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칼럼]삐딱한 종탑과 정형적 다리의 미감

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㊷ / 칼럼니스트 박기철

2021-10-25     칼럼니스트 박기철
두오모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주인主과 손님客이 뒤집혀져顚 거꾸로倒 되었다. 두 건축물의 경우가 딱 그렇다. 원래는 이태리어로 두오모Duomo불리는 원형 돔이 있는 대성당이 주main였다. 바로 옆 기울어진 건물은 두오모 대성당 예배시간을 알리기 위해 꼭대기에 종을 설치한 부속affiliate 건물이었다. 하지만 주主 건물에 딸린 부副 건물은 주를 제치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피사의 사탑 되었다. 이곳 현지에서는 비스듬히 기대어pendente 있는 탑torre이란 뜻으로 Torre pendente라 부른다. 1173년에 착공된 종탑鐘塔 건물이 지반 불균형 및 부실 공사로 기울어져斜 사탑斜塔 건물이 되었는데 오히려 이 기울어짐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끼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태리에서 피사를 가는 이유는 오로지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저 신기한 건물을 보기 위해서다. 바로 옆 웅장하며 화려한 대성당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주객전도主客顚倒나 주부전도主副轉倒가 아닐 수 없다.

사탑

나는 저 사탑의 기울어짐을 삐딱함으로 해석했다. 나는 솜털 수염이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모자를 삐딱하게 썼고 지금도 삐딱하게 쓴다. 그런 삐딱함은 내 겉모습 외면 뿐 만이 아니라 내 머릿속 생각의 저변이자 기본이다. 나이들어 <노자도덕경>이나 <장자>를 읽으며 뻔한 통념을 비트는 삐딱한 사유의 철학에 보탰다. 나는 착실한 모범생이기보다 남다른 삐딱이로 살고 싶다. 그렇다고 공자님 말씀대로 동이불화同而不和하는 외톨이 소인이 아니라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삐딱이 군자가 되고 싶다. 생각이 다른 삐딱이. 저 삐딱한 사탑을 보며 날 닮은 탑이려니 생각했다. 그리 삐딱한 나는 우연히 마주치는 견공들을 예사로 보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한마디 건넨다. 주로 형씨라고 부르면서. 저 형씨에게 말을 건넸지만 성격이 까칠하다.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이름이 룰루란다. 룰루는 웬 이상한 놈이 자기 고상한 이름을 부르는지 못마땅한 눈치다. 피사의 사탑 근처 동네에 살아선지 룰루도 삐딱하다.

피사의

피사의 사탑과 피사 기차역 사이로 아르노강이 흐른다. 이태리 북부의 산맥에서 발원發源하여 피렌체를 거쳐 흘러오는 물줄기로 이 곳 피사를 거쳐 이태리 서해안으로 흘러간다. 그러니 아르노강은 수많은 다리를 공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건넜던 피사에서의 다리는 삐딱함이 전혀 없고 솔직담백하기만 하다. 그냥 사람이 건너는 다리로서의 목적에만 효과적인 아주 실용적 다리다. 아마도 피사 대성당과 피사의 사탑보다 수백년 후에 지어졌을 것이다. 건축 기술적으로는 한참 앞서 있을 때 지어졌을 테지만 건축 미학적으로는 한참 뒤져 있다. 미감은 정형적인 것을 쓸데없이 삐딱하게 찌그러뜨리고 기울어뜨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 미학의 가르침이다. 찌그러진 진주인 바로크도 원형의 완벽한 진주를 쓸데없이 삐딱한 마음으로 찌그러뜨리는 비실용적 일에서 온 미감이었다. 삐딱한 피사의 사탑을 바로 옆에 두고 저리도 재미없는 뻔한 미감없는 다리를 똑바로 지은 것은 어울리지 않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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