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여성억압, 과연 정상인가?-영화 ‘벌새’ 다시 보기-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이고, 1초에 최대 90번의 날갯짓을 한다. 이런 특징 덕분에 벌새는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나,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신체적 찢어짐, 남자친구와 단짝의 배신, 후배의 거절, 선생님의 행방불명, 그리고 성수대교의 붕괴 등 여러 시련을 겪은 후 좌절하면서도 끝내 훌훌 털고 일어나는 주인공 ‘은희’는 엄마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1초에 90번의 날갯짓을 하는 벌새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당찬 인물이다.
김보라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어느 관객이 ‘은희네 집은 정말 정상가족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했다. ‘정상성’은 어떤 무언가가 도덕적으로 꼭 옳지만은 않더라도 그것이 사회에 너무 만연하게 퍼져있어 옳고 그름을 분간하려 들지 않는, 쉽게 말해 특정 상태·상황이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은희네 집은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은희네 가정이 ‘정상가족’ 범위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여성의 희생’이 소수 가정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만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은희가 오빠 대훈에게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일방적 폭행을 당한 뒤, 은희는 가족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용기를 내 오빠가 자신을 때렸다고 고백한다. 이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황당 그 자체다. 은희의 엄마는 “너희 좀 싸우지 좀 마”라며 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반응하고, 오로지 은희의 언니 ‘수희’만이 어떤 일인지 짐작 간다는 눈빛으로 은희를 마주한다.
사실 은희와 대훈은 싸움 자체가 불가능하다. 힘과 체구에서 대훈이 압도적으로 은희를 앞서기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라 은희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라고 해야 맞다. 이 사실을 엄마, 아빠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장남이 동생을 때렸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싶은 나머지, 이를 은희와 대훈의 쌍방과실로 치부해버린다.
은희가 단짝 ‘지숙’과 “너희 오빤 요즘 뭐로 때리냐?” 서로 질문하며 대화하는 장면은 94년 당시 장남에 의한 여자 형제의 폭행이 경찰에 신고할 만한 범죄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성’의 범위에 들어가는 일상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영화 <벌새>는 1994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현재, 우리는 영화에서 묘사된 부조리한 것들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요즘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한 것도 그렇고 ‘옛날보다 요즘은 여자가 훨씬 살기 좋아졌지’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전혀 의미가 없다.
가정 내 여성의 위치만 놓고 보자면, 공동육아 문제만 하더라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공동으로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자녀 문제로 부부싸움을 할 때 은희 아버지는 “네가 교육을 잘못시켜서”라고 자식교육을 어머니에게 전가한다. 가정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경제적인 부분을 충족하는 것일 뿐 자녀 양육에 관해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남성의 태도는 오늘날 사회가 용인해주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배드 파더스’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 사이트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이에 압박감을 느껴서라도 양육비 지급을 하게끔 하고자 운영되는 사이트다. 국가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들을 방조하니 이를 참다못한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사이트다.
얼마 전 ‘배드 파더스’에 관한 기사를 하나 읽었다. 아빠도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양육비를 미지급했을 수도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신상공개를 하는 ‘배드 파더스’는 나쁘다는 게 기사의 논조였다. 나는 경제적 능력 부족이 양육비 미지급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핑곗거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혼모와 아기에게 간다.
법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을 질책하고 성실히 의무를 수행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면 양육비 지급을 못 할 수 있지’라고 나서서 해명해 주는 언론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밖에도 관찰 예능에서 아버지가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는 장면이 나오면 ‘자상한 아빠’로 추켜세우지만, 여성이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면 당연하게 비치는 것 역시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자녀 양육은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편집자주: 이 글은 독자 투고입니다. 글의 일부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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