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들어야 한다, 작지만 성난 소리를..."

영화 <도가니>를 보고

2016-06-24     경북 포항시 정현희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에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내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세상은 우리를 얼마나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바꾸고 있는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회의 모순과 현실에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답답한 이야기에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사회적 약자를 한 번만 돌아봐 달라고, 잠시라도 좋으니 더 생각해 달라고, 낮은 곳에서 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세상은 드디어 그 비명을 들었다. 저 낮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에, 세상은 이제야 밑을 내려다봤다. 학생들이 성폭행 당했다. 일곱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피해자는 다 같은 학교 청각장애인 학생으로 모두 9명.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한 조력자가 2명에 드러난 가해자만 6명. 모두 이 학교 교직원과 교사들이다. 재판이 시작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풀려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결국 제대로 죗값을 치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이 실화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는 저 밑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영화 <도가니>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이 무슨 광란의 도가니야?" 영화 속 이 대사는 어쩌면 우리의 말을 대신 전한 것이리라. 사람들은 분노했고 나도 그 사람 중 하나가 됐다. 이 사회는 분명 뭔가가 잘못됐다. 저 낮은 곳에 묻혀 있던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큰 모험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는 이런 모험을 125% 끌어올려 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도가니>를 관람하고, 영화를 본 후 분노를 참지 못한 관객들이 재수사를 요청하여 광주로 수사관을 급파하는 등 전면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했다. 솜방망이 처벌과 관련된 의혹도 파해쳐졌다. 사회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가니>를 통해서 성폭행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전보다 더 모였다. ‘내 일도 아닌데, 뭐’하고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뒤돌아보게 됐다. 우리는 모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그래서 강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강자의 눈치를 잘 보지만 약자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약자에게 관심을 줘도 자신이 이익을 얻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도가니>는 이런 약자 중의 약자인 장애인들을 사람들의 관심으로 끌어냈다. 그저 영화를 보며 욕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약자에 대한 관심,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없애주진 못하더라도 그 편견을 줄여줬다. 이러한 변화가 반갑다. 한편 영화의 힘을 빌려서야 우리 안의 공법의식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닫혀버린 사회가 얄밉다. 어쩌면 <도가니>는 우리에게 새로운 공범인식을 만들어줬을지도 모른다. <도가니>는 우리 또한 무관심으로 이 문제에 일조했으리라는 생각. 그리고 그 무관심에서 벗어나 사회의 은폐막을 거둬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도가니>는 어쩌면 가해자들이 운이 나빠 진실이 들통이 난 사례일지도 모른다. 아직 사회에는 <도가니>와 같은 일들이 번번이 일어날 것이고, 이 사회는 또 다시 무관심으로 일조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사건을 세상에 말하기로 결심했다." 영화 속 신참 교사 강인호가 말한 것과 같이 세상에 잘못을 밝히는 일이 당당했으면 좋겠다. 사회 흐미진 곳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더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