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디올 한정판 사려 줄서는 '드롭 마케팅' 가고, '래플 마케팅' 뜬다
밤 새워 텐트 치고 나이키 한정판 구매하려는 사람들 사라진 이유는? 추첨으로 한정판 구매자 뽑는 '래플 마케팅' 때문 한정판 리셀 시장에서는 운동화 한 켤레로 수십 배 돈 버는 '스니커 테크' 여전
과거 ‘드롭 마케팅’이 유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한정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직접 매장을 찾았다. 선착순 발매로 진행되는 드롭 마케팅의 특성상, 사람들은 확실한 구매를 위해 남보다 빨리 매장에 도착해야 했고, 매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도착해 앞을 메운 사람들은 물론 그 전날 밤에 도착해 매장 앞에 텐트를 설치하고 잠을 청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매장 앞을 줄지은 사람들과 텐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래플 마케팅’의 등장 때문이다.
드롭 마케팅(drop marketing)이란 매장에 제품을 떨구는(drop) 방식에서 착안한 단어로,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를 정해 신제품 및 한정판 제품을 일시적으로 판매하는 마케팅 방식을 뜻한다. 드롭 방식으로 발매되는 제품들은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만 구매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소비 심리를 자극한다. 매장 관리 차원에서도 재고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드롭 마케팅이 ‘불평등하다’고 주장한다. 한정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부 매장에서만 진행되는 드롭 판매는 매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 중인 소비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간혹 온라인으로 판매가 진행된다 해도, 해당 사이트 이용자 급증으로 인한 트래픽 초과 현상으로 기기의 화면이 멈춰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드롭 마케팅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래플 마케팅’이다. 래플(raffle)이란 추첨식 판매를 뜻하며, 일부 브랜드는 래플 방식을 드로우(draw)라고 표현한다. 드로우는 카드를 뽑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로 추첨을 뜻한다.
래플 방식은 응모로 진행된다. 한정판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의 래플에 응모하고, 당첨될 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래플은 선착순 판매인 드롭과 달리 응모로 진행되는 덕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매장을 찾거나 매장 앞에서 더위와 추위에 맞서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래플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응모 및 추첨을 진행하며, 정해진 기간과 시간 내에만 접수하면 되기 때문에 사이트 트래픽 초과 등으로 응모 참여에 불이익을 겪는 경우도 줄어든다.
드롭이나 래플 마케팅으로 한정판 제품을 구매한 모든 소비자가 해당 제품을 착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판 제품의 가치 상승은 ‘리셀(re-sell)’ 현상을 초래했다. 리셀이란 말 그대로 구매한 물건을 되파는 행위를 뜻한다. 구하기 힘든 한정판 제품은 대체로 공식 판매가 중지되는 순간부터 리셀가(한정판 제품을 되팔 때 측정되는 가격)가 치솟기 시작한다. 인기가 없는 한정판 제품의 경우 원가와 리셀가의 차이는 미미하지만, 수요가 많은 제품은 부르는 게 리셀가가 된다. 진정으로 제품을 사용하기를 원했으나, 응모에 당첨되지 못한 소비자들은 리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디올과 미국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협업 한정판 스니커즈 ‘에어 디올’의 발매가는 약 300만 원이었으나, 현재 리셀가는 약 1000만 원대에 육박한다. 가수 지드래곤과 나이키의 협업 제품인 ‘나이키 AF1 파라노이즈’ 시리즈는 약 22만 원의 발매가로 출시됐으나, 현재 리셀 시장에서 약 7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리셀 시장의 성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스니커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스니커테크란 고무 밑창을 부착한 운동화를 뜻하는 ‘스니커즈’와 ‘재테크’의 합성어다. 스니커테크는 한정판 운동화를 구매해 비싼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는 투자 방식으로, 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리셀 시장의 성장과 이로 인한 새로운 재테크 방식의 등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대학생 전경훈(25, 부산시 사상구) 씨는 갖고 싶은 한정판 신발에 응모했으나 당첨되지 못해 리셀 시장을 알아봤다. 원가가 10만 9000원인 신발이 리셀 시장에서 30만 원 선에 거래되고 있었다. 전 씨는 "아무리 갖고 싶었어도 10만 9000원인 신발을 3배에 달하는 가격을 주고 살 수는 없었다”며 “정작 진짜 제품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큰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매해야 하는 상황은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