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석칼럼] 130명의 원혼이 서린 김해 돗대산의 비극을 아는가?... 가덕 신공항이 왜 필요하냐며 뒷다리 거는 서울사람들에게
남풍 불 때마다 활주로 남북으로 오가면서 빙빙 돌고 곡예비행하듯 위험하게 착륙하는 김해공항 지역민 130명이 희생당한 2002년 돗대산 참사를 안다면 김해공항 계속 이용하란 말 할 수 있나 지역민의 생명은 파리목숨인가...생명 존중과 행복추구는 서울시민이나 지방민이나 똑같이 누릴 권리
2002년 4월 15일 오전. 신문사 편집국 기둥에 걸린 시계는 낮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편집국장 주재로 열리는 오전 편집제작회의가 끝나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거였다. 사회1부 내근 차장으로 일할 때였다.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곧이어 계속 울려대는 전화 속 기자들의 보고로 비행기 추락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을 출발해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던 중국민항기(CA) 129편이 오전 11시 21분 김해공항 북쪽에 있는 김해 돗대산의 해발 204m 지점에 추락한 것이다. 김해공항 활주로 끝에서 불과 4.6km 떨어진 지점이었다. 베이징에서 출발할 때 비행기에는 승객 155명과 승무원 11명 등 모두 16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최종 사망자는 승객 122명과 승무원 8명 등 130명, 생존자는 승객 33명과 승무원 3명 등 36명이었다. 생존자는 모두 중상이었다. 그나마 추락사고 신고가 빨랐기 때문에 구조대가 일찍 현장에 출동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추락 1분 뒤 추락지점 인근 아파트의 경비원이 119와 112에 신고했고, 김해소방서 구조팀이 곧바로 출동했던 것이다.
당시 김해공항 일대에는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돗대산 사고현장에도 기상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취재기자들의 보고는 참혹했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글로 옮길 수가 없을 정도다. 1993년 3월 구포열차사고가 났을 때 취재하면서 목격했던 현장의 참혹한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추락사고 원인이 드러났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공항 구조상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예고된 사고나 다름없었다.
김해공항은 활주로가 남북으로 놓여있다. 활주로 남쪽은 낙동강 하구와 바다로 열려 있어 거칠 것이 없다. 그런데 활주로 북쪽으로는 돗대산과 신어산이 막고 서 있다.
비행기는 반드시 맞바람을 안고 이착륙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남풍이 불 때 김해공항 관제탑과 조종사들은 긴장한다. 만일 서울에서 김해로 오는 비행기가 있다고 하자. 남풍이 불 때 북쪽에서 접근하는 서울발 비행기가 곧바로 맞바람을 안고 활주로에 착륙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활주로 직선상에 가로놓인 신어산 때문에 불가능하다. 비행기가 해발 630m 신어산을 넘어 급강하하면서 착륙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김해공항에서 남풍을 만난 서울발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서는 선회접근착륙을 해야 한다. 일단 활주로를 지나쳐 낙동강 하구 앞 남쪽 바다까지 내려간 뒤 180도 돌아 다시 활주로를 향해 북상한다. 조종사는 활주로 남단을 눈앞에 둔 지점에서 비행기를 좌측으로 45도 선회해 20초를 더 날아간 뒤 다시 45도 오른쪽으로 선회, 활주로를 오른쪽에 두고 평행하게 북상한다. 비행기가 활주로 북측 끝단과 만난 지점에서 20초를 더 날아간 뒤 이번에는 180도 우선회해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남풍을 맞으면서 하강, 북측 활주로 끝단에서 남쪽 방향으로 착륙한다. 만약 고도와 거리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착륙을 포기하고 재상승하는 ‘복행’을 해야 한다. 김해공항에 남풍이 불 때 비행기가 착륙하는 선회접근법이다.
곡예비행도 이런 곡예비행이 없다. 말만 들어도 어지럽지 않은가. 김해공항에 내릴 때 만약 타고 있던 비행기가 바로 착륙하지 않고 북쪽에서 활주로를 지나쳐 남쪽 바다까지 내려 갔다가 빙 돌아서 선회한 뒤, 남쪽에서 북쪽으로 다시 활주로를 지나쳐 올라 가더니 남해고속도로 못 미쳐 다시 빙 돌아 남쪽으로 하강해 착륙한다면 남풍을 만나 선회접근착륙을 했다고 보면 된다. 못 믿겠다면 남풍이 불 때 김해공항 인근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왔다 갔다 하면서 빙빙 도는 희한한 비행술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민항기 사고는 기상악화에다 조종사과실, 선회접근비행 미숙 등이 지적됐다. 무엇보다도 김해공항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즉 활주로 앞에 산이 가로막고 있지 않고 평지에 공항이 있었다면 발생할 수 없는 사고였다.
130명의 인명을 앗아간 김해공항. 중국민항기가 추락한 돗대산 현장에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김해 의용소방대원들이 세워놓은 팻말과 돌탑, 경남영묘원의 추모탑을 바라보면서 부산 경남 지역민은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항공사고가 없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그것은 안전한 공항을 만드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김해공항을 아무리 넓힌다고 한들 산을 통째로 들어서 옮기지 않는 한 곡예비행 같은 위험천만한 선회접근비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생명을 맡기고 비행기를 계속해서 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다 위에 공항을 짓다는 거였다. 가덕도 신공항이 그것이다.
그런데 신공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을 중심으로 나오는 가덕도 신공항 무용론은 똑같다. 경제성이 없다? 태풍의 길목에 있어서 위험하다? 선거용 정치적 결정이다? 등등.
이런 서울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과 반박은 여기서 일일이 하지 않겠다. 태풍 운운에 대한 반론은 바다에 지어진 일본 간사이공항과 주부공항, 홍콩공항 등 사례를 들어 지역 언론과 전문가들이 충분히 내놓고 있다. 또 빈사상태에 빠진 지역경제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서울로 빠져나가 늙고 쇠퇴한 도시와 농촌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해봐야 입만 아프다.
나는 다만 잘난 서울 사람들이 입만 열면 내놓는 “멀쩡한 김해공항을 확장해서 쓰면 되지, 뭐하러 돈 들여서 바다를 매립해 가덕도에 공항을 짓자는 거냐? 그리고 멀리 바다 건너 유럽이나 미국을 갈 때는 인천공항에 와서 갈아타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에서 느껴지는 ‘서울공화국 중심주의’, ‘지방사람은 하층민 천대’, ‘같잖은 서울사람들의 꼴값 떠는 것 같은 허위의식’ 등은 도저히 넘기고 봐줄 수가 없다.
서울역 앞에서 신문지 펴놓고 막걸리 들이키는 구질구질한 비렁뱅이도 나름 ‘서울특별거지’ 라고 위세를 떤다. KTX 타고 서울역에 내리면 이 ‘서울특별거지들’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촌놈’ 취급하려 든다. 단지 서울에 있는 ‘귀한 몸’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방사람을 눈 아래로 내려본다.
지역에서 태어나 서울에 취직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어느새 ‘잘난 서울사람’이 다 됐다. 어쩌다 부산에 내려오면 전화가 반드시 온다. ‘광안리에서 소주에 회 한 접시 하자’는 의미다. 물론 대접은 부산사람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서울 친구는 부산 내려오면 당연하게 대접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호구로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단언컨대 지금까지 ‘서울특별시민’이 부산에 내려와 ‘부산직할시민’에게 술밥을 산 적이 한번도 없다. 만약 반대로 서울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전화하면 어떤지 아는가? 대체로 이렇다. “응, 왔어? 무슨 일이야? 그래, 나 지금 할 일이 좀 있어. 일 보고 내려가.” 끝이다.
지방은 호구다. 마치 고려나 조선 왕조시대에 지방과 지방민들이 특산물을 공납하고 부역하고 군역하고 가렴주구의 대상이 됐던 것처럼 형식과 내용만 바뀌었을 뿐 중앙집권적 의식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아니 이제는 서울거지까지도 중앙집권적 사고로 단단하게 무장했다. 권력이 있건 없건, 돈이 많건 적건, 공부를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서울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서울공화국민’으로 똘똘 뭉쳐 기득권을 재생산하고 확대하면서 선민의식을 키워가고 있다. 지방은 그들을 살찌우고 수혈해주는 곡식창고일 뿐이다. 빨대를 꽂고 빨기만 하면 되는 수혈주머니다.
이들의 눈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이나 인권, 행복추구권 등이 보일 리가 없다. 그저 불편하면 참고 살면 되는 것이고, 서울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촌놈들은 필요하면 상경하면 될 일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역이 균형발전해야 나라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유지된다는 얘기는 미친 놈 콧구멍 후비는 소리다. 서울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이 잘 산다는 생각이 머리에 화석처럼 박혀있는 사람들에게 지방발전은 언감생심이다. 서울에 비가 조금 내려 잠수교 교통통제로 출퇴근길이 약간 불편한 일만 벌어져도 난리 부르스를 추는 방송들이 영남이나 호남에서 농지가 잠기고 집이 떠내려 가고 소들이 지리산 기슭으로 피난가도 눈 감고 있다가 항의전화를 퍼부어야 그나마 뒤늦게 마지못해서 호들갑을 떤다.
이런 이들에게 130명이 숨진 돗대산 사고는 안중에도 없다. 지방 사람 130명의 목숨은 그들에게 파리목숨인가? 지방 사람들은 언제까지 목숨을 내놓고 비행기를 타야 하는가? 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한다면 나부터 그들의 능멸적이고 오만방자한 주장에 기꺼이 수긍할 자세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