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우리는 정말로 ‘아큐(阿Q)’들인가

2016-06-26     편집국장 강동수
지난 10년 넘게 영남권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끝내 ‘백지화’로 귀결되고 말았다. 정부는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김해공항을 확장하겠다는 발표로 얼렁뚱땅 끝막음을 하고 말았다. 정부는 발표 다음날 ‘김해공항 확장’이 아니라 ‘김해신공항’이란 용어를 끌어다 붙이면서 신공항을 세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파기된 게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어린애라도 궤변이라는 것쯤은 다 안다. 미안하다는 소리 한 마디쯤은 할 만한데도 대통령은 프랑스용역기관의 등 뒤에 숨어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거리엔 미처 철거되지 못한, ‘신공항은 가덕도로!’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비에 젖어 후줄근하게 늘어져 있다. 낙망한 부산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아마 그 현수막들이 철거되면 ‘동남권 신공항’이란 단어도 더는 입에 담을 일이 없게 되겠지만 시민들의 마음속에 낙인처럼 새겨진 정부에 대한 불신은 쉽게 지워지진 않을 게다. 글쎄, 아무리 속을 가라앉히려 해도 ‘신공항’을 둘러싼 역대 정부와 정치권의 ‘조삼모사’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재미 보고는 헌신짝처럼 내던진 게 2011년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신공항 건설’ 공약을 다시 우려먹지 않았던가.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 가덕도가 최고 입지라고 한다면 당연히 가덕도로 하겠다”는 게 부산 유세에 나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었다. 글쎄, 이 말을 듣고 “이번엔 신공항이 가덕도에 오겠구나”하고 믿었던 부산 사람들더러 떡도 주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신 순진한 ‘촌놈’들이라고 비웃는다면 더는 할 말이 없다. 어디 대통령 후보들만 그랬나. 서병수 부산시장도 “가덕도 신공항 유치에 실패한다면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해 당선됐다. 헛공약은 야당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지역에서 야당 후보 5명만 당선시켜 주면 반드시 신공항을 가덕도에 유치하겠다”고 약속했던 터다. 부산시민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는데 그들은 왜 아직 아무 말도 없나. ‘동남권 신공항’이 단물이나 우려먹고 뱉는 껌인가. 그것도 씹다가 기둥에 붙여놓고선 다음 사람이 또 떼다 씹고선 다시 붙여놓는 꼴이다. 다음 선거에선 또 누가 그걸 떼다가 입에 넣고 우물거릴지. 글쎄, 그저 헛공약에 그쳤으면 말도 않겠다. 부산 가서는 부산에 해주겠다, 대구 가서는 밀양에 해 주겠다는 식으로 책임 못질 말을 함부로 하니 부산 사람은 부산 사람대로, 대구 사람은 대구 사람대로 제 각기 꿈에 부풀지 않았던가. 그래서, 좁은 나라에, 그것도 같은 영남권 사람들끼리 찢어져 사생결단으로 싸우지 않았던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움을 붙여놓고, 그걸 즐기면서 선거에 우려먹은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두 개의 복숭아로 세 명의 장사를 죽였다는 중국 고사가 떠오른다. 제나라 경공에겐 용맹한 장수 공손접, 고야자, 전개강이 있었는데, 친구였던 이들이 결탁해 권세가 비대해져 국정에 부담이 됐다. 재상 안영이 꾀를 내 이들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는 임금이 참석한 연회석상에 먹음직한 복숭아 두 개를 가져다 바쳤다. “가장 공로가 큰 신하에게 상으로 내리십시오.” 그러자 제 공이 크다고 여긴 공손접과 전개강이 달려들어 하나씩 먹어치웠다. 그러자 경공이 황하를 건널 때 달려든 괴물을 잡아 죽여 주군을 살린 제 공이 가장 크다고 평소에 자부하던 고야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제 목을 찔러 죽었다. 뒤늦게 부끄러움을 안 두 사람도 자결했으니 복숭아 두 개로 장사 셋을 제거했다는 이야기다. 역대 대통령과 정치권은 ‘동남권 신공항’이란 복숭아를 영남의 식탁에 던져 놓아 권력 쟁탈전에 써먹고는 부산과 대구, 경남과 울산사람들끼리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걸 구경하고만 있었던 게 아닌가. 그래 놓고선 “너희 싸움이 너무 지나쳐서 아무에게도 못 주겠다”며 복숭아를 도로 빼앗아 간 꼴이 아닌가.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만 무책임한 게 아니었다. 이른바 ‘중앙언론’이라는 서울의 언론과 지식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2,000만 명의 잠재 고객을 가진 ‘동남권신공항’을 무안, 양양 같은 시골공항과 동급에 놓고 경제성이 없다는 소리를 줄줄 뇌까려댔다. "지방 방송은 끄라"는 거다. 역대 정부 스스로 '김해공항 확장안'이 현실성이 없다고 되풀이 주장해 왔지 않으냐, 김해공항을 최적안으로 내세운 것은 신공항 백지화를 위해 급하게 꿰맞춘 것이 아니냐는 항변은 들은 체도 않는다. “신공항 같은 국책사업은 철저한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국익에 부합하도록 결정해야 해야지 지역 이기주의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말인즉슨 지당하다. 아무렴, 경제논리도 따져야 하고, 국익에도 부합해야 하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 지당거사들은 그동안 뭐 하느라고 이제 와서야 그런 지당한 소리나 뇌까리고 계신 것일까. 대통령 후보들이, 국회의원 후보들이, 시장 후보들이 잇따라 ‘달콤한 선심 공약’을 늘어놓을 때는 왜 호되게 꾸짖을 생각을 않았던가. 왜 그때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뒷짐만 지고 있었던가. 왜 이제 와서야 부산과 대구 사람들을 지역 이익에 눈이 먼 지역이기주의자로 몰아가며 훈계나 하고 계신 건가. 그 잘나빠진 ‘중앙’들의 지당한 말씀을 자세히 들어보라. 그들의 말 속엔 “촌놈들이 신공항은 무슨 신공항이야…”하는 야유가 숨어 있다. 어쩌다 외국 갈 일이 있으면 영종도까지 꾸역꾸역 찾아오면 되지 ‘촌놈’들이 무슨 국제 규모의 신공항을 갖겠다고 설치느냐는 비웃음 말이다. 부산 사람도, 대구 사람도 ‘신공항’이 ‘노다지’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것이라도 오면 사정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그러는 것뿐이다. 지역이 오죽 낙후돼 있고, 먹고 살기 팍팍하면 신공항 하나 끌어들이겠다고 그 아우성을 쳤겠는가. 중앙행정관서에서부터 첨단 산업, 하다못해 문화와 스포츠 시설까지 ‘비까번쩍’ 좋은 것으로만 처바르고 있는 서울이 아닌가. 무슨 회의 한 번 하자면 지방 사람들은 새벽밥 먹고 제 돈 써가며 서울까지 가는 게 다반사다. 외국에서 온 변변한 전시회나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면 서울 사람들이 마실 가듯 지하철 타고 갈 때 부산 사람들은 그거 한 번 보자고 서울까지 허위허위 가야 하는 거다. 다시 묻겠다. 왜 서울 사람들이 영종도로 도시철도 타고 갈 때 먹고 살기도 힘든 지방 사람들은 하루 이틀씩 시간 버려가며, 왕복 10만 원도 훨씬 넘는 가욋돈을 주고 KTX 타고 영종도로 가야 하는가. 그게 당연한 일인가. 왜 서울은 온갖 것 다 틀어쥐고 있으면서 지방에서 제대로 된 공항 하나 갖겠다는 것도 훼방 놓는가. 왜 지방 사람은 늘 2등 국민인가. 노무현 정권 때 충청도에 행정수도를 만들겠다니 벌떼처럼 정권을 공격해 결국은 헌법재판소 판결이란 형식으로 좌절시켰던 '중앙'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지방 이전엔 온갖 핑계로 저항했던 서울의 공무원들이다.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내려오면서도, 새 아파트를 지어내라는 둥 온갖 조건을 내걸었던 그들이다. 특혜로 헐값에 새 아파트 분양받아 현지 사람들에게 전매차익 받고 팔아먹은 사람들은 또 누구였던가. 저희들 몫이 손톱만큼이라도 침해받으면 펄펄 뛰는 사람들이 지방에 대곤 걸핏하면 훈계나 늘어놓으려고 한다. 온갖 교만과 위선을 떤다. 피둥피둥 살찐 서울 몫을 지방에 덜어 주는 게 분권이고 균형 발전이다. 애초 지방 몫을 가지고 지방끼리 싸움 붙이는 게 균형 발전이 아니다. 지방도 이젠 정신 차려야 한다. 지방의 적은 지방이 아니다. 부산의 적은 대구가 아니며, 대구의 적은 부산이 아니다. 원래 지방 몫인 복숭아를 서로 차지하자고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농간에 빠질 때가 아니다. 더는 이이제이(以夷制夷)에 당해선 안 된다. 지방을 업수이 보는 중앙정부, 중앙 언론, 중앙의 지식상인들과 싸우려면 지방이 연대해야 한다. '들어라 양키들아!'하고 외친 밀스처럼 우리도 '들어라 서울놈들아!'하고 외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촌놈'이라고 부르는 한 그들 역시 우리에겐 ‘약삭빠른 서울놈’들일 뿐이다. 얻어맞고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웃는 루쉰의 '阿Q'가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