으로 어려운 미국 유학 시절을 거쳐 미주리 주립대학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30여 년간 봉직하면서, 저널리즘 분야의 학계와 업계에 수백 명의 후학을 양성하여 전 세계로 배출했고, 올해로 83세를 맞은 장원호 박사는 캘리포니아 주 은퇴 타운인 ‘레저 월드’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장원호 박사는 은퇴 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리운 고국 한국을 찾아서 평소 가보고 싶었던 전국 산천을 유람하고 그 감상기를 적어서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란 책으로 출간했으며, 시빅뉴스는 장원호 박사의 허락을 받고 '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이란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조선 왕조의 아름다운 궁궐 

2017년 10월 20일, 추석이 지난 지 보름이나 됐는데 기온은 아직도 23도의 따가운 햇볕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창덕궁을 보러 갔다. 창덕궁의 60%를 차지하는 후원, 즉 비원은 세계 어디에 가도 보기 힘든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창덕궁

창덕궁으로 들어가는 돈화문을 지나니, 넓고 아름다운 궁궐이 자연 조건을 그대로 이용한 넓은 공간이 열린다. 창덕궁은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만들었는데, 몇 개의 연못을 먼저 조성하고, 그 주변에 아담한 규모의 정자를 세워,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꾸몄다. 넓은 후원은 왕과 왕실 가족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야외 행사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창경궁

창경궁은 조선왕조의 큰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숙종이 장희빈을 처형했고,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곳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 그리고 박물관이 들어서고,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그 후 1983년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이름도 창경궁으로 되찾았다.  
 

경복궁

나는 한국의 궁궐에 있는 소나무가 좋다. 창경궁 통명전 앞에 있는 소나무가 특히 아름답다. 그러나 이 통명전이 조선 왕조 숙종시절의 장희빈을 둘러싼 비극의 원산지이며, 창경궁이 영조가 자기 아들 사도 세자를 참혹하게 죽이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창경궁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의 비참한 역사는 17세기 초에 시작된 사색당파의 싸움에서 얼룩져 버렸다. 거기서부터 조선왕조의 정치는 중국과 일본의 외부세력에 휩쓸렸고, 결국은 사악한 일본의 식민지로 나라가 몰락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낳았다. 그 본산지가 창경궁이다. 조선 왕조와 일제 침략을 거쳐서 이제 대한민국이 들어 선지가 언젠데 아직도 창경궁 사색당파 식 투쟁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덕수궁

당파싸움은 권력에 대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형성되며 그 결말은 하나같이 국민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파국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창경궁에 와서 이 참혹한 역사의 교훈을 배웠으면 좋겠다.  

무거운 마음으로 1956년 내가 처음 서울로 와서 구경한 창경원 대문으로 나왔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창경원의 슬픈 역사를 모른 채 동물원과 식물원을 감명 깊게 구경했고, 충청도에서 부모님이 서울 오셨을 때 이곳으로 모시고 가기고 했다.

광화문

명륜동 골목길을 혼자 걸으면서 지금의 정치인들이 '적폐청산'이란 주장으로 지난날의 일들을 파헤치면서 즐기고 있는 현상이 창경궁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하다. 묻은 뼈는 묘 속에 그냥 놔 두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명륜동에서 광화문까지는 한참 걸어야 되는데, 계동 근처에서 간단한 국수 점심을 들고 힘을 비축한 다음, 전에 한번 들른 적이 있는 북촌을 바라보면서 광화문 앞까지 걸어가서 경복궁에 들어갔다.  

경복궁을 돌아보다가 경회루에 와서는 화려한 정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경회루는 왕의 침실 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 사신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이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다시 지어진 경복궁의 많은 건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실됐음에도 불구하고, 경회루는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연못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싸여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동·서·남·북의 담장이 철거됐으며,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북쪽과 동쪽 담장이 복원됐다. 경회루로 가는 3개의 돌다리에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동물상이 새겨진 엄지기둥을 놓았다. 경복궁을 돌아보면서, 우리 선조의 미적 감각이 매우 훌륭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나이가 드니 세상 보는 눈이 트이는 것 같아 혼자 웃었다. 

경복궁을 나와서 광화문 주변을 돌아보았다. 광화문 앞에는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공원과 세종대왕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서울의 중심에 있는 이 공원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링컨광장처럼 크지는 못하지만, 잘 짜인 고상한 정원이다.

세종대왕의 여러 가지 뛰어난 업적 중에 그가 중심이 돼서 만든 한글이 있다. 언어학자들 간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편리한 문자라고 한다. 특히 지금의 디지털 기술에 적용하기에 가장 뛰어난 발명이라고 한다. 이 세종대왕 기념 공원 지하에는 대왕의 역사와 업적을 차려놓은 박물관이 있으며, 500년 전 역사를 다시 공부할 수 있다.  

관광객 사진 촬영을 위하여 차려놓은 왕좌에 앉아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살펴보았다. 훌륭한 문자를 발명한 것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기초를 연구시켰고, 왕의 제일 큰 목표가 국민을 잘 살고 편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정치 지도자의 지침을 마련한 위대한 대왕이었다.  

역대 여러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임기만 끝나면, 자신들의 사리사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래의 한국 실상을 생각하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시 칭송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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