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호 박사의 그리운 대한민국] 한국의 이념 갈등을 걱정하며, 따스한 가족애를 뒤로 하고 다시 미국으로...

친구, 가족들, 지인들 두로 만나 안부를 나누고 회포를 풀다 4대강, 과격한 데모 등...한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걱정스럽다 손주들 재롱과 가족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며 다시 미국으로...

2020-06-20     장원호

이번 한국 여행의 주요 목적인 재한 미주리 동문회의 공로패를 받는 공식 행사를 마치니 좀 허전하다.

재한

다음 날 나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이며 막내아들 유진이 장인 이삼열 박사를 만나서 인사동 천도교 본당 근처에 있는 전통 한식집 '수연'에서 귀한 옛날식 한정식을 맛보았다. 뛰어난 젓갈과 보리 굴비가 일품이었다. 보리 굴비는 정미하지 않은 보리 속에 넣어 100일간의 저온 숙성을 거쳐 만든다는 말을 나는 처음 들었다. 이날 먹은 음식 중 홍어 요리는 숙성이 덜 된 것이었고, 꼬들뱅이 무침은 근래에 본 적이 없는 아주 귀한 옛날 우리 고유 반찬이었다.

사돈인 이삼열과 손덕수 교수 내외는 내년이 결혼 50주년이고 은퇴인으로서 금혼을 준비한다고 한다. 내년에는 우리 부부도 팔순이 되고, 나의 막내 동생은 환갑을 맞는 등 축하 행렬이 줄줄이 늘어섰다. 이삼열 박사는 이제 더 늙기 전에 크루즈 여행을 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나는 <나의 여행 이야기> 책을 참고해서 크루즈의 이모저모를 잘 살펴 보고 선택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인사동에 온 김에 나는 시인 천상병 씨 부인이 운영하는 '귀천'이라는 전통 찻집에 들렸다. <귀천>은 원래 시인 천상병의 대표작으로 1979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표됐으며, 시인이 '소풍 온 속세를 떠나 하늘로 돌아간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나는 찻집 벽에 걸린 시 <귀천>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이런 곳처럼 귀한 세상을 못보고 떠나 갔다면 아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천상병 시인이 죽기 직전 이 시를 썼다고 오해하고 있으나, 사실은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 간첩 사건에 관련되어 행방불명되었을 때, 가족들이 실종(사망) 신고를 했는데,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본인이 인생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하고 한참 지난 14년 뒤 1993년에 타계했다고 한다.

대구를 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니 팝콘 같은 눈이 펄펄 내린다.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살아서 눈 내리는 것을 본 지가 오래되어 눈을 맞으며 누구와 걸어다닌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들 철준이가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줘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 역에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도 서울역에 와 본 적이 있었지만, 서울 역은 다른 어떤 선진국 기차역보다도 멋이 있다.

아침 10시 반 KTX에 오르니, 동대구에는 두 시간도 안 걸린 낮 12시 14분에 도착했다. 열차가 서울을 떠날 때 펑펑 내리던 눈은 대전을 지나자 사라지고, 햇볕이 쨍쨍 떴다. 고속 남행 열차를 타고 눈이 햇볕으로 변하는 차창 밖 풍경을 보니 내가 사는 세상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동대구 역에 내리니, 역 주변은 엄청난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큰 동서 내외가 사는 대덕맨션에 짐을 풀고 양평 해장국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했다. 대구의 큰 처형이 최근 토론토 여행 후에 피로로 고생했다는데, 이제는 완전히 회복된 듯 보여서 마음이 푸근했다.

저녁에는 국일 생갈비 집에서 숯불에 구운 갈비를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동서인 교장 선생님이 잘 아는 안경점에 들렸다. 미국에서는 Transition(변색) 안경을 맞추면 값이 너무 비싼데, 이곳에서는 내 눈에 잘 맞는 안경테를 골라서 100불도 안 되는 10만 원을 주고 안경을 맞추었다. 대구는 세계적인 안경 생산도시로 유명하며, 대구에서 만들어진 안경은 불란서나 독일로 보내어 그 나라 상표를 달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비싸게 판매된다고 한다. 값비싼 독일제 안경은 결국 한국산이란다.

대덕맨션에 돌아와서, 나는 지인 우동화 회장이 심장 마비로 왼쪽 반신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소식은 나이들면서 마주치게 되는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저녁 TV를 보다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채널A'와 'TV조선'의 뉴스해설 방송을 듣고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볼 수 있는 KBS나 MBC 같은 공중파 방송이 연예 프로그램에만 몰두하고 있고, 이들의 뉴스는 언론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듯한 논조를 띄는데, 이들 채널A와 TV조선은 뛰어난 해설과 현실에 부합하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이들 방송도 인터넷으로 미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념갈등이 심한 한국도 이제는 언론이 많이 다양하게 발전한 것 같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대구에 올 때마다 등산하는 앞산 고산골 계곡을 두 시간 반 동안 걸었다. 주중이어도 이 길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나와 산책해서 붐빈다. 나는 산에서 내려와 스파월드에서 목욕하고 집에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모두 개운하다. 등산 또는 산책길로는 이 고산골 길이 최고다. 이곳에는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겉으로 보아도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노인들이 많이 찾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은퇴인들도 늘어나니, 고산골은 이들에게 아주 좋은 산책 장소다.

점심에는 막내처남 공장에 가서 새로운 기계가 들어와 회사가 날로 번창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금년에는 창조경제에 기여했다고 정부가 주는 상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대구로 돌아 오는 길에 고령 축산물 처리장(도살장) 직영 식당에서 고급 삼겹살을 구어 먹고 인근의 강정 고령보를 구경했다. 

미국에서 KBS가 제작한 4대강 개발사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거기에 고령보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4대강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정치인들은 소위 populism에 휘말려 날뛰는 경향이 있다. 지금 야당 지도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프로젝트를 무척 반대했다. 그런데 고령보 같은 4대강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홍수와 가뭄에 무서운 피해를 당한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일본에서 극우파가 설치는 것처럼, 한국에는 좌경 노동조합이 설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이제는 늘 보면서 살아야 한다. 마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같은 엉뚱하고 무식한 정치인이 대중심리에 의해서 당선되는 희안한 일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을'이 된 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며, '갑'이 된 자들은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누군가의 덕으로 갑이 됐다고 믿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갑류는 극소수이고 을류가 90%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이 문제다.

1920년대 후반에 미국을 휩쓸다가 사라진 노동운동이 한국에서는 이제 시작하는 모양이다. 민노총의 과거 폭력적 집회를 보면서, 한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총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총기 규제를 안 하는 미국에서는 아무나 기관총을 들고 살상을 했으며, 지금도 총기 규제를 안 하는 미국은 18세기 카우보이 나라처럼 보인다.

토요일 아침 11시 25분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저녁 6시 Palace Hotel 西宮(서궁)에서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초청한 만찬에 지인인 임상원, 고흥길, 양휘부 씨와 함께 했다. 전 국회의원 고흥길 씨가 무척 피곤해 보였으며, 부인의 건강이 좋지 않은 분도 있어서 오늘 이자리에서는 남자들만 모였다. 나는 은퇴 후에 할 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70세가 넘었어도 여전히 좋은 자리에 있는 양휘부가 모두 부럽다고 했다. 양희부는 KOBACO 사장을 마치고 유선방송 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이제는 KPGA 회장을 맡았다. 대단한 능력과 말년 운을 타고 난 분이라고 우리 모두가 부러워했다. KPGA는 회원이 6300여 명이나 되며, 골프가 대중 스포츠로 대단히 인기 있는 한국에서는 KPGA 회장이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한다.

아들 철준이 식구와 동생 영자 내외, 그리고 다른 동생들인 원흥, 원식, 그리고 경자를 초청하여 서초동 “홍재명 청국장”이라는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멋진 점심을 내가 대접했다. 한정식으로 값이 좀 비싸고 특별 봉사료까지 내야 하는 멋진 식당이다.

저녁에는 철준이가 처남 김정현 가족을 초청해서 서울 클럽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이분 아들 둘의 나이가 고종사촌간인 내 손주 하은이와 윤석이 하고 비슷하여, 이들의 만남이 너무 보기 좋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친구 박춘길과 최해준 내외를 만나서 공덕동 식당에서 점심을 잘 대접 받았다. 해준이는 경제과고, 고인이 된 지 20여 년이 되는 영철이란 다른 친구가 아주 좋아하던 친구로서 Gary Cooper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키도 크고 잘 생긴 목포 친구다.

3시경에 성곡 언론재단에 들렸더니, 한종우 이사장이 근처에 있다가 바로 사무실로 귀환해서 지난 10월에 성곡재단이 동아일보의 인촌상을 받은 얘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한 이사장은 동아 TV에서 성곡 재단을 취재한 프로그램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성곡 언론 재단은 고 김성곤 씨가 한국의 언론 발전을 위해서 시작한 사업으로 한국 언론에 기여한 바가 컸다. 이런 일들은 이제 한국에서 재단의 기여한 바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 일정이 꽉 찼다. 점심에는 한 동안 소식 없이 지낸 홍일식 전 고대 총장을 만나서 재미있는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홍 총장에 의하면, 한국의 강력 범죄로 검찰이 기소한 통계는 일본보다 높지 않으나, 사기범죄는 일본에 비하여 3배가 아니고 340배 많다고 한다. 이 통계를 보고 대단히 놀란 한국의 어느 학자는 한국인의 지능이 일본보다 뛰어 나게 높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사기를 치려면, 그 교묘한 수법을 개발하는 창의력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니, 통계의 내막을 알면 기가 찰 노릇이다. 홍일식 총장은 본인의 저서 <나의 조국 대한 민국>이라는 책을 나에게 선물했다.

드디어 2주 만에 미국으로 갈 날이 왔다. 몇 번이고 사양했지만, 며느리 다미가 전번처럼 인천공항까지 차를 태워다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도 귀여운 손주 하은이와 윤석이와 같이 보내면서 가까워졌고, 철준이와 다미의 가족애를 느낄 수 있어서 보람과 추억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가족들과 같이 지낸 며칠이 비행기 타는 어려움을 싹 가셔 주었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오는 아시아나 202편은 서울로 갈 때보다도 빈자리가 더 많아서 나는 가운데 네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누워서 왔다. 비록 두 주간의 여행이었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중에 돌아가서 연말에 어떻게 감사인사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여행을 떠나면서 정한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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