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칼럼] 경력과 경험 요구하는 황당한 신입사원 채용법

신병훈련소에서 참전경험 요구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된 갑질 행태 자소서에 한 줄 써넣기 위해 6개월 체험형 인턴생활 감내하기도 ‘티슈 인턴’ ‘소모품 청년’이란 서글픈 말 없어지고 희망 가졌으면

2020-09-20     편집국장 송문석
취업을
코로나19로 가장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코로나19에 감염돼 현재 병상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 환자가 아마도 첫 자리에 오를 것이다. 가게 문을 닫았거나 열어봤자 종일 파리만 날리는 자영업자들도 코로나 환자 못지않은 경제적 고통으로 밤잠을 못 이룰 것 같다. 일감이 없어 하루아침에 실직당한 가장들의 땅이 꺼질 듯한 한숨도 들린다. 그러나 내게는 취업 준비생의 핏기 가시고 웃음이 사라진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이른 아침 책가방을 둘러메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 카페로 등교 아닌 등교를 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집 근처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 근방이나 사무실 인근의 카페란 카페는 모두 취준생이 점령한 지 오래다. 카페 알바생이 눈총을 주건 말건 이곳 말고는 갈 곳이 없으니 ‘카공족’으로 안면몰수하며 버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가 하루아침에 종식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온들 경제가 다시 핑핑 돌아가면서 얼어붙은 취업난이 금방 풀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무작정 책을 펴놓고 글자에 눈을 맞추는 것 빼놓고는 지금 할 일이 따로 없다. 가장 싼 커피 한 잔을 자리 값으로 시켜놓고 취업 관련 책을 들여다 볼 뿐이다. 딱히 취업목표가 구체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서건 신입사원을 뽑아야 시험과목에 맞는 취업공부를 할 텐데 도무지 뽑는 곳이 없으니 NCS 영어 상식을 뒤적거리고, 컴퓨터 한국사 제2외국어 등 자격증 공부에 매달린다. 정규 공채는 사라지고 이제는 상당수 대기업이 연중 수시공채로 바뀌고 있다. 뽑는 건지 안 뽑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뽑아도 그만, 안 뽑아도 그만이다.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 자꾸 휴대전화를 들고 채용정보 제공사이트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며 두리번거린다. 책을 보는 시간보다 채용정보 사이트 검색시간이 더 많다.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고, 마음만 불안하고 잡념만 늘어난다.
오늘도 이곳저곳에 원서를 던져본다. 이른바 ‘묻지 마 지원’이다. 대부분 꽝이다. 몇 군데 연락 온 곳에서 화상 면접을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쓰다 달다 말도 없다. 인터넷에 언택트시대 화상면접 꿀팁이 올라와 있다. 솔깃해 읽어본다. 스텐드 조명으로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카메라를 보고 말하라는 등의 조언을 한다. 지난번 흐리멍덩한 방 조명 때문에 화상 면접에서 물 먹은 것인가 싶어 전등을 괜히 탓해보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가장 화나는 건 기업들의 채용행태다. 신입사원을 뽑는다고 하면서 자기소개서에 관련 업무 경험을 적으라고 한다. 어떤 곳은 한술 더 뜬다. 본인의 경력과 경험이 지원하는 분야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를 묻는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신입사원이 어떻게 경험이 있을 수가 있는가? 경험이 있다면 경력사원이고, 그렇다면 경력직을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 봤자 속으로 끙끙 화만 낼 뿐 취준생이란 을의 처지에서 항의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 적는 수밖에는 없다. 정규직 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인턴, 계약직, 파견직 등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체험형 인턴, 채용연계형 인턴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인턴직이 요즘 유행이다. 말 그대로 체험형은 기회를 줄 테니 직장 체험만 하다 집에 가라는 것이고, 채용연계형은 일을 잘하면 훗날 자기네들이 봐서 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미끼를 던지는 거다. 그나마 채용연계형이 체험형보다 낫지만 희망고문이라는 점에서는 오십보백보다. 청년들이 많이 찾는 사이트에는 오늘도 채용연계형 인턴들의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아닌 ‘피 말리는 서바이벌 인턴 생활’이 적나라하게 소개돼 있다. 최종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살아남더라도 직원으로 채용될 수 있을지 몰라 하루하루 비굴한 웃음을 짓고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청년의 글이 슬프다. 어제는 어느 부서가 확대돼 자리가 많이 늘어난다는 소리에 희망을 가졌다가 오늘은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좋지 않아 조직을 축소한다는 소문에 절망한다. 어느 회사에서는 채용형 인턴을 실컷 부려만 먹고는 단 한 명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다는 남의 일 같지 않은 말도 들려온다. 채용형 인턴은 한오라기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있다지만 체험형 인턴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공기업의 경우 정부가 청년 일자리 만들라고 닦달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시늉하는 측면이 있고, 취준생들은 ‘경력을 요구하는 신입사원 지원서’에 ‘경험과 경력 한 줄’ 써넣기 위해 역시 어쩔 수 없이 지원한다. 체험형 인턴이라고 하지만 자기소개서, 어학 성적(일반, 스피킹), 각종 자격증 등 웬만한 기업 입사 수준을 요구한다. 짧게는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집과 떨어진 곳에서 직장인이 아니라 단지 직장 체험을 위해 인턴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인턴 이후 채용이 보장 안 되니 원래 하던 취업공부와 인턴 일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는 부담은 고스란히 취준생이 져야 한다. 그래서일까. 체험형 인턴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취준생의 고민도 올라와 있다. 인턴도 급이 있다. 최상위에 ‘금턴’이 자리한다.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 ‘백’이 있는 금수저들만 가는 인턴 자리다. 비공개로 알음알음 채용하는 로펌, 국회의원실, 공기업과 대기업 등이다. 흑수저들은 이런 곳에서 인턴을 뽑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금턴’은 이름만 올려놓고 경력을 쌓으며 근무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어 ‘꿈의 인턴’으로 불린다. 바로 아래에 ‘은턴’이 있다. 업무를 경험하고 적당한 보수도 주어지는 인턴 자리다. 공개적으로 뽑는 대기업 인턴이나 공개채용 인턴 자리다. 인턴의 최하위 계층은 ‘흑턴’이다. 정규직원과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보수를 준다. ‘열정페이’다. 체험형 인턴이라고 하지만 문서 복사, 커피타기, 심부름 등 단순 업무가 전부다. 신입사원 채용공고에 황당하게도 경력을 요구하니 자소서에 한 줄 써 넣을 ‘흑턴’이라도 기회만 주어지면 기꺼이 하겠다는 흑수저들의 열망이 눈물 겹고 가슴을 아리게 한다. 열흘 지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는 대명절 추석이다. 둥근 보름달처럼 청년들 모두의 가슴이 활짝 펴질 수 있을까. 당장 그럴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미노타우르스의 미로처럼 어디가 끝인지 모를 암담하고 불확실한 어둠만은 걷혔으면 좋겠다. 하나의 자물쇠를 열고 나서 이게 끝인가 하면 또 다른 자물쇠로 채운 문을 열게 하는 스무 고개 같은 채용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너무 가혹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이런 게 공정과 정의의 모습일 수는 결코 없다. 자조적으로 ‘소모품 청년’ ‘티슈 인턴’이라고 부른다는 이 땅의 젊은이들. 모두가 우리의 아들이고 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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