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칼럼]이태리 밀라노의 한 세미나 장에서 느낀 미감
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㊲ / 칼럼니스트 박기철
밀라노 길거리를 걷는데 고색창연한 건물 앞이 뭔가 부산했다. 무슨 행사가 열리는 것같았다. 빈둥빈둥 기웃기웃이 취미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이태리어를 하나도 모르니 포스터 등의 인쇄물만 보고서는 무슨 주제의 세미나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서 보니 무슨 디자인을 주제로 하는 것 같았다. 건물의 복도에서는 작품 전시도 하고 방에서는 세미나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 명칭은 'Olioofficina Festival'이라고 적혀 있는데 번역기 앱을 통해 알아보니 오일 워크샵 페스티발이다. Olioofficina라는 글자가 길어 이 단어에 있는 글자인 oof를 이 행사의 약칭으로 삼는 것 같았다. 이니셜도 아닌 단어 속 글자를 행사 약칭으로 삼는 것도 특이했다.
아무튼 내가 이 행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세미나 연단의 미적 연출이었다. 그리 큰 행사 같지도 않고 지역의 작은 행사이다. 세미나장에는 사람들도 많이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토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연단은 멋졌다. 그냥 연단 위에 대충 편하게 탁자와 의자를 놓고 페트병으로 된 물병과 1회용 종이컵을 성의없게 놓은 것이 아니었다. 녹색 잎이 있는 식물 화분, 베이지색 헝겊으로 된 의자, 나무 탁자, 탁자 위 유리 물병과 물컵 등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었다. 마치 방송국 무대처럼 성의있게 꾸며져 있었다.
작은 세미나장의 미감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쓸데없는 겉치장일까? 괜히 멋지게 보이기 위한 포장일까? 비효율적 낭비일까? 이탈리안이 보기에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세미나장의 뻔한 모습이겠다. 하지만 적은 투입으로 많은 산출을 기대하는 효율 패러다임에 익숙한 코리안이 보기에는 낯설다. 물론 같은 코리안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세미나 장이라고 스쳐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끄집어 내는 일이 특기라고 자부하는 내가 판단하기에 저 세미나 장은 이탈리아에 와서 가장 먼저 접한 특별한 미감이었다. 무슨 예술 작품 속에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의 아름다움을 실감하는 기회였다. 패션 도시로 손꼽히는 밀라노에서 밀라노다움을 느끼는 장면이었다. 물론 저 밖에는 아무리 패션도시라도 아름답지 못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장소에서는 그리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