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 ‘관태기(대인관계 권태기)' 앓는다
'나 홀로' 식사에 여가생활도 혼자…"취업 스트레스가 숨은 원인인듯"
2016-05-23 취재기자 안지혜
대학생 이은희(24) 씨는 혼자서 점심 메뉴를 고른다. 점심을 먹은 후, 그는 곧장 도서실로 향한다. 이 씨는 강의를 다른 학생들과 멀치감치 혼자 떨어져 앉아 듣는 것은 물론, 공강 시간에도 자신만의 일에 몰두한다. 그는 스스로 남과 어울리기를 거부하고 혼자 행동함으로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씨는 “공강 시간에는 주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수업시간에 제출하는 과제물 등에 대한 정보는 친구들에게 문자로 연락을 취해 알아낸다. 취업 준비로 바쁜데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회사원 강민아(27) 씨 역시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 혼자를 선택했다. 강 씨는 주말이 되면 혼자 여가 생활을 즐기고 식사 역시 혼자서 해결한다. 강 씨는 혼자만의 시간이 금전적, 정신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시간을 많이 뺏기게 된다”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 연애도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최근 인간관계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안하는 것을 선택하는 20대가 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뒷받침하는 신조어인 ‘관태기(關怠期)’도 등장했다. 이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20대의 초상화를 보여주는 단어.
실제로 지난 4월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전국의 20대 634명을 조사한 결과, ‘관태기’를 겪는다고 응답한 20대가 크게 는 것으로 드러났다. 20대의 약 80%가 혼자만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응답했으며, 73%가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선택했다. 또 4명 중 1명 꼴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더는 만들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동호회 등 정기적인 모임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는 타인과의 관계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계발을 위한 개인적 목적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를 뒷받침하듯 인터넷에 ‘혼자 놀기’를 검색하면 ‘혼자 놀기 종류,’ ‘혼자 놀기 달인,’ ‘혼자 놀기 레벨’ 등 각종 정보가 넘쳐난다. 최근 3년 새 출판업계에서도 혼자 색칠하며 만족감을 얻는 컬러링북 등 ‘혼자‘를 위한 다양한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다. 유통업계 역시 이런 현상을 하나의 소비 트렌드로 보고 각종 1인용 제품을 연달아 선보이고 있다. 1인 분량의 식제품은 물론이고 1인 분량의 주류 역시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경성대학교 학생심리상담센터 상담원 이인숙 씨는 “진로·취업문제로 상담센터를 찾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이런 현상의 밑바닥엔 취업 스트레스의 영향이 숨어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며 "20대들은 타인과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 강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데, 이것이 취업 등의 문제와 맞물려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혼자가 편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삶의 여유가 없는 20대들이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오히려 혼자 있기를 선호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인숙 씨는 이런 현상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습득하게 되는데 관계의 부재가 사회성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개인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모임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